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조선 넘어 한국 회화사의 거장 ‘겸재 정선’ 예술세계로
② 18세기 조선으로부터 350년, 이어지는 겸재 정선의 가치
지난 4월 2일부터 6월 29일까지, 조선을 대표하는 화가 겸재 정선(이하 겸재)의 예술세계를 총체적으로 조명해 볼 기회가 마련됐어요. 2025년 삼성문화재단 창립 60주년, 2026년 겸재 탄생 350주년을 맞아 겸재를 주제로 한 전시로는 사상 최대 규모의 기획전이 열리거든요. 삼성문화재단(이사장 김황식)과 간송미술문화재단(이사장 전영우)이 경기도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공동 개최하는 ‘겸재 정선’전입니다.
무려 79점을 보낸 간송미술관에 이어 호암미술관 15점과 국립중앙박물관 33점을 비롯한 18개 기관과 개인 소장품 등 총 165점(국보 2건, 보물 7건 57점, 부산시유형문화재 1건)이 한자리에 모였죠. 특히 국보·보물로 지정된 겸재의 지정 작품 12건(국보 2건, 보물 10건) 중 총 8건 55점(국보 2건, 보물 6건 53점)을 한번에 볼 수 있게 된 건 이번 전시가 처음입니다.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를 정립시킨 화가로 알려진 ‘겸재 정선’ 기획전을 찾은 김태린·김도연·서진하(왼쪽 둘째부터) 학생기자가 김규태 연구원의 설명을 듣고 있다.
겸재 정선 대표작 165점 한자리에

‘겸재 정선’ 기획전은 겸재의 대표작 중에서도 대표로 꼽히는 인왕제색도(왼쪽)·금강전도로 전시를 시작한다.
10여 년 만에 대중 앞에 선보이는 금강전도는 겨울 금강산인 개골산을 담아낸 것으로, 겸재가 그린 금강산 진경산수화 중에서도 대표작으로 꼽히죠. 금강산의 수많은 봉우리가 모두 한눈에 들어오도록 위에서 내려다본 시점으로, 뾰족한 돌산과 나무숲이 우거진 흙산을 오로지 점과 선만으로 뚜렷하게 대비시켜 표현했습니다. 김 연구원은 “금강산은 정선이 가장 많이 그린 주제”라며 “금강전도는 뾰족한 돌산과 봉우리는 붓을 수직으로 내려긋고, 소나무가 우거진 흙산은 옆으로 뉘어 그리는 등 필치의 차이를 잘 볼 수 있다”고 설명했어요.
겸재가 활동한 18세기 조선은 사회가 안정되며 경치 좋기로 소문난 전국의 명승지를 찾아다니는 유람 문화가 유행했어요. 명산이자 불교 성지인 금강산은 그중에서도 인기로 누구나 가보고 싶어 했죠. 겸재는 36세 때인 1711년 친구이자 뛰어난 시인인 사천 이병연의 초대로 처음 금강산을 여행하고, ‘신묘년풍악도첩’(13폭)을 그렸습니다. 김 연구원은 “겸재 진경산수화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며 “첫 여행이라 그런지 가는 길목은 물론 내금강과 해금강의 명소를 다 담아내려 노력했다”고 했죠. 소중 학생기자단은 피금정에서 출발해 단발령·장안사·보덕굴·백천교를 지나 해산정으로 나와 관동지역으로 이어지는 여행길을 그림으로 감상했어요.

