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야당'에서 마약수사대 형사 오상재(박해준)는 자신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이들에 대한 복수에 나선다. 사진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넷플릭스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이하 '폭싹')에서 헌신적인 가장 관식 역할로 시청자의 눈물샘을 자극했던 배우 박해준(49)이 이번엔 복수심에 불타는 형사 역으로 대중 앞에 선다.
그는 16일 개봉한 영화 '야당'에서 정치검사와 마약 브로커의 협잡으로 인해 나락으로 떨어진 마약수사대 형사 오상재 역을 맡았다. 사명감에 불타는 열혈 형사지만, 마약사범 체포를 위해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넘나든다는 점에서 선한 관식 연기에 눈물 지었던 이들에겐 꽤나 낯설게 다가갈 듯 하다.
15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박해준은 "'폭싹' 나오고 '야당' 나오고 하면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선배님이 부럽다"는 아이유의 말을 언급하면서 "관식 이상의 선한 역을 연기하는 어렵겠지만, 그 반대로는 더 많이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며 환하게 웃었다.
영화 '야당'에서 마약수사대 형사 오상재 역을 맡은 배우 박해준. 사진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영화 '독전'(2018) 때는 마약범이었는데, 이번 영화에선 마약범 잡는 형사가 됐다.
"마약판을 많이 취재한 황병국 감독이 '다른 범죄자들과 달리 마약범들은 예민하고 돌발행동을 해서 위험하다'고 했다. 내가 연기한 '독전'의 박선창 같은 놈들이라면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돌이켜 보면 '독전'을 비롯해 '화차'(2012) '악질경찰'(2019) 등에서 아주 날 서있는 악당 연기를 했는데, 관객들이 '낯선데 진짜같다'며 좋게 봐주신 것 같다."
"대본 자체가 너무 좋았다. 스피디하게 읽히고 역할도 다 매력적이었다. 기존 형사들과 다른 포인트들이 있었다. 불법과 합법의 경계를 넘나들며 거래하고 달래고 하는 게 재밌었다. 마약수사대 형사를 만나진 않았지만, 형사들을 직접 취재한 감독이 녹취를 전해줘서 들었다. 녹취가 영화 이상으로 재미 있었다."
'폭싹'과 '야당'을 동시에 찍었는데, 현장에서 이질감이 느껴지진 않았나.
"그게 일상이니까 문제는 없었다. 조연할 때 여기저기 왔다 갔다 했으니까 익숙하다. 여기서 못한 걸 저기서 할 때 느껴지는 쾌감이 있다. 다른 현장 갔다 오면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좋은 점도 있다. 일종의 환기랄까."
현실에선 관식과 상재, 어느 쪽에 더 가까운가.
"둘 다 있다. 가족에게 관식처럼 해주고 싶어도 촬영이 많아서 그렇게 못해줄 때가 많다. 집에 있을 땐 초등생 두 아들과 같이 할 수 있는 게 없나 찾아보는 편이다. 내가 없는 시간에 엄마 말 잘 듣고 버텨줘서 고맙다. 녀석들이 어디서 '폭싹'을 봤는지 갑자기 전화해서 '아빠, 괜찮아?'라고 걱정해주더라."
배우 박해준(왼쪽)은 넷플릭스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에서 헌신적인 가장 관식 역을 맡아 시청자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사진 넷플릭스
강하늘 배우가 '박해준 선배는 자연스럽게 연기하다가도 어떤 포인트에서 폭발한다'고 하던데.
"예전에는 믿겨지고 진짜 같아야 연기 잘하는 거라 생각했는데, 요즘은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아주 드라마틱한 역할은 그거 이상으로 표현해줘야 보는 이가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조금 가짜 같더라도. 대본 전체나 특정 신에서 내가 꼭 해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반드시 그 이상 해내려 노력한다. 그렇게 진폭을 달리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4등'(2016)이란 영화다. 카메라 앞에서 어떻게 움직이고 놀아야 하는지 알게 된 작품이다. 연기 잘한다는 인정을 받기도 했다. 정지우 감독에게 감사하다."
'폭싹', '나의 아저씨', '미생' 등에 출연하며 김원석 감독의 페르소나란 말을 듣는데.
"정지우 감독과 함께, 내가 악역으로만 소비되는 걸 안타까워했던 감독이다. 나를 잘 알고, 내 기질 자체를 연기로 표현해서 보여주려 했던 분들이다. 나를 믿고 인정해주는 사람과 작업할 수 있다는 건 큰 복이다."
대중적 인지도를 안겨준 작품은 '부부의 세계'(2020, JTBC) 아닌가.
"흥행 면에서 보면 그렇다. '부부의 세계' 때는 들떠 있었고 유명세가 두려워 숨었던 것 같다. 그래서 빨리 다른 작품에 들어갔다. 김희애 선배가 '이렇게 큰 인기를 얻는 작품을 평생에 한번 만나기도 힘든데 진짜 좋은 경험 했다'고 말해주셨는데, '폭싹'으로 다시 한번 큰 인기를 얻었다. 이번에도 마음이 들떴는데 예전과는 다른 느낌이다. 감사해야 할 분들이 너무나 많고 운이 좋다는 생각이다. 빨리 현장에 가서 연기하고 싶은 마음도 크다."
'아직도 내가 연기하고 있는 게 신기하다'는 마음은 변함 없나.
"그렇다. 아무리 해도 연기가 무엇인지 정의를 못 내리겠다. 나 혼자 찾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상대와 합을 맞춰가며 현장에서 답을 얻는 편이다. 아직도 나는 어떤 배우다 말하기 어려운데, 매번 작품을 즐기며 하는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연기하며 버텨온 내가 기특하다."
'서울의 봄'(2023)도 그렇고 이번 '야당'도 현실과 접점이 닿아있는 영화다.
"'서울의 봄'은 정말 귀한 작품이다. 현 시국과 어찌나 잘 맞아 떨어지는지 지금 생각해도 너무 신기하다. '야당' 또한 사회 현실과 맞닿아있는 작품이다. 권력을 함부로 휘두르는 자들의 말로를 통쾌하게 볼 부분이 있다. '서울의 봄'에 이어 또 다시 이런 영화를 만난 게 신기하고 다행스럽고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많은 얘기를 나눴으면 좋겠다."
정현목 문화선임기자 gojh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