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 부진의 화살이 일자리를 향하고 있다. 13일 통계청에 따르면 1분기 15세 이상 취업자 수는 전년 동기 대비 46만5000명 증가했다. 뜯어보면 ‘보건업 및 사회복지업’에 집중됐다. 정부가 재정을 지출하는 돌봄 사업이나 어르신 일자리다. 1분기 동안 52만3000명 늘었는데 전체 취업자 수 증가 폭보다 크다. 같은 기간 양질의 일자리로 꼽히는 제조업 취업자 수는 24만2000명 줄고, 건설업은 52만1000명이나 감소했다. 민간의 일자리 창출 동력이 떨어져 있다는 의미다.
자영업 고용 시장도 심상치 않다. 2월 숙박·음식점업 생산지수는 103.8(2020년=100)로 1년 전보다 3.8% 감소했다. 매출을 기반으로 하는 숙박·음식점업 생산지수는 업종의 활력을 파악할 수 있는 지표다. 2023년 5월부터 22개월째 단 한 번도 증가하지 않고 있다.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00년 이후 역대 최장 기간의 불황이다.
올해 1분기 도소매·숙박음식점업 취업자 수는 552만7000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1만5000명 줄었다. 지난해 1분기 이후 다섯 분기 연속 감소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기에 버금가는 흐름이다. 고물가와 누적된 이자 부담 등으로 소비가 위축되며 업종 전반의 매출 하락과 고용 감소가 나타나는 모습이다.
취업자를 종사상 지위별로 살펴보면 올해 1분기 자영업자 수는 전년 동기보다 1만4000명 감소했다.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가 2만5000명 줄고, 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는 1만1000명 늘었다. 불황으로 ‘나홀로 사장님’이 늘어난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같은 기간 배달원이 포함된 운수창고업 취업자가 여섯 분기 만에 마이너스로 전환한 것도 맥을 같이 한다.
기업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현대제철은 지난달 비상경영을 선포하고 만 50세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절차를 시작했다. SK그룹의 전기차 충전기 업체 SK시그넷도 희망퇴직을 받고 있다. 내수에 민감한 유통업계 역시 이마트에 이어 현대면세점∙롯데웰푸드까지 줄줄이 인력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100인 이상 기업 500개사 중 올해 신규 채용 계획에 대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60.8%에 그쳤다. 2022년 72.0%, 2023년 69.8%, 2024년 66.8%를 기록하다 올해 더 떨어졌다. 신규 채용 계획이 있더라도 채용 규모를 작년보다 확대한다는 응답은 13.8%에 그쳤다.
고용은 대표적인 후행 지표다. 쉽게 말해 물건이 안 팔리거나 장사가 안되면 직원을 덜 뽑거나 줄인다. 고정비 중 그나마 조절할 수 있는 게 인건비여서다. 최근 3~4년간 계속된 내수 부진과 향후 수출 둔화 우려 등이 고용 지표에도 서서히 반영되고 있는 셈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관세 등 대외 리스크 때문에 고용 상황이 현재보다 더 안 좋아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고용 둔화는 내수 둔화 불길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일자리가 줄면 가계소득이 줄고, 소비 여력도 떨어진다. 가뜩이나 관세 쇼크로 수출마저 꺾일 위기다. 일단 정부는 10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기로 하고, 이르면 이번 주 구체적인 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재정은 경기부양 효과가 큰 곳에 집중하는 것이 맞지만, 지금은 자영업 경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에 이들을 위한 안전판 마련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추경에 포함하기로 한 인공지능(AI) 경쟁력 강화도 고용을 중심으로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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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