‘바다와 산의 정신을 담은 화첩’, 금강산과 동해의 초상화라는 뜻으로 1747년 72세 겸재가 금강산을 여행하고 노대가의 솜씨로 그려낸 ‘해악전신첩’의 ‘금강내산’(간송미술문화재단).
약 3m에 달하는 길이로 눈길을 끄는 ‘봉래전도’는 한때 중국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림 첫머리와 뒤에 중국 문인들이 쓴 글이 붙어있어요. 항저우의 골동가게에서 구했다, 누가 그렸는지 모르겠지만 뛰어나다, 찾아보니 조선의 겸재 정선이 그린 것이다 식으로 설명하는 내용이 들어있죠. 조선 사신이 중국에 갈 때 겸재 그림을 가져가 보여줬다는 기록도 있어 중국에서도 겸재 그림에 꽤 관심이 있었던 것으로 보여요. 이 그림은 오른쪽에서부터 금강산 주변, 단발령이 있는 금강산 입구, 장안사를 시작으로 한 금강산 주요 지역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겸재 정선’ 기획전 1부 ‘진경에 거닐다: 겸재 정선 진경산수화’ 전시실 전경. 호암미술관
무대는 금강산과 관동에서 한양과 근교로 옮겨집니다. 겸재는 숙종 말년에 한양의 백악산 서쪽 장동, 지금의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일대에서 태어났어요. 지방서 관직을 했던 시기를 제하면 평생 한양에 살았던 그는 한양을 그린 그림도 여럿 남겼습니다. 특히 장동의 경우 주요 경치 8곳을 골라 두 번에 걸쳐 화첩을 만들었는데 구성이 약간 달라 비교하는 재미가 있죠. 자하동·청송당·대은암·독락정·취미대·청풍계·수성동·필운대를 그려 76세경 만든 ‘장동팔경첩’은 간송미술문화재단이, 대은암·청풍계·청송당·독락정·취미대·창의문·백운동·청휘각을 그려 80세 초반 만든 ‘장동팔경첩’은 국립중앙박물관이 각각 소장하고 있는데, 이번 전시에선 둘 다 볼 수 있어요.
그간 보기 힘들었던 그림으로 ‘연강임술첩’(1742)을 빼놓을 수 없죠. 북송대 지식인 소식의 ‘적벽부’가 집필된 해(1082)와 같은 임술년, 양천현령 겸재가 경기도관찰사 홍경보의 초청으로 연천현감 신유한과 연강(임진강)에서 뱃놀이하고 그린 이 화첩은 홍경보의 서문과 신유한의 ‘의적벽부’ 글을 더해 총 셋을 만들어 나눠 가졌죠. 하나는 행방을 알 수 없고, 홍경보본과 겸재본만 남았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함께 걸려 비교하며 볼 수 있게 됐어요. 뱃놀이의 시작인 ‘우화등선’과 마치는 ‘웅연계람’은 가로가 길게 그려져 뱃놀이의 여정을 모두 아우르는 듯하죠.

겸재의 임진강(연강) 기행 그림첩 ‘연강임술첩’의 전시 영역. 호암미술관
다른 그림도 잘 그린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의 흔치 않은 인물화이자 자화상으로 추정되는 ‘독서여가도’(경교명승첩·간송미술문화재단).
겸재의 집안은 오랜 양반 가문이기는 했으나 직계로는 증조부부터 초시(과거의 첫 시험)도 거치지 못하고 아버지도 일찍 여의는 등 집안이 쇠락했어요. 소년 가장으로 끼니를 걱정해야 했던 겸재는 당시 명문가였던 외갓집의 도움으로 글공부를 했지만 그 역시 초시를 거치지 못했죠. 다만 학자이자 당대의 시인으로 꼽힌 김창흡의 제자가 되고, 예술적 소양이 풍부한 사천 이병연, 관아재 조영석 등과 막역한 벗으로 지내면서 상부상조하고, 한동네에 대대로 살던 안동김씨 가문의 후원을 받고 시·서·화 특히 그림에서 재주를 꽃피우며 신묘년풍악도첩·(전)해악전신첩으로 일약 문예계의 스타로 떠올랐죠. 비록 41세에 이르러서야 추천을 받아 관직에 나갔지만, 후에는 경학 시험을 통과하고 영조의 배려로 대우를 받아 40여 년간 지방수령을 비롯한 여러 관직을 지냈어요. 사후에는 영조의 지시로 정2품 한양판윤에 추증됩니다.

