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째 대물림한 '전설의 노포'…파전을 찌듯이 지지는 이곳

4월 첫 주에 촬영한 부산 동래읍성. 임진왜란의 비극이 서린 역사의 현장이지만 지금은 부산 시민은 물론이고 관광객도 즐겨 찾는 나들이 명소로 인기가 높다.

4월 첫 주에 촬영한 부산 동래읍성. 임진왜란의 비극이 서린 역사의 현장이지만 지금은 부산 시민은 물론이고 관광객도 즐겨 찾는 나들이 명소로 인기가 높다.

부산은 산이다. 이름부터 부산은 산이다. 부산(釜山). 가마솥을 닮은 산이 있는 고장이란 뜻이다. 그 산이 부산의 진산 금정산(801m)이다. 금정산 자락을 따라 부락이 들어섰고, 그 산자락 부락이 피란민이 내려오기 전의 부산을 이뤘다.

부산의 원적과 같은 마을이 동래다. 지금은 부산시 동래구만 동래로 불리지만, 원래는 금정산 아랫도리를 두른 기장군·금정구·연제구 모두 동래였다. 동래는 부산의 시작이었다. 부산 관광도 동래에서 비롯되었다. 숱한 전설과 신화를 거느린 천 년 온천 덕분이다. 요즘은 바닷가 신흥 관광지에 밀려 예전 같은 영화를 누리지 못한다지만, 동래온천 물은 여전히 좋았다. 온천천에 벚꽃이 막 피기 시작한 4월 첫 주말 동래로 봄 마실을 다녀왔다. 아련한 옛 추억에 잠겨볼까 했었는데, 동래는 짐작보다 더 활달하고 발랄했다. 

동래 그리고 파전  

부산 동래읍성. 동래읍성 너머로 금정산 자락이 이어진다.

부산 동래읍성. 동래읍성 너머로 금정산 자락이 이어진다.

동래읍성부터 올랐다. 조선의 북쪽 국경 도시가 압록강 아래 의주성이었다면 남쪽 국경 도시는 부산포 위 동래성이었다. 여기서 임진왜란의 비극이 시작되었다. 동래부사 송상현(1551∼92)이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이끄는 왜군 선봉대에 맞서 싸우다 이곳에서 순절했다. 그때 송상현이 남긴 문장이 유명하다. ‘싸워서 죽기는 쉬우나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

비정한 역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봄날의 동래읍성은 화사했다. 성터 주변이 사적공원으로 꾸며져 부산 시민은 물론이고 관광객의 발길이 줄을 이었다. 마침 벚꽃이 활짝 핀 날이었다. 젊은 연인부터 웨딩 촬영하는 신혼부부까지 벚꽃 드리운 성곽길에서 봄을 만끽했다.  

메밀칼국수는 부산 동래시장의 명물이다. 사진은 메일칼국수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메밀들깨칼국수.

메밀칼국수는 부산 동래시장의 명물이다. 사진은 메일칼국수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메밀들깨칼국수.

읍성 아래에 동래시장이 자리한다. 1770년 문 연 유서 깊은 전통시장이다. 지금 동래시장은 먹자골목에서 파는 메밀칼국수로 유명하다. 각종 SNS에 동래시장 메밀칼국수 인증 사진이 올라온다. SNS 명소로 뜬 집은 따로 있지만, 시장에서 칼국수 삶는 집이 여남은 곳이나 된다. 가격도 똑같고 맛도 비슷하다.  


부산 '동래할매파전'의 파전. 여느 파전보다 훨씬 두껍다.

부산 '동래할매파전'의 파전. 여느 파전보다 훨씬 두껍다.

이 시장에서 동래 별미 ‘동래파전’이 탄생했다. 예부터 금정산 자락은 파밭이 많았단다. 풋풋한 조선 쪽파 넣고 부산포 앞바다에서 나오는 해물을 잘게 썰어 무쇠 번철에 파전을 부쳐 먹었단다. 동래부사가 임금에 파전을 진상했다는 주장도 있다. 아무튼, 1930년대 동래 할매들이 동래시장에서 좌판 깔고 파전을 부쳐 팔았는데, 그중 한 할매네 집이 아직도 파전을 부친다. 이름하여 ‘동래할매파전’. 대한민국 ‘백년 명가’를 꼽을 때 한 번도 빠지지 않은 전설의 노포다.  

