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보수 우위' 판 만든 한덕수…국힘서 커지는 대선 차출론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 총리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 총리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8일 3명의 헌법재판관 후보자(마은혁·이완규·함상훈)를 지명한 건 사실 꽤 오래전 결정한 일이라고 한다. 한 대행은 지난달 24일 직무에 복귀한 뒤 윤석열 전 대통령 궐위 시엔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국회 추천 몫인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 임명과 동시에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 후보자 2명을 지명하겠다는 의사를 핵심 참모들에게 밝혀왔다고 한다. 한 대행 측 관계자는 “한 대행이 탄핵으로 직무 정지를 당한 87일 동안 여러 현안에 대한 생각을 정리했던 것같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통화에서 “한 대행이 윤 전 대통령 파면 전에도 재판관 지명의 필요성을 (우리에게) 전해왔다”고 말했다. 

인사청문회법에 따르면 국회는 인사청문 요청안 접수 20일 이내 심사를 마치고, 그 이후엔 대통령이 인사청문회 결과와 상관없이 후보자를 임명할 수 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8일 “인사청문회 요청을 받지 않겠다”고 했지만, 법적으로 임명을 막을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뜻이다.  

대통령 권한대행의 권한은 제한적이라 주장해왔던 한 대행이,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지명한 이유는 무엇일까. 총리실은 먼저 헌법과 법률을 내세운다. 헌법 71조에는 ‘대통령이 궐위되거나 사고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 국무총리가 권한을 대행한다’고 명시돼있다. 대통령이 탄핵소추돼 직무 정지된 상태가 아니라, 파면으로 궐위된 상태에선 권한대행의 임명권 행사에 무리가 없다는 것이다. 권한의 제한성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또 헌법재판소법 6조 3항에는 “재판관 임기가 만료되는 경우 임기만료일까지 후임자를 임명하여야 한다”라고 나와 있다. 한 대행은 이날 자신을 찾아온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에게 이 조항을 들며 후보자 지명의 이유를 설명했다.  

이완규 법제처장이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한 후 청사를 나서면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이완규 법제처장이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한 후 청사를 나서면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일각에선 헌재의 구도를 염두에 둔 지명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한 대행 측 사정을 잘 아는 인사는 “마은혁 재판관의 편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제기됐다”며 “제2, 제3의 마은혁이 임명될 우려가 한 대행에게도 전달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당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행정부와 입법부에 이어 사법부까지 균형을 잃어선 안 된다는 점이 한 대행 판단에 영향을 줬다는 취지다. 실제로 이완규·함상훈 지명자가 합류하면 헌재는 보수 성향(정형식·조한창·이완규·함상훈) 4명, 중도(정정미·김형두·김복형) 3명, 진보(정계선·마은혁) 2명 등 보수 우위로 재편된다.   

국민의힘과 대통령실 주변에선 ‘한덕수 대선후보 차출설’이 확산했다. 주미 대사를 지낸 경제 관료 출신으로 트럼프발 경제 위기 상황에서 ‘관리형 리더’로 적합하다는 점과 호남 출신이라는 점이 강점으로 꼽힌다. 이날 밤 한 대행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첫 통화를 한 것도 이런 기대감을 높이는 요인이 됐다.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은 8일 페이스북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막산이’, 한 대행을‘갓생이’라고 지칭하며 “안동 출신 막산이 vs 전주 출신 갓생이”라고 썼다.


당사자인 한 대행은 최근 총리실 간부들을 만난 자리에선 “대선의 ‘ㄷ’자도 꺼내지 말라”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날 국민의힘과 대통령실 인사 등의 발언 수위는 달랐다.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이미 당 내부엔 한 대행이 대선에 출마해야 한다는 의원이 상당수”라며 “사실상 본인 결심만 남았다”고 말했다. 다른 국민의힘 대선 주자 측의 긴장감은 고조됐다. 한 캠프 관계자는 “당이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게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