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조류독감, 포유류에 퍼지도록 진화중…인간 전이 땐 '팬데믹' 우려

지난달 19일 삵 폐사체에서 고병원성 AI가 검출된 전남 화순군 화순읍 세량제에서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직원이 방역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19일 삵 폐사체에서 고병원성 AI가 검출된 전남 화순군 화순읍 세량제에서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직원이 방역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겨울 동안 야생 조류에서 발견된 조류인플루엔자(AI·조류독감) 바이러스에서 포유류 감염성을 높일 수 있는 유전자 변이가 다수 발견됐다. 국내에 유행 중인 AI 바이러스가 포유류에 쉽게 전파되도록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이러스 전문가들은 AI가 조류와 포유류를 거쳐 인간으로 옮겨 가면 팬데믹(대유행)으로 번질 위험이 크다고 경고했다.  

24일 학계에 따르면 건국대 이동훈 수의학과 교수 연구팀이 2024~2025년 동절기에 국내 야생조류에서 발견된 H5N1형 고병원성 AI 바이러스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포유류 감염이 용이해지는 36개의 유전자 변이를 가지고 있는 것을 확인됐다. 이 AI 바이러스에 포유류가 노출되면 감염될 위험이 더 크다는 뜻이다.

강원 강릉시 남대천 갈대숲에서 환경부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인 삵이 먹잇감을 노리고 있다. 연합뉴스

강원 강릉시 남대천 갈대숲에서 환경부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인 삵이 먹잇감을 노리고 있다. 연합뉴스

실제로 지난달 16일 전남 화순에서 구조된 후 폐사한 삵에게서 고병원성 AI 바이러스가 검출됐다. 국내 야생 포유류에서 AI 감염이 확인된 첫 사례다.

이 교수는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유전자 분석 결과 현재 국내에서 유행 중인 AI 바이러스는 포유류 감염 가능성이 높은 바이러스로 판단된다”며 “미국에서도 올해 초 유사한 고병원성 AI 바이러스로 인해 기저질환자가 사망한 사례가 있다는 점에서 국내에서도 기저질환자가 노출될 경우 감염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해당 연구 결과를 국제 학술지에 투고했다. 

영국서 세계 첫 양 감염

영국의 한 농장에 있는 양 무리. AP=연합뉴스

영국의 한 농장에 있는 양 무리. AP=연합뉴스

전 세계적으로도 고병원성 AI 바이러스의 포유류 감염은 증가하는 추세다. 남미에 서식하는 코끼리물범이나 남극의 펭귄 같은 해양 포유류에 사이에서도 AI가 퍼지면서 떼죽음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건 인간과 접촉이 많은 가축이 AI에 전염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달에는 영국의 한 농장에서 세계 최초로 양의 H5N1 감염 사례가 발견됐다. 해당 농장에는 양과 가금류 무리가 함께 지내고 있었다. 미국에서는 젖소를 중심으로 AI가 확산되고 있다.

미국, 젖소→인간 전파 사례 급증 

미국 국립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AIAID)가 배양한 H5N1 바이러스(노란색 영역). 사진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미국 국립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AIAID)가 배양한 H5N1 바이러스(노란색 영역). 사진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AI가 포유류를 거쳐 인간에게 전파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지난해 4월 이후 미국에서 총 70명의 H5N1 감염자가 발생했다. 이 중 절반 이상은 젖소 농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인 것으로 확인됐다. 2022년에는 감염자 수가 단 한 명밖에 없었다.

바이러스 전문가들은 AI가 다음 팬데믹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제임스 로러 미 네브래스카대 글로벌보건안전센터 소장은 뉴욕타임스에 “AI 바이러스가 인간을 비롯한 포유류에 더 널리 퍼질수록 돌연변이가 생겨 사람에게 감염을 잘 일으키는 형태로 변할 위험이 크다”며“우리 모두를 위험에 빠트릴 수 있다”고 말했다.

지영미 질병관리청장도 올해 초 기자간담회에서 “전 세계에서 감염병 전문가들이 AI 인체 감염에 대해 논의 중”이라며 “지금 보고된 사례를 보면 언제라도 AI 인체 감염과 대유행이 일어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고 했다.

이례적 4월 발생 “인체 감염 선제적 대응”  

국내에서 겨울이 지나면 잠잠해졌던 AI가 이례적으로 4월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지난 4일 충북 청주시의 오리농장에서 고병원성 AI 감염이 확인된 데 이어 20일에는 충남 아산시 소재 토종닭 농장이 고병원성 AI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상기후의 영향으로 겨울 철새의 북상이 늦어진 게 원인으로 꼽힌다.

이에 환경부는 통상 3월까지 진행하던 철새 조사를 이달까지 연장하는 등 AI 예찰을 강화했다. 황의정 환경부 야생동물 질병관리팀장은 “주요 철새 도래지에서 분변이나 폐사체를 수거해 AI 감염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며 “(유행 시기가 길어진 건) 기후변화 등 다양한 원인이 있을 수 있어 전문가와 함께 대책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종간의 장벽을 넘고 있는 조류독감에 대응하려면 부처 간 협력과 함께 국가적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 교수는 “환경부는 야생동물 AI 예찰과 연구 확대가 필요한 상황이며, 질병관리청도 인체 감염에 대한 선제적 대응 및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