'동래할매파전'의 4대 대표 김정희씨.

'동래할매파전'의 4대 대표 김정희씨.

'동래할매파전'에서 파전 부치는 모습. 무쇠 번철 위에서 파전을 부치다가 두껑을 덮어 익힌다.

'동래할매파전'에서 파전 부치는 모습. 무쇠 번철 위에서 파전을 부치다가 두껑을 덮어 익힌다.

동래할매파전은 동래구청 바로 옆에서 오늘도 파전을 부친다. 1대 강매희, 2대 이윤선, 3대 김옥자 대표에 이어 지금은 4대 김정희(61) 대표가 전집을 지킨다. 4대 모두 며느리가 대물림했다. 동래할매파전은 여느 파전과 다르다. 파 속대만 사용해 맛이 연하고 향이 다르다. 무엇보다 바삭하게 굽지 않고 냄비 뚜껑을 덮어 찌듯이 지진다. 하여 일본 빈대떡 오코노미야키처럼 속이 부드럽다. 4대 대표에게 지난 세월을 물었다.

“파전을 지켜오는 게 쉽지는 않았어요. 파전은 곁들여 먹는 음식이잖아요. 다른 음식은 개발했어도 파전만큼은 옛날 방식 그대로 부치고 있습니다. 요즘이 쪽파가 제일 맛있을 때예요. 옛날에도 삼짇날 즈음해서 파전을 부쳐 먹었대요.” 

천 년 온천과 이창호 신화

농심호텔의 온천탕 '허심청'. 남탕 여탕 모두 2000명씩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초대형 목욕탕이다.

농심호텔의 온천탕 '허심청'. 남탕 여탕 모두 2000명씩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초대형 목욕탕이다.

팔도의 이름난 온천에는 공통점이 있다. 동물이 출연하는 전설이 내려온다. 보통 사슴이나 학이 나오는데, 이왕이면 흰 사슴이나 백학 같은 희귀종이 선호된다. 서사는 단순하다. 상처 입은 흰 사슴과 백학이 신비의 계곡에 들어갔다 나왔더니 말끔하게 치료된다. 천 년 온천 동래에도 정확히 흰 사슴과 백학의 전설이 전해온다.

팔도의 수다한 온천 중에서 동래는 가장 유장한 이력을 자랑한다. 무려 『삼국유사』에 등장한다. 국내 온천에 관한 첫 공식 기록의 주인공이 동래 온천이다. 고려와 조선을 거치며 동래 온천은 팔도를 주름잡았고, 구한말에 이르러 온천 좋아하는 일본인에 의해 근대식 온천 관광지로 개발됐다.  

농심호텔 온천 객실의 노천탕. 호텔 객실에서도 온천욕을 즐길 수 있다.

농심호텔 온천 객실의 노천탕. 호텔 객실에서도 온천욕을 즐길 수 있다.

농심호텔 옆 온천탕 '허심청'의 내부 모습. 여탕에만 있는 시설이다.

농심호텔 옆 온천탕 '허심청'의 내부 모습. 여탕에만 있는 시설이다.

1907년 일본인은 동래에 온천장 ‘봉래관’을 개관했다. 그 봉래관이 지금의 농심호텔이다. 농심호텔에 딸린 온천탕이 ‘허심청’이다. 한때 동양 최대 목욕탕으로 불렸던 그곳. 허심청은 여전히 크다. 동시 수용인원이 남탕·여탕 합쳐 4000명이다. 상상해보시라. 발가벗은 2000명이 한 공간에서 목욕하는 장면을.  

동래는 온천 마을이다. 옛날 온천장까지 전차가 다녔단다. 그 종점 자리에 동래 온천을 상징하는 노인상이 서 있다. 자료에 따르면 원래는 온천장 바로 앞에 있었다고 한다.

동래는 온천 마을이다. 옛날 온천장까지 전차가 다녔단다. 그 종점 자리에 동래 온천을 상징하는 노인상이 서 있다. 자료에 따르면 원래는 온천장 바로 앞에 있었다고 한다.

