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 건국 7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북한군이 행진하는 모습. AP=연합뉴스
파병 인정 동시에 "작전 종결" 선언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6월 평양에서 정상회담 뒤 서명한 조약을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러시아 크렘린궁은 앞서 푸틴이 26일(현지시간) 발레리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에게 화상 보고를 받는 형식으로 북한군 파병을 처음 인정했다. "북한 군인과 장교들은 우크라이나 습격을 격퇴하는 동안 러시아군과 어깨를 나란히 해 전투 임무를 수행했다"면서다.
지난해 10월 국가정보원이 북한군 특수부대 1만 1000여명이 러시아로 이동 중이란 관련 동향을 공개한 이후 6개월 만에 양측이 처음으로 이를 시인한 건 러시아의 쿠르스크 탈환과 무관치 않다.
북한으로선 4000명 넘는 사상자가 발생한 데다 생존 병사들의 귀환이 임박하며 더는 파병 사실을 은폐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파병 인정과 동시에 파병 작전의 성공적 종결을 알리며 전사자들에 대한 영웅화 작업을 통해 민심 이반을 최소화하려는 측면도 있어 보인다. 러시아로서도 북한군에 대한 수요가 크게 줄어든 한편 쿠르스크 회복이라는 전과를 드높이기 위해 어떤 식으로든 정리가 필요했다는 분석이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 과정에서 북한은 전쟁 포로 등이 발생했기 때문에 전후 처리 문제를 위해서라도 파병 사실을 공식 인정하는 절차가 필요했을 것"이라고 짚었다.
북한은 본격적인 '파병 결산'도 재촉했다. 입장문에서 "(파병은)금후 조로(북·러) 친선 협조 관계의 모든 방면에서 확대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게 될 것"이라고 밝힌 대목은 러시아 측에 반대 급부 제공을 상기하는 취지로 읽힌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김정은 입장에선 파병이 정당했다는 내부 선전을 위해 반대 급부를 받아와야 하고, 종전이 매듭지어지기 전에 일종의 북·러 간 결산이 이뤄지는 게 유리하다"고 분석했다.
푸틴도 "김정은 감사"…러 당국자 '동맹' 첫 거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발레리 게라시모프 러시아군 총참모장으로부터 러시아 서부 쿠르스크 지역 탈환에 대한 화상 보고를 받고 있다. 크렘린궁 홈페이지 캡처
당중앙군사위는 파병은 "(조약)이행의 가장 출실한 행동적 표현의 본보기적 사례"라고 강조했다. 푸틴은 성명에서 "조선인민군 부대의 (전투)참여는 조약의 문구와 정신에 따른 것"이라며 4조를 특정했다. 또 "김정은 위원장과 지도부, 북한 인민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러시아 국민은 북한 특수부대원들의 업적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며, 북한 영웅들을 러시아의 전우들과 동등하게 기릴 것"이라고 밝혔다.
동시에 북한은 "동맹관계, 형제관계의 과시" 등을 거론했다. 이는 북한이 혈맹으로 인식하는 중국, 형제국으로 부르는 쿠바 이상으로 러시아와의 관계를 중시하고 있다는 뜻이다.
특히 러시아 당국자가 북한을 처음 '동맹'으로 묘사히기도 했다. 마리야 자하로바 외교부 대변인은 공식 성명과 현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북한 친구들이 보여준 연대감은 우리 관계가 실질적으로 동맹 수준임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해 6월 북·러 정상회담 뒤 김정은이 "동맹관계라는 새로운 높은 수준"이라고 의미를 부여했을 때도 함께 단상에 선 푸틴은 동맹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지 않았다. 안드레이 루덴코 러시아 외교 차관도 지난해 11월 북·러 조약의 비준을 앞두고 "이 조약은 군사 동맹 구성을 규정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이와 관련,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 국면에서 북·러 모두 북한군 참전은 러시아와의 동맹 관계에 따른 공식 참전이고, 이에 따라 국제 규범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주장을 하는 게 유리하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김정은·푸틴 '자의적 개입' 선례 남겨
한·미 상호방위조약 2조는 어느 한쪽에 대한 무력공격 위협이 있을 경우 이를 저지하기 위한 조치를 '협의와 합의' 하에 취하도록 규정한다. 애초에 북·러 신조약 4조가 이를 의식한 것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북한은 "김정은 동지께서는 조성된 전황이 조약의 제4조 발동에 해당된다는 분석과 판단에 근거해 참전을 결정하고 러시아 측에 통보"했다고 밝혔는데, 이는 향후에도 조약 4조를 양국 지도자 개인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발동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북한은 "앞으로도 조로 국가 간 조약 정신에 기초한 임의의 행동에도 의연 충실할 것"이라고도 했다.
이에 따라 김정은의 러시아 답방 등을 통한 북·러 정상회담 가능성도 거론된다. 다만 김정은이 다자 정상회의 형식을 선호하지 않아 러시아 전승절(5월 9일) 외에 별도의 일정이 될 수 있다는 게 정부 안팎의 시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