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긴 백발을 양갈래로 땋은 패티 스미스(79)가 전시장에 섰다. 베니스 영화제 레드 카펫에서도, 본인의 콘서트 무대에서도 같은 모습이다. 사진 piknic
전시장에는 체르노빌 원전 사고, 대형 산불, 동식물의 대량 멸종, DMZ 인근의 생태 등과 함께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파올로 파솔리니, 마리아 칼라스 등 예술가들의 삶을 탐구하는 영상이 흘렀다. 사운드워크 컬렉티브의 영상에 패티가 쓰고 읊조린 시가 깔렸다. 전시를 소개하면서 그는 “로큰롤을 한 지 반세기다. 70대에도 나는 계속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패티는 청바지에 검은 재킷, 워커를 신고 긴 백발을 양 갈래로 땋은 채 나타났다. 스타일 칭찬에 “70년대 입던 것과 전혀 달라지지 않아 딸이 ‘엄마는 만날 똑같다’고 웃을 정도”라고 응수했다. 실제 베니스 영화제 레드카펫에서도, 수 만 명이 모인 콘서트 무대에서도 그는 늘 이 차림이다. “전날 도착해 전시를 마무리해 몽롱한 상태”라면서도 질문에 성실하게 답했다.
![첫 한국 전시를 맞아 한글로 쓴 메시지. [사진 piknic]](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504/24/e4aa4e7d-6d19-4bc4-bfcc-6eac133d1e50.jpg)
첫 한국 전시를 맞아 한글로 쓴 메시지. [사진 piknic]
70대에도 새로운 것에 호기심을 갖고 도전할 수 있다는 게 놀랍다.
“예술가란 그런 존재다. 발견되지 않았던 걸 발견하는 사람들이고, 그걸 새로운 방식으로 보여주는 사람들이잖나. 난 그런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hard worker)이다.”
새로운 걸 받아들이는 힘은 어디서 나올까.
“10년 전보다는 확실히 에너지가 줄어들었다. 잘 관리하는 법(energy management)을 터득 중이다. 예전 같으면 콘서트 마치고 파티도 가겠지만 지금은 그냥 산책하고 카페에서 글 좀 쓰다가 호텔 가서 쉰다. 이렇게 에너지를 관리하면서 일에 에너지를 집중시키려 한다.”
평소 하루는 어떻게 보내나.
“일찍 일어나 스트레칭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펜과 공책, 돈을 좀 챙겨 근처 카페에서 커피 마시고, 쓰고, 몽상하고, 간단한 아침도 먹는다. 아침 8~10시는 딱 나만의 시간, 혼자 생각하고 온전히 글을 쓰는 시간이다. 10시 이후 미뤄둔 일을 본 뒤 산책한다. 밤엔 책을 읽거나 한국 드라마를 본다.”
한국 드라마를 보나.
“‘슈룹’(영어판 제목은 ‘Queen’s Umbrella’)을 재미있게 봤다. 김혜수는 아카데미상을 받아야 한다! 한국 드라마는 한 회 한 회가 그 자체로 한 편의 영화 같은 완성도를 갖고 있다.”
단순한 일상인데.
“친구가 별로 없다. 슬프게도 많이들 세상을 떠나서. 다행히 10여년 전 스테판 같은 관심사가 통하는 새 친구를 만났다. 나이든 나는 인도의 산을 오르고 그린란드의 빙하에 갈 수 없지만, 스테판이 채집해 온 자료를 보며 시 쓰고, 그림 그리고, 퍼포먼스를 한다.”
1946년 시카고에서 태어난 패티는 21세에 교대를 중퇴하고 뉴욕에 갔다. 첫 시집을 낸 게 1972년. 1975년 나온 첫 앨범 ‘호시스(Horses)’는 올해로 50주년을 맞아 미국과 유럽 투어를 준비 중이다. 2016년 밥 딜런이 불참한 노벨문학상 시상식 공연에 가수이자 시인으로 선 것도 패티였다. 영국 로열 필하모닉 심포니와의 협연으로 딜런의 곡(A Hard Rain’s A-Gonna Fall)을 불렀다.
뮤지션이자 시인, 작가로 알려져 있는데.
“시인으로 시작했다. 화가가 되고 싶던 적도 있었고. 시를 쓰다 로큰롤에 빠지게 됐다. 전시는 핵의 폐해나 종의 멸종 같은 세상의 고통을 담는 한편, 예술가들의 창작 과정을 기념하는 의미도 있다.”
자신의 재능을 확신하지 못하는 젊은 예술가들에게 뭐라 말하겠나.
“요즘 젊은이들 정말 살기 힘들 것 같다. 나 땐 소셜미디어도, 유명인 중심의 컬트도 없었다. 결국 ‘당신 배의 선장은 당신’ ‘최고의 비평가는 당신’이라 말해주고 싶다. 선생님이든 멘토든 영향을 주려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내가 어떤 사람이며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제대로 평가할 이는 결국 자기 자신이다. 타인의 시선에 기대지 말고, 자신을 들여다봐 주면 좋겠다.”
패티는 2009년 지산 록페스티벌 헤드라이너로 한국에서 처음 공연했다. 이번에는 전시로 찾아왔다. “전시장에서 남녀노소가 바닥에 앉아 영상을 보다 영감을 얻어 시도 써 보면서 ‘나는 세상을 위해 무엇을 해 볼까’ 상상해 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시는 7월 20일까지, 성인 1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