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T 유심 무상 교체 첫날, 재고 부족에 시민 발 동동…예약 앱까지 접속 장애

28일 오전 10시30분 노량진역 인근 SK텔레콤 직영점에 시민들이 유심(USIM) 교체를 위해 대기하고 있다. 약 170여명이 대기한 줄은 인근 골목까지 이어졌다. 박종서 기자

28일 오전 10시30분 노량진역 인근 SK텔레콤 직영점에 시민들이 유심(USIM) 교체를 위해 대기하고 있다. 약 170여명이 대기한 줄은 인근 골목까지 이어졌다. 박종서 기자

 
28일 오전 10시쯤 서울 동작구 노량진역 인근 SK텔레콤(SKT) 직영점 앞엔 170명이 넘는 시민이 줄지어 서 있었다. 이날은 SKT가 가입자 유심(USIM) 정보 유출 의혹과 관련해 전 고객을 대상으로 유심 무상 교체 서비스를 시작한 날이다. SKT 측 관계자가 “오후 2~3시쯤 유심이 입고되니 번호표를 나눠드리겠다”고 말하자 앞줄에 있던 한 노인은 “아침 댓바람부터 서 있는데 다시 오라는 것인가”라며 날 선 반응을 보였다.

‘오픈런’을 불사한 시민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SKT 가입자인 90세 모친과 함께 왔다는 나모(56)씨는 번호표 1번을 받았다. 나씨는 “주말에 다른 대리점을 돌아 다녔는데 재고가 떨어졌다고 해 유심을 바꾸지 못했다”며 “모든 은행 업무를 휴대전화로 보고 있어서 하루라도 빨리 바꾸는 것밖에 답이 없다고 생각해 아침 일찍 왔다”고 말했다. 

비슷한 시각 서울 마포구 소재 한 SKT 직영점 앞에서도 100명 넘는 대기 줄이 만들어졌다. 손영숙(58)씨는 “가족이 전부 SKT 가입자라 찝찝하다”며 “해외 여행을 앞두고 있는데 유심 보호 서비스에 가입하면 로밍이 막혀서 유심 자체를 교체해야 한다”고 했다. 직장인 박민우(34)씨는 “향후 SKT 대처에 따라 통신사를 바꿀 생각도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8일 오전 10시 서울 마포구 도화동에 있는 SKT 대리점 앞에서 유심을 교환하려는 시민이 100명 넘게 긴 줄을 서고 있다. 전율 기자

28일 오전 10시 서울 마포구 도화동에 있는 SKT 대리점 앞에서 유심을 교환하려는 시민이 100명 넘게 긴 줄을 서고 있다. 전율 기자

 

"유심 언제 입고될지 몰라…통신사 교체 생각도" 

SKT는 대기 시간을 줄이기 위해 온라인 예약 후 유심 교체를 권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날 SKT 공식 홈페이지와 애플리케이션(앱)에 이용자가 몰리면서 접속 장애 현상이 빚어지기도 했다. SKT는 “현재 유심 100만 개를 확보했으며 5월 말까지 약 500만 개를 추가 확보한다“고 방침을 밝혔지만, 유심을 교체하지 못한 시민들은 인터넷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유심이 언제 입고될지 모르겠는데 그냥 통신사 바꾸는 게 나을 것 같다” 등 불안감을 쏟아냈다.


 
집단소송 조짐도 있다. 네이버 ‘SK텔레콤 개인정보유출 집단소송카페’에선 28일 오후 4시 기준 가입자가 2만3487명을 넘어섰다. 가입자들은 “(SKT는) 혼쭐이 나 봐야 한다“ “소송은 선택이 아닌 필수” “언제까지 매번 유출을 당해야 하는지 화난다” 등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일부 법무법인은 집단소송 추진 의사를 밝히면서 참여 희망자를 모집하기도 했다.

유영상 SK텔레콤 대표이사가 25일 서울 중구 SKT타워에서 고객 정보 보호조치 강화 설명회를 열고 SK텔레콤 이용자 유심(USIM) 정보 해킹에 대해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뉴스1

유영상 SK텔레콤 대표이사가 25일 서울 중구 SKT타워에서 고객 정보 보호조치 강화 설명회를 열고 SK텔레콤 이용자 유심(USIM) 정보 해킹에 대해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뉴스1

"가입자 요금 감면 등 다양한 방안 필요"  

기업의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배상 책임이 법원에서 인정되려면 기업 측의 과실이나 기술적·관리적 보호 조치 미흡, 피해 여부 등이 입증돼야 한다. 2012년 KT 개인정보 유출 사고의 경우 가입자 약 870만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돼 논란이 됐다. 가입자 340여명은 KT를 상대로 각 50만원 상당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지만, 상고심까지 이어진 소송에서 법원은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당시 대법원은 “KT가 인증 서버에 저장된 접속 기록을 확인·감독한 이상 개인정보 처리 내역 등에 관한 확인·감독을 게을리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개인정보 유출 사건을 다수 대리한 법무법인 민후 김경환 변호사는 “해킹 경로가 밝혀져 SKT 측 잘못이 드러난다면 손해배상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며 “향후 정부 및 수사기관 조사를 통해 귀책과 과실 여부를 확인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SKT 측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가입자의 불안을 해소할 방안을 제시해야 한단 제언도 있다. 황석진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유심 교체만으론 가입자의 불안을 잠재우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SKT는 철저한 조사뿐만 아니라 요금제 감면 등 가입자를 위한 다양한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