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통화서도 김정은 꺼낸 트럼프, '완전한 비핵화'엔 공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 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과 통화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친분을 재차 언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트럼프는 그러면서도 북한 비핵화를 위한 공조 필요성에는 공감한 것으로 확인됐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정책 검토가 진행 중인 가운데 정상급에서 대북 접근 방향성에 대해 큰 틀에서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화하고 있다. 국무총리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화하고 있다. 국무총리실

공조 필요성에 "Sure" 

대선 유세 때부터 취임 후까지 "김정은과 잘 지냈다"고 수차례 강조했던 트럼프는 이날 통화에서도 한 대행에게 비슷한 취지의 언급을 했다고 관련 소식통은 9일 전했다. 이어 한 대행은 북핵 위협 고도화의 심각성을 지적했고, 트럼프도 이를 이해한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이와 관련, 국무총리실 사후 보도자료에 따르면 한 대행은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한·미와 국제사회의 의지가 북한의 핵 보유 의지보다 훨씬 강력하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할 수 있도록 공조해 나가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에 트럼프 역시 "물론이다"라며 공감을 표했다는 것이다. 총리실 고위 관계자도 이날 기자들과 만나 "(양 측이)완전한 비핵화에 공감했다"고 전했다.

다만 이날 통화 후 트럼프가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선 북한에 대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었다. 북핵 대응이 트럼프의 우선순위에선 밀려 있음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반면 총리실은 보도자료에서 대북 정책 공조 합의, 한·미 군사동맹 공약 재확인, 한·미·일 협력에 무게를 뒀다. 트럼프가 이날 "원 스탑 쇼핑"(ONE STOP SHOPPING)이란 표현으로 한국에 시사한 일괄타결식 협상 판이 열릴 경우 한국이 받아낼 1순위는 미국의 확고한 방위 공약이란 점을 분명히 한 셈이다.


2019년 2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오른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베트남 하노이 메트로폴 호텔에서 단독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2019년 2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오른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베트남 하노이 메트로폴 호텔에서 단독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방위비 협정 파기 시사

그러나 트럼프는 이날 통화에서 방위 공약 하나하나에 청구서를 내밀 가능성을 내비쳤다. 트럼프는 트루스소셜에 "미국이 한국에 제공하는 강력한 군사 방위에 대한 비용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혔다. 취임 전부터 한국을 '머니 머신'(Money Machine)으로 부르며 "방위비 분담금으로 100억 달러를 내야 한다"고 주장하던 트럼프가 기존 협정을 뒤집을 가능성을 본격적으로 제기한 셈이다.

트럼프는 이날도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는 듯 의도적으로 허위 주장을 섞는 특유의 화법을 구사했다. "내 첫 임기 때 한국이 수십억 달러의 군사비를 내기 시작했지만, 졸린 조 바이든(전 대통령)이 알 수 없는 이유로 그 계약을 끝내버렸다"면서다. 

하지만 실제로는 한국은 트럼프 1기 출범 전인 2018년 방위비 9602억원을 부담하다 그가 취임한 뒤엔 양국 합의로 1조 389억원(2019년)을 냈다. 이후 한국에 기존의 약 5배인 50억 달러를 요구, 협상은 그가 퇴임할 때까지 타결되지 못했다.

트럼프가 방위비 분담금 재협상을 본격적으로 시사한 만큼 한국도 구체적인 맞교환 시나리오를 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동맹의 자체 억지력 강화를 중시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기조에 맞춰 한국도 재래식 전력 증강에 나설 필요가 있다”며 “이 과정에서 상당 부분을 미국의 전략 자산으로 도입하면 트럼프가 문제 삼는 무역 불균형도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식의 연계된 패키지 딜을 추진하되 트럼프가 비용 부담을 이유로 한·미 연합훈련이나 전략자산 전개까지 흔들려는 시도는 경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관세 관련 없어도 다 협의"

트럼프는 무역 불균형 문제도 잊지 않고 꺼냈다. 그는 이날 트루스소셜에 "(한국이) 지속 가능하지 않은 막대한 (무역) 흑자를 보고 있다"며 "무역, 관세와 관련 없는 사항도 협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통상·외교·안보를 아우르는 패키지 딜을 꾀하고 있단 뜻인데 결국 '25%의 상호관세 부과'는 협상 수단이었다는 속내가 드러난 셈이다. 한국이 '동맹 방위'를, 미국이 방위비까지 연계한 '무역 적자'에 각각 무게를 두는 협상의 밑그림이 나타나면서 한국도 보다 분명한 대응책을 세울 수 있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는 방미길에 오른 정인교 통상교섭본부장을 향해 "최고의 팀"(top TEAM)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권한대행 체제의 한국을 트럼프가 협상 상대로 인정하지 않을 거란 우려가 다소 잦아드는 대목이다. 이날 백악관도 관세 협상에서 "일본과 한국을 우선시한다"고 밝혔다. 

한 대행은 통화에서 지난달 이뤄진 현대자동차의 약 31조원 규모 대미 투자를 언급하며 양국 간 ‘윈윈(win-win)’이 가능하다는 점도 설득했다고 한다. 조선업 협력에 대한 의견 교환이 이뤄진 것도 마찬가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실질적인 논의는 정부 출범 후 이뤄질 거란 전망도 있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트럼프는 한국의 새 정부가 들어설 때까지는 거래 비용을 높이는 데 집중하고, 정부 출범 이후에 협상의 마무리를 지으려 할 가능성이 있다”며 “조선·LNG 등은 민간 기업과의 논의도 필요한 분야이기 때문에 어차피 빠르게 결론 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