동래 온천 마을을 상징하는 전차. 관광객이 동래 온천의 역사를 알 수 있도록 설치했다.

동래 온천 마을을 상징하는 전차. 관광객이 동래 온천의 역사를 알 수 있도록 설치했다.

동래는 자체로 온천 마을이다. 마을 앞 지하철역 이름도 온천장역이고, 마을을 가로지르는 개천 이름도 온천천이다. 동래 온천은 하나가 아니다. 동래에 가면 허심청 말고도 온천탕이 수두룩하다. 동래 온천은 약알칼리성 온천이다. 수질이 부드럽고 유황천 같은 냄새도 없다. 수온은 56도다. 일제 강점기에는 동래 온천 바로 앞까지 전차가 다녔었다. 그 흔적이 마을 곳곳에 남아있다. 

농심호텔과 허심청을 잇는 구름다리. 2004년 농심배에서 이창호 9단이 이 통로를 홀로 걸어 기적의 5연승을 이뤄냈다. 농심호텔이 최근 구름다리 앞에 포토존을 설치했다.

농심호텔과 허심청을 잇는 구름다리. 2004년 농심배에서 이창호 9단이 이 통로를 홀로 걸어 기적의 5연승을 이뤄냈다. 농심호텔이 최근 구름다리 앞에 포토존을 설치했다.

농심호텔은 사실 한국 바둑의 숨은 성지다. 이창호 9단의 소위 ‘상하이 대첩’이 시작된 현장이다. 농심은 올해로 26년째 한·중·일 국가대항전 ‘농심 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을 후원하고 있다. 상하이 대첩의 첫 장이 2004년 11월 29일 제6회 농심배 2라운드 최종국이 열린 농심호텔에서 쓰였다. 한국팀의 마지막 선수 이창호가 이날 중국 선수에 이겼고, 이듬해 2월 중국 상하이로 넘어가 중국과 일본의 강자 4명을 다 무찔러 한국의 역전 우승을 이끌었다. 그때 사진이 전해온다. 이창호 홀로 대국장으로 걸어가는 장면을 포착한 사진이다. 사진에 나오는 통로가 허심청과 농심호텔을 연결한 구름다리다. 농심호텔이 최근 통로 입구에 포토존을 설치했다. 

'모모스 커피' 모습. 옛날 일본인 가옥을 개조했다.

'모모스 커피' 모습. 옛날 일본인 가옥을 개조했다.

'모모스 커피'가 ‘모두의 정원’이라고 이름 붙인 커피. 온천장 본점에서 느껴지는 정원의 이미지를 표현한 커피다. 매실청을 넣어 상큼한 맛이 난다.

'모모스 커피'가 ‘모두의 정원’이라고 이름 붙인 커피. 온천장 본점에서 느껴지는 정원의 이미지를 표현한 커피다. 매실청을 넣어 상큼한 맛이 난다.

천 년 묵은 온천 마을에도 젊은이가 찾아든다. 그 증거가 온천장역 건너편에 있는 ‘모모스 커피’다. 모모스 커피는 2019년 미국에서 열린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전주연(38)씨가 일하는 스페셜티 커피 전문점이다. 전국구 명소여서 온종일 빈자리가 거의 없다.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단체’ 원두를 쓴 ‘오늘의 커피’와 모모스 커피 온천장 본점의 이미지를 재현한 ‘모두의 정원’을 주문했다. 오늘의 커피가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 커피가 본래 과일 차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커피였다. 커피가 식었는데도 고유의 향과 맛이 가시지 않았다.   

동래의 동네 중국집 '미미향'의 짬뽕. 계란프라이 얹은 짬뽕은 처음 먹어봤다.

동래의 동네 중국집 '미미향'의 짬뽕. 계란프라이 얹은 짬뽕은 처음 먹어봤다.

농심호텔 근처의 동네 중국집 ‘미미향’도 추천한다. 동래 주민의 추천이 있었는데, 첫날은 줄이 너무 길어 포기했고 이튿날은 오전 11시 조금 넘어 입장해 겨우 자리를 얻었다. 부산 중국집은 짜장면에 계란프라이를 올린다. 이 집은 짬뽕에도 계란프라이가 얹어져 나왔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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