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관론 금물"…미·중 패권다툼 속 한국의 생존 전략은?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와 '관세'를 묘사한 3D 프린팅 일러스트레이션. REUTERS=연합뉴스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와 '관세'를 묘사한 3D 프린팅 일러스트레이션. REUTERS=연합뉴스

 트럼프 2기를 맞아 미·중 전략 경쟁이 한층 더 치열해지고 있다. 100일도 채 안 된 트럼프 2기 정부는 '관세 폭탄'을 내세워 온 세상을 흔들고 있고, 이에 맞서는 중국 또한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을 기세다. AI 첨단 기술을 앞세운 중국과 리쇼어링을 가속하는 미국, 변화하는 양국 간의 구조적 대립 양상 속에서 한국은 산업 중첩과 공급망 압박이라는 이중 과제에 직면했다. 단기 대응을 넘어 중장기 산업 전략 재정비가 절실한 시점이다.

 현대중국학회는 25일 국민대에서 ‘제약 속의 중국: 위기의 양상과 새로운 가능성’을 주제로 춘계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중국정치 전문가 이희옥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와 미국정치 전문가 서정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기조 발제 이후 중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트럼프 2기 미·중의 움직임을 분석하고 한국의 대응 전략을 논의했다.  

현대중국학회는 25일 국민대 본부관에서 ‘제약 속의 중국: 위기의 양상과 새로운 가능성’을 주제로 춘계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현대중국학회는 25일 국민대 본부관에서 ‘제약 속의 중국: 위기의 양상과 새로운 가능성’을 주제로 춘계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트럼프 2기 관전포인트: 중국과의 통상정책 VS 패권경쟁  

서정건 교수는 '트럼프 2.0' 시대를 바라보는 미국 내 평가는 여전히 다양하다고 평가했다. 취임 100일을 채우지 않은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對中) 관세정책을 "거래"인지 아니면 "전략"인지로 판단하기엔 아직 이르다는 신중론을 보였다.  

서 교수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 개인의 즉흥적인 행보와 그를 대통령에 올린 워싱턴 내 '트럼프 정치연합(coalition)' 간의 간극에 주목한다고 말한다. 트럼프는 관세 인상으로 중국을 압박하는 듯하면서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나이스 가이'(Nice guy)라고 치켜세우는 이중적 태도를 보인다. 반면 워싱턴 내 보수 엘리트들은 보다 체계적이고 공격적인 대중 전략을 요구하고 있어 향후 양측의 조율 여부가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5일 국민대 본부관에서 개최된 현대중국학회 2025 춘계 공동학술대회의 첫 세션. ‘제약 속의 중국: 위기의 양상과 새로운 가능성’을 주제로 발표 중인 서정건 경희대 교수.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지난 25일 국민대 본부관에서 개최된 현대중국학회 2025 춘계 공동학술대회의 첫 세션. ‘제약 속의 중국: 위기의 양상과 새로운 가능성’을 주제로 발표 중인 서정건 경희대 교수.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서 교수는 또 트럼프가 역사의 전례를 따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971년 닉슨 전 대통령이 단행했던 10% 보편 관세 부과 조치와 유사하게 단기적 충격을 통해 협상력을 높이는 전략을 선택했다. 닉슨이 발표 4개월 만에 타협을 이끌어낸 전례를 감안하면 트럼프 역시 올여름까지 어떻게든 협상 국면을 정리하려는 속내가 읽힌다.

미국 내 중국 견제 기조는 트럼프 개인을 넘어 양당 모두의 공감대를 얻었다. 그러나 민주당은 아시아계 유권자들의 표심을 의식해 대중 외교에서 보다 유연한 접근을 시도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향후 단순한 '거래' 수준을 넘어 일관된 대중 전략을 추진할지 아니면 트럼프식 즉흥 외교가 반복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서정건 교수는 트럼프의 정치적 자유도가 높아진 만큼 워싱턴 내부에서의 트럼프 정치 연합과의 힘겨루기 양상이 트럼프 2기의 대중 정책을 좌우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25일 국민대 본부관에서 개최된 현대중국학회 2025 춘계 공동학술대회의 첫 세션. ‘제약 속의 중국: 위기의 양상과 새로운 가능성’을 주제로 줌 발표 중인 안치영 인천대 교수.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지난 25일 국민대 본부관에서 개최된 현대중국학회 2025 춘계 공동학술대회의 첫 세션. ‘제약 속의 중국: 위기의 양상과 새로운 가능성’을 주제로 줌 발표 중인 안치영 인천대 교수.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이에 대해 안치영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교수는 미·중관계는 우리의 국가이익과 대외관계를 규정하는 중요한 대외적 환경으로, 미국의 대외 정책과 대중국 정책, 그리고 그에 대한 중국의 대응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그 어느 시기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미국의 최근 대중국 공세가 중국의 부상을 봉쇄하기엔 늦었다"고 평가하며 "중국은 현재를 ‘백년 만의 대변국’이라 인식 속에 움직이고 있어 중국이 구상하고 만들어 가려는 질서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25일 국민대 본부관에서 개최된 현대중국학회 2025 춘계 공동학술대회의 첫 세션. ‘제약 속의 중국: 위기의 양상과 새로운 가능성’을 주제로 발표 중인 은종학 국민대 교수.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지난 25일 국민대 본부관에서 개최된 현대중국학회 2025 춘계 공동학술대회의 첫 세션. ‘제약 속의 중국: 위기의 양상과 새로운 가능성’을 주제로 발표 중인 은종학 국민대 교수.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위기는 곧 기회"라는 낙관론은 금물

