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국가수사본부(국수본)는 17일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 위반 등의 혐의로 126명을 입건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 중 100명을 검찰에 송치했는데 전·현직 중·고등학교 교사가 72명이다. 아울러 학원 강사 11명과 학원 법인 3곳, 학원 관계자 9명,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출제위원 출신의 대학교수 1명,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직원 3명, 대학 입학사정관 1명이 포함됐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의 간판들. 연합뉴스
경찰은 교육부와 감사원의 의뢰와 자체 첩보 등을 토대로 2023년 7월부터 ▶중·고등학교 교사와 입시 학원 간의 수능 대비 문항 거래 ▶2023년 수능 영어 시험 문항 유출 의혹 ▶내신(학교 자체 시험) 문항 거래 의혹 등을 수사했다.
검찰로 넘겨진 이 들 중 전·현직 교사 47명과 학원 강사·관계자 19명은 2019~2023년 수능 예상 문항 등을 사고판 혐의가 있다. 교사들은 수능 관련 문항을 제작해 학원이나 강사에 판매하고 돈을 챙긴 것으로 조사했다. 문항 1개당 가격은 10만~50만원 수준이고, 문항 20~30개를 묶은 ‘세트’ 단위로 거래가 이뤄진 것으로 파악됐다. 약 5년간 오간 돈의 총액은 약 48억6000만원에 달한다.
앞서 교육부는 2017년 6월 모의평가의 국어 문항이 사전 유출되는 일이 벌어지면서 일선 시·도교육청과 학교에 “교사의 영리 행위를 금지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하지만 교사들의 문항 거래가 근절되지 않고, 현재까지 관행처럼 굳어졌다는 게 경찰 판단이다. 서울 소재 한 고등학교 교사는 검토위원으로 참여한 2023년 6월 모의평가의 문항을 변형해서 사교육 업체에 판매한 것으로 조사됐다. 일부 교사는 수능·모의평가 참고 자료인 EBS 교재가 출간되기 전 일부 문항을 친분이 있는 강사에게 공유하기도 했다.
수능 출제·검토 경력이 있는 교사 8명은 소위 ‘문항제작팀’을 꾸려 여러 사교육 업체와 강사에 조직적으로 문항 2947개를 판매한 것으로 드러났다. 문항제작팀과 함께 대학생을 아르바이트생으로 동원한 ‘검토팀’도 운영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이 5년간 벌어들인 수익은 약 6억2000만원으로 조사됐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검찰로 송치한 전·현직 교사들 중에는 수능 출제·검토 경력이 있는 8명이 아르바이트 대학생들과 2946개 문항을 조직적으로 판매한 사례도 있었다. 이들이 5년 간 벌어들인 수익은 6억2000여만원이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송치된 학원 강사 중엔 대형 유명 입시 학원의 스타 강사도 포함됐다. ‘일타 강사’로 꼽히는 유명 강사 조모씨, 현모씨, 양모씨 등이 송치 대상에 오른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한 강사가 문항을 사들이는 데 최대 5억5000만여원을 지불한 정황도 확인했다. 경찰 관계자는 “자금력이 충분한 강사가 개인 이익을 위해 문항 거래를 하면 더욱 스타가 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앞서 국수본은 2023년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입시학원 ‘시대인재’도 압수수색했다.
2023년도 수능 문항 유출 의혹은 “확인 안 돼”
해당 문제의 출제위원이었던 대학교수 A씨는 2022년 자신이 EBS 교재 감수위원으로 참여하면서 알게 된 해당 지문을 별도로 저장해뒀다가 수능에 문제로 출제한 것으로 파악됐다. 유명 강사는 이 문항을 현직 교사 B씨로부터 구매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경찰은 강사와 A씨, B씨 사이의 통신 내역과 e메일, 각각의 계좌 내역 등을 확인했지만 유착 관계를 입증할 증거는 찾지 못했다. 경찰은 A씨에 대해선 EBS 문항을 사전에 유출해 EBS의 업무를 방해(업무방해)한 혐의로, 강사와 B씨에 대해선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넘겼다.

EBS 수능특강 영어영역 영어독해연습(2023)(2024 수능대비). 해당 교재의 영어 지문이 2023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영어 과목의 문항으로 출제됐고, 그보다 이전에 모 입시학원 수업교재에도 포함된 사실이 드러나 문제 유출 논란이 불거졌다. EBSi 화면 캡처
경찰 관계자는 “교사들의 문항 판매 행위가 근절되지 못하고, 오랫동안 음성적으로 관행화돼 현재에 이르렀다”며 “더이상 사회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수준이라 판단돼 교사와 사교육 업체, 강사 간 유착을 근절하고자 철저히 수사를 진행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