‘인왕산 골짜기의 집’이라는 뜻으로 겸재 정선이 살았던 인왕산의 집을 그린 ‘인곡유거’(경교명승첩·간송미술문화재단).
겸재는 여기에 이황의 도산서당을 그린 ‘계산정거’, 박자진이 송시열을 찾아 발문을 요청하는 장면을 그린 ‘무봉산중’, 박자진의 집을 그린 ‘풍계유택’, 본인의 집을 그린 ‘인곡정사’를 차례로 담았죠. 김 연구원은 “퇴계 이황에서부터 이어진 문인의 뿌리를 강조하고 자신의 집안에 대한 자부심을 보여 주는 예로 매우 중요하다”고 했죠. 화첩 형태라 한 번에 한 점밖에 전시를 못하다 보니 옆에 디지털 화첩을 마련해 하나씩 확대해가며 전부 살펴볼 수 있게 했는데요. 계상정거의 경우 크기는 작지만 대표작으로 꼽히는 데다 1000원권 화폐 뒷면 그림이기도 하다 보니 관람객들이 줄 서서 보기도 했죠.

겸재가 자신의 집안에 대한 기억과 자부심을 보여 주는 예로도 중요한 ‘퇴우이선생진적첩’(삼성문화재단)에 실린 ‘계상정거’는 이황의 도산서당을 그린 것으로 1000원권 화폐 뒷면 그림이기도 하다.
사대부의 충절과 더불어 십장생 중 하나로 장수를 의미하는 소나무 그림에 이어 겸재의 영향을 받은 화가들의 그림까지 둘러본 뒤 전시를 기획한 조지윤 리움미술관 소장품연구실장을 만난 소중 학생기자단은 “이렇게 대규모 겸재 정선 전시를 기획한 계기가 궁금하다”며 질문을 쏟아냈어요. 조 실장은 “워낙 유명한 화가이기에 회화 큐레이터라면 한번쯤 마음에 둘 만하다 보니 그간 겸재 정선을 다룬 전시는 많았지만, 명성에 비해 그의 작품세계를 총망라하는 전시는 없었다”며 “저 역시 오래 품었는데, 내년 겸재 탄생 350주년, 올해 삼성문화재단 창립 60주년 등 상황이 뒷받침되며 약 3년 정도 준비해 그간의 아쉬움을 지울 대규모 전시를 선보이게 됐다”고 말했죠.

‘사직송’(고려대학교박물관)은 노송 한 그루만으로 화면을 가득 채운 드문 사례로, 실제 사직단에 있는 소나무를 그린 것이어서 매우 흥미롭다.
“진경산수화란 정확히 어떤 장르인지” 아리송하다는 진하 학생기자에게 조 실장은 “한마디로 우리 산천의 아름다움을 그린 것으로 겸재는 자신만의 개성과 시각을 더해 진경산수화를 대성했다”고 했죠. “옛 그림은 풍경을 그릴 때 실제 모습이 아닌, 머릿속으로 상상한 가장 이상적인 모습으로 그렸어요. 이를 관념산수화라고 하죠. 여기서 이제 실제 풍경도 아름답다며 우리나라 명승지를 담은 실경산수화를 그리는 움직임이 나타나요. 진경산수화는 실경산수화의 흐름을 토대로 우리 산천 풍경을 그리되, 자신만의 필법으로 재구성한 겁니다. 아까 전시장에서 본 ‘비로봉’을 예로 들면, 실제 비로봉의 모습을 담되, 금강산 최고봉답게 구도와 크기, 표현 방식에서 주변 암석보다 훨씬 더 크고 웅장하게 그려냈죠.”

청소년 감상 프로그램 워크시트에 실린 ‘계상정거’와 실제 1000원권 지폐를 비교해본 김태린 학생기자.
조 실장은 이어 인왕제색도에 관해 설명했죠. “앞서 말했듯, 겸재는 실제 풍경에 자신의 경험과 개성을 더해 진경산수화를 그렸는데요. 여러 번 갔던 금강산을 그린 그림들과 마찬가지로, 거의 평생을 인왕산 기슭에 살던 겸재가 인왕산을 정말 많이 보고 이를 자기식으로 표현해 실제 모습과 약간 다릅니다. 비를 맞은 암벽을 검게 칠한 것도 한 예죠.”
주의 깊게 듣던 진하 학생기자가 “진경산수화 외에 겸재가 가장 잘 그린 그림은 무엇이고, 겸재의 그림 기법이나 화풍 중 가장 특징적인 것은 뭔지” 질문했어요. “전시로 봤듯 겸재는 다양한 장르를 그렸고, 또 대부분 잘 그렸다”고 운을 뗀 김 연구원은 “굳이 꼽자면 2층에서 본 여산초당처럼 옛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고사도를 자신의 상황, 조선의 풍습 등에 맞게 의도적으로 변형해 친숙하게 그리며 자신의 문인적 면모 또한 내비친 것을 들 수 있다”고 했죠.

