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 떠나보내며 펑펑 울었던 그 남자, 정관장 고희진 감독

정관장 고희진 감독(왼쪽)이 지난 6일 챔피언결정전 4차전을 마친 뒤 메가와 포옹하고 있다. 사진 KOVO

정관장 고희진 감독(왼쪽)이 지난 6일 챔피언결정전 4차전을 마친 뒤 메가와 포옹하고 있다. 사진 KOVO

“선수 때 그렇게 우승을 많이 해도 잘 울지 않았는데…. 인생 참 모르겠네요.”

딸을 머나먼 타국으로 유학 보내는 아버지라도 이렇게 울었을까. 사령탑은 출국장으로 향하는 외국인 제자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울었고, 선수는 그런 감독을 향해 “울지 마세요”라며 다독이고 또 다독였다.

 
눈물로 점철된 봄 여정을 마친 프로배구 여자부 정관장 고희진(45) 감독을 지난 16일 만났다. 흥국생명과의 챔피언결정전을 5부작 드라마로 장식했던 고 감독은 “쓰린 속을 달래고 있다”며 호탕하게 웃고는 “정말 치열한 승부 아니었나. 그래도 챔피언결정전다운 챔피언결정전이었다고 느껴 가슴이 후련하다. 빨리 선수 영입을 마치고 제대로 쉬고 싶다”고 말했다.

 
정관장의 봄배구는 곧 눈물이었다. 허리가 좋지 않은 리베로 노란은 현대건설과의 플레이오프 3차전 도중 통증이 심해져 눈물을 흘렸고, 세터 염혜선은 이 경기를 힘겹게 이긴 뒤 울음을 터뜨렸다. 챔피언결정전에서도 눈물을 쉬이 그치지 않았다. 아포짓 스파이커 메가는 벼랑 끝에서 치른 4차전을 풀세트 승리로 장식한 뒤 눈시울을 붉혔다. 팬들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투혼을 펼치는 선수들을 바라보며 고희진 감독도 몇 번이고 남몰래 눈물을 훔쳤다.

 


정관장 고희진 감독(오른쪽)이 지난 6일 챔피언결정전 4차전을 마친 뒤 표승주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KOVO

정관장 고희진 감독(오른쪽)이 지난 6일 챔피언결정전 4차전을 마친 뒤 표승주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KOVO

삼성화재 선수 시절에는 숱하게 우승을 맛봤지만, 사령탑으로선 챔피언결정전이 처음이었던 고 감독은 “정관장으로선 13년 만의 챔피언결정전이었다. 어렵게 올라온 만큼 제대로 싸워보고 싶었다. 그런데 하늘도 무심하시지 아픈 선수들이 워낙 많았다. 주위에서도 모두 흥국생명의 우위를 점쳐서 기도 많이 죽었다”고 했다. 이어 “1차전과 2차전을 먼저 내주고 오히려 오기가 생겼다. 딱 한 경기만 잡자고. 그렇게 3차전을 이겼고, 같은 마음으로 4차전까지 잡았다. 이 모두 투혼을 발휘한 선수들 덕분이다. 그래서 그 눈물의 의미가 더 와닿는다”고 덧붙였다.

 
정관장의 봄 드라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바로 ‘인도네시아 특급’ 메가다. 메가는 챔피언결정전 5경기에서 평균 30점이라는 압도적인 성적을 냈다. 비록 우승 트로피는 거머쥐지 못했어도 ‘배구 여제’ 김연경에게 맞서 만만치 않은 존재감을 뽐냈다. 이별 과정도 아름다웠다. V리그를 떠나기로 결정한 메가는 지난 10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인도네시아로 돌아갔는데 직접 배웅 나간 고희진 감독이 눈물을 펑펑 흘려 큰 화제가 됐다.

 

(인천=뉴스1) 김명섭 기자 = 8일 오후 인천시 부평구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V리그 여자부 챔피언결정전 5차전 흥국생명과 정관장의 경기에서 정관장 고희진 감독이 작전지시를 내리고 있다. 2025.4.8/뉴스1

(인천=뉴스1) 김명섭 기자 = 8일 오후 인천시 부평구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V리그 여자부 챔피언결정전 5차전 흥국생명과 정관장의 경기에서 정관장 고희진 감독이 작전지시를 내리고 있다. 2025.4.8/뉴스1

메가와 2년간 동고동락했던 고 감독은 “누가 소감을 물어보자 메가와 첫만남 순간부터 챔피언결정전 준우승 장면까지 모든 시간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감정이 확 올라오더라. 그 정도로 서로 애틋했다”면서 “메가가 내게 ‘울지 마세요(Don’t cry)’라고 하더라. 언젠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꼭 다시 만나서 우승을 일궈보자고 말하고 헤어졌다”고 했다.

 
모든 것을 쏟아낸 정관장은 이제 제로베이스에서 다음 시즌을 준비한다. 메가가 떠난 빈자리는 지난 2년간 현대건설에서 뛴 아웃사이드 히터 위파위가 대신한다. 부키치리의 공백은 5월 외국인선수 트라이아웃을 통해 메울 예정이다. 내부적으로는 FA 자격을 얻은 아웃사이드 히터 표승주와의 계약이 시급하다. 고 감독은 “정관장의 배구는 여기가 끝이 아니다. 상실감은 커도 ‘우리도 할 수 있다’는 마음을 선수들끼리 공유했으리라고 믿는다”면서 “챔피언결정전에서 느낀 긴장감과 설렘을 잊을 수 없다. 남은 기간 잘 재정비해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전력을 갖추겠다”고 힘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