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땅 된 한국…네팔 청년 극단선택, 악몽의 돼지농장

전남이주노동자 인권단체가 지난 8일 오전 전남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주노동자 괴롭힘 의혹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 전남노동권익센터

전남이주노동자 인권단체가 지난 8일 오전 전남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주노동자 괴롭힘 의혹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 전남노동권익센터

지난 2월 외국인 근로자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전남 영암의 한 축산 농장에서 사업주가 근로자들을 상습적으로 폭행하고, 임금을 체불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고용노동부 목포지청은 30일 “외국인 근로자를 상습 폭행하고, 임금을 체불해온 양돈업자 A씨(43·구속)를 근로기준법, 최저임금법 위반 등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A씨는 지난해 6월부터 올해 2월까지 자신이 운영하는 농장에서 일하던 네팔 국적의 근로자 B씨(27)를 비롯한 외국인 근로자 10명에게 상습적인 폭행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조사 결과 A씨는 농장 사무실 내 폐쇄회로(CC)TV 사각지대에서 보드마카 펜이나 볼펜으로 외국인 근로자들의 복부와 옆구리를 찌르는 등 수시로 폭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A씨는 자신이 화가 날 때마다 손바닥으로 근로자의 뺨이나 머리를 때리거나, 밤새 사무실 화장실에 가두기도 했다.

A씨의 폭행에 시달리던 네팔인 B씨는 지난 2월 22일 기숙사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해 숨졌다. B씨의 사망 이후 이주노동자 인권 단체가 “직장 내 괴롭힘에 따른 사건”이라며 진상조사를 촉구했고, 노동당국 등이 수사에 착수했다.


 노동당국은 A씨 농장에서 일했던 외국인 근로자 21명을 조사한 결과 이 중 10명이 “A씨로부터 직접적인 폭행 피해를 입었다”고 진술했다. 폭행 피해자들은 대부분 네팔과 베트남 등에서 온 노동자로 언어 장벽 등의 제약으로 피해 사실을 신고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A씨는 지난해 10월에는 네팔 출신 근로자 C씨의 뺨을 때려 상해를 입히기도 했다. 당시 C씨는 A씨에게 맞고 쓰러지는 과정에서 금속 소재의 문틀에 머리를 부딪쳐 병원 치료를 받았다. 

 이후 A씨는 C씨에게 “다른 사업장으로 옮겨주겠다”며 회유한 뒤 자해로 다친 것처럼 꾸민 합의서에 서명하게 했다. 당시 문서에는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내용도 포함된 것으로 드러났다.

 A씨는 조사 과정에서 “외국인 근로자들이 일하러 농장에 오자마자 더 좋은 사업장으로 옮기려고만 하고, 일을 열심히 하지 않아 때렸다”고 진술하는 등 대부분의 혐의를 인정했다.

 A씨는 상습적으로 임금을 체불한 혐의도 받고 있다. 그는 2022년부터 최근까지 총 62명의 외국인 근로자에게 2억 6000만원 규모의 퇴직금과 수당을 지급하지 않았다. 이 중 일부는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월급을 받거나, 연차휴가 미사용 또는 야간근로 수당을 받지 못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A씨의 폭행은 모두 CCTV가 설치되지 않은 공간에서 은밀하게 이뤄졌다”며 “열악한 처지에 있는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폭행과 임금 착취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감독을 강화하고 제도 개선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