‘겸재 정선’ 기획전을 통해 겸재의 예술세계를 탐방한 서진하·김도연·김태린(왼쪽부터) 학생기자가 호암미술관 앞에서 겸재의 진경산수화 속 인물처럼 주변 경관을 둘러보고 포즈를 취했다.
태린 학생기자는 “기획자로서 꼽는 이 전시 하이라이트 작품, 사람들이 실제로 오래 감상하는 작품, 저희 또래 어린이·청소년이 좋아하는 작품이 궁금하다”며 전시 관람법을 추천해달라고 했죠. 조 실장은 “대표작 중에서도 대표로 꼽히는 인왕제색도·금강전도를 비롯해 전시에 나온 모든 작품이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도 “예술가로서의 겸재, 문인으로서의 겸재를 아울러 보여주는 퇴우이선생진적첩을 주의 깊게 보면 좋겠다”고 했죠. 전시 구성에 있어서도 퇴우이선생진적첩은 자세한 설명과 디지털 미디어 전시물까지 알차게 마련됐어요.

친구 사천 이병연과의 약속으로 한강을 비롯하여 서울의 빼어난 경치와 다양한 고사를 그려 만든 ‘경교명승첩’(간송미술문화재단)에 실린 ‘압구정’은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일대의 옛 모습을 담았다.
동행취재=김도연(경기도 유현초 6)·김태린(경기도 유현초 6)·서진하(경기도 홈스쿨링 중1) 학생기자
기간: 6월 29일까지(5월 5일은 ‘인왕제색도’ 교체 전 마지막 연휴로 개관)
관람시간: 오전 10시~오후 6시(월요일 휴관, 매표 마감 오후 5시)
관람료: 성인 1만4000원, 청소년(만 7~24세)·노인(만 65세 이상) 7000원, 2주 전부터 홈페이지 예약
-김도연(경기도 유현초 6) 학생기자
호암미술관에서 열리는 ‘겸재 정선’ 전시회를 취재했습니다. 이름만 알고 있던 조선시대 화가이자 문인인 겸재 정선에 대해 배우고 그의 다양한 작품을 직접 볼 수 있어 더욱 뜻깊었죠. 겸재 정선을 다룬 최대 규모로 전시로, 금강산부터 동해, 한양의 남산과 압구정 등 조선 시대의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그림들을 통해 그 시절을 엿볼 수 있었어요. 또 섬세한 묘사로 그의 정교한 표현력을 느낄 수 있었죠. 특히 미술에 관심은 크지만 큐레이터라는 직업에 대해 잘 몰랐던 터라, 해설을 듣고 인터뷰도 진행하며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전시 기획 단계부터 지금까지 많은 사람의 노력이 있었다는 점, 겸재의 삶과 작품 이야기도 깊은 인상을 남겼죠.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설명을 듣고 그림 속 산 위의 큰 나무를 찾아본 것도 기억에 남아요.
-김태린(경기도 유현초 6) 학생기자
‘겸재 정선’ 특별전은 제 첫 취재였어요. 금강산 그림이 한 코너를 이룰 정도로 겸재는 금강산을 정말 좋아했나 봅니다. 금강산에 6~7번 갔다는데 그때는 카메라나 휴대전화가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직접 본 것을 기억해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게, 또 자기만의 스타일로 잘 그린 게 신기했어요. 그림 속 곳곳에 집·정자· 절·사람 등이 숨은그림처럼 자리 잡고 있는 것도 재밌었죠. 가장 유명한 그림이자 국보인 인왕제색도와 금강전도를 직접 볼 수 있어서 정말 뿌듯했습니다. 겸재가 진경산수화 외에 동물·곤충·새 등도 그렸다는 것은 이번에 처음 알았어요. 시인인 친구 사천 이병연과 서로 그림과 시를 주고받으며 우정을 나눈 모습을 보며 부럽기도 했답니다.
-서진하(경기도 홈스쿨링 중1) 학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