은종학 국민대학교 중국학부 교수는 트럼프 2기의 중국 견제와 재공업화 시도가 미국 일방의 승리로 완성될 수 없어 한국은 미·중의 불편한 공존 아래 진전을 이뤄내야 한다고 보았다.  

은 교수는 미국은 오랜 기간 무역 적자를 감수하며 세계에 달러 유동성을 공급해 왔지만 경제 규모가 축소된 지금은 그 역할을 계속 수행하기 어려운 구조적 제약에 직면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1945년 전 세계 GDP의 35%를 차지했던 미국이 현재 15% 수준으로 내려왔다는 것을 예로 들었다. 트럼프 행정부가 무역 적자 확대를 거부하고 대외 경제 구조를 재편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은 교수는 중국은 겉으로는 여유롭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중국 역시 심각한 경제적 제약 속에서 '버티기'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중국은 트럼프 1기부터 중장기 과학기술 발전계획을 세워 자립자강을 단계적으로 준비해왔다.  

은 교수는 또 "위기는 곧 기회"라는 낙관론이 통용되기엔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위기는 위기”라는 것이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 양대 시장 사이에서 과학기술 및 제조업 생태계에 대한 장기적 대응 전략을 보다 현실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한국의 첨단산업 일부가 미국으로 유출되고 우리의 주력 산업 및 기술에 대한 중국의 추격·추월이 전면적인 상황으로 단순히 R&D 투입을 늘리는 것을 넘어 한국의 자기 변혁과 새로운 산업 편제를 위한 중장기적 정책 디자인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지난 25일 국민대 본부관에서 개최된 현대중국학회 2025 춘계 공동학술대회의 첫 세션. ‘제약 속의 중국: 위기의 양상과 새로운 가능성’을 주제로 발표 중인 이희옥 성균관대 교수.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지난 25일 국민대 본부관에서 개최된 현대중국학회 2025 춘계 공동학술대회의 첫 세션. ‘제약 속의 중국: 위기의 양상과 새로운 가능성’을 주제로 발표 중인 이희옥 성균관대 교수.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中,강요된 자립화와 제재의 역설

이희옥 교수는 중국은 현재의 국제 질서를 단순히 따라가는 데서 벗어나 스스로 새로운 '질서의 주체'가 되려는 대전환기를 맞고 있다고 진단했다. 시진핑 체제는 이를 "역사와의 대화"라 규정하며 과거 세계 경제의 30%를 차지했던 대국의 DNA를 회복하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희옥 교수는 지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의 '항해' 퍼포먼스를 예로 들며 중국이 내륙 국가를 넘어 해양 강국으로 도약하려는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고 말했다. 중국은 일대일로(一带一路)와 주변국 외교 강화 전략을 구체화했으며 최근에는 "중앙주변공작회의"를 통해 주변국 관리에 다시 힘을 쏟고 있다. 중국은 2035년까지 사회주의 현대화, 2050년까지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 건설을 목표로 설정했지만 외부적으로는 "강국"이라는 용어를 삼가며 신중한 행보를 보인다.

트럼프 2.0 시대를 맞아 중국은 보다 정교한 대응 전략을 가동 중이다. 유럽 및 인도, 한국, 일본과의 관계 개선, 개발도상국에 대한 무관세 정책 확대, 글로벌 서비스 정책 강화 등 일련의 조치들은 짧은 기간 동안 치밀하게 실행됐다. 트럼프의 대중 관세 압박에 맞서 중국은 내수 강화, 위안화 절하, 국채 매각 등 다양한 방어 수단을 병행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 내부적으로는 분명 위기의식이 존재한다. 이희옥 교수는 경제성장률 둔화, 총요소생산성(TFP) 저하, 세계 경제 내 위상 약화 등 구조적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시진핑 체제에 대한 국민적 만족도가 일정 수준 유지되고 있는 점은 중국의 지속 가능성 평가에서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매화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연구원 jin.meihua@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