
김승연 한화 회장. 사진 한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일반 유상증자 규모를 당초 발표한 3조6000억원에서 2조3000억원으로 축소하기로 했다. 대신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세 아들이 100% 보유한 한화에너지가 1조3000억원 규모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유상증자 자금이 대주주 경영권 승계에 이용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해소하고, 주주 달래기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8일 유상증자 정정 공시를 통해 발행 금액을 2조3000억원으로 변경했다고 밝혔다. 축소된 1조3000억원은 한화에너지와 자회사인 한화임팩트파트너스, 한화에너지싱가폴 등 3개사가 참여하는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확보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유상증자 공시 1주일 전 해당 3개사로부터 한화오션 지분 7.3%를 약 1조3000억원에 매입했었다. 이를 두고 그룹 내부의 지분 정리에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조 단위 현금을 지출한 직후 주주들에게 손을 벌렸다는 비판이 거셌다. 금융감독원은 정정신고서 제출을 요구하며 제동을 걸었다.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한화오션 지분 매각대금 1조3000억원을 다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 되돌려 놓기로 한 것이다.

김경진 기자
한화 측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유상증자와 한화오션 지분 인수가 경영권 승계 계획과 무관하다고 강조한다. 이재규 한화에너지 대표는 “1조3000억원 조달 목적은 승계와 무관한 재무구조 개선 및 투자재원 확보였고, 실제 자금 일부가 차입금 상환과 투자에 쓰였다”며 “불필요한 승계 논란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 참여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방식이 확정되면 한화에너지는 이달 안에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주식을 시가로 매수,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할인 없이 참여한다는 방침이다. 주주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소액주주들은 15% 할인 가격으로 주식을 살 수 있다. 한화 관계자는 “한화에너지 대주주가 희생하고,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소액주주가 이득을 보게 되는 조치”라며 “시가로 주식 매수에 나서는 점은 주가 상승에도 긍정적 요소”라고 강조했다. 이날 코스피에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전 거래일 대비 5만6000원(8.72%) 오른 69만8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앞서 김 회장은 지난달 31일 ㈜한화 지분 22.65%의 절반인 11.32%를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김동원 한화생명 사장·김동선 한화갤러리아 부사장에게 증여하기로 결정하는 등 승계 논란을 ‘정면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한화 측은 2000억원이 넘는 증여세도 성실히 내겠다고 밝혔다.

안병철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전략총괄 사장이 8일 오전 서울 중구 한화그룹 본사에서 열린 '한화에어로 미래 비전 설명회'에서 중장기 투자 계획 및 최근 유상증자 관련 입장 발표를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뉴스1
안병철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전략총괄 사장은 이날 서울 중구 한화그룹 본사에서 미래비전 설명회를 열고, 유상증자 발표 이후 투자 계획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다는 비판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안 사장은 “경영상 판단에 따라 유상증자를 추진했지만, 여러 이해관계자분들께 충분하게 설명해 드리지 못했다는 것을 뼈아프게 깨닫고 반성했다”며 “주주 가치 제고를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생각하고 앞으로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4년간 11조원을 투자해 2035년까지 매출 70조원, 영업이익 10조원을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매출 증대를 위한 해외투자(6조2700억원) ▶신규 시장 진출을 위한 연구개발(R&D) 투자(1조5600억원) ▶지상 방산 인프라 투자(2조2900억원) ▶항공우주산업 인프라 투자(9500억원) 등의 투자 계획을 밝혔다. 안 사장은 “글로벌 안보 위협이 증가하면서 각국의 방위산업 자국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며 “해외 현지 생산기지 확보와 전략적 파트너십 구축은 생존을 위한 시급한 과제”라고 말했다.
유상증자 외에 회사채 발행 및 차입으로 7조5000억원을 조달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회계상 부채로 잡히는 수주 대금 선수금 때문에 추가적인 자금 차입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안 사장은 “지난해 별도 기준 부채비율이 393%에 달한다”며 “선수금 비율이 40% 이상이라 재무적 위험은 없지만, 해외 고객이 높은 부채비율을 문제 삼으면 수주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