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산사고본 '110년 유랑'에 깃든 사연…평창 실록박물관, 첫 기획전

지난 2023년 설립된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강원도 평창 진부면)이 약 10개월 간 새단장 끝에 5월1일 재개관하면서 첫 기획전 ‘오대산사고 가는 길’을 연다. 30일 열린 언론공개회에서 관계자들이 기획전시실의 유물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 국가유산청

지난 2023년 설립된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강원도 평창 진부면)이 약 10개월 간 새단장 끝에 5월1일 재개관하면서 첫 기획전 ‘오대산사고 가는 길’을 연다. 30일 열린 언론공개회에서 관계자들이 기획전시실의 유물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 국가유산청

 

“(전략) 관리들 수레 동으로 행차하니/ 포쇄하라 왕께서 명한 때문/ 귀한 책 차례로 열람하니/ 밝은 햇빛 종일 숲 비추네”
 
조선 영·정조 때 문신 채제공(1720~1799)이 1749년(영조 25) 왕명에 따라 강원도 오대산 사고(史庫)에서 포쇄(曝曬)를 행한 뒤 남긴 시문의 일부다. 포쇄란 습기에 약한 서적 관리를 위해 주기적으로 책을 꺼내 바람에 말리는 일. 임진왜란 후 조선 왕실은 실록을 보다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 산속 깊이 외사고(外史庫)를 설치했고 오대산 사고도 이 중 하나였다. 2~3년에 한번씩, 총 83차례에 걸쳐 이뤄진 포쇄 작업 후 사관들은 관동 명승을 즐기고 시문이나 암각문 등을 남겼는데, 채제공의 『번암집』에도 그 사례가 실렸다.

지난 2023년 설립된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강원도 평창 진부면)이 약 10개월 간 새단장 끝에 5월1일 재개관하면서 첫 기획전 ‘오대산사고 가는 길’을 연다. 사진은 박물관 전경. 사진 국가유산청

지난 2023년 설립된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강원도 평창 진부면)이 약 10개월 간 새단장 끝에 5월1일 재개관하면서 첫 기획전 ‘오대산사고 가는 길’을 연다. 사진은 박물관 전경. 사진 국가유산청

오대산사고본 실록 환수를 계기로 지난 2023년 개관한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강원도 평창 진부면, 이하 실록박물관)이 약 10개월 간 새단장 끝에 5월1일 첫 기획전 ‘오대산사고 가는 길’을 연다. 실록을 보관했던 오대산사고의 설립과 운영, 쇠퇴의 역사를 동여도(東輿圖), 관동명승첩(關東名勝帖) 등 40여 점 유물을 통해 돌아본다.  

30일 언론 공개회를 통해 둘러본 실록박물관은 기존의 상설전시실 외에 기획전시실과 함께 어린이박물관·영상실·교육실 등을 마련해 접근 공간이 대폭 넓어졌다. “조선왕조실록 원본을 언제나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라는 특성에 맞춰 모든 전시·교육 콘텐트를 ‘실록·의궤 깊이 보기’로 구성했다. 실록박물관은 개관 후 지난해 6월까지 약 4만5000명이 관람했고 이후 개편을 위해 휴관했다.

지난 2023년 설립된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강원도 평창 진부면)이 약 10개월 간 새단장 끝에 5월1일 재개관하면서 첫 기획전 ‘오대산사고 가는 길’을 연다. 사진은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강릉 오죽헌의 방명록 『심헌록』으로 추사 김정희가 이곳에 들러 '경주 김정희'라고 이름을 남긴 게 확인된다. 강혜란 기자

지난 2023년 설립된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강원도 평창 진부면)이 약 10개월 간 새단장 끝에 5월1일 재개관하면서 첫 기획전 ‘오대산사고 가는 길’을 연다. 사진은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강릉 오죽헌의 방명록 『심헌록』으로 추사 김정희가 이곳에 들러 '경주 김정희'라고 이름을 남긴 게 확인된다. 강혜란 기자

첫 기획전에선 1606년 설립된 오대산사고에 포쇄 등 이유로 거쳐간 인물들을 조명해 상설전시와 차별화를 꾀했다. 이를테면 추사 김정희(1786~1856)는 포쇄 이후 강릉의 오죽헌(율곡 이이 생가)을 들렀는데, 이때 『심헌록』이라는 방명록에 이름을 남겨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됐다. 심헌록은 1662년 권상하(權尙夏)를 시작으로 1932년 이항구(李恒九)까지 270년 동안 오죽헌을 다녀간 인사 1149명의 이름이 수록돼 있다.


이밖에 오대산사고본이 1913년 일제에 의해 반출됐다가 1923년 관동대지진 때 상당수 소실되고 일부만 되돌아온 사연도 되짚어볼 수 있다. 당시 연구 목적으로 일본 도쿄의 동경(도쿄)제국대학으로 건너갔던 오대산사고본 중 27책이 1932년 경성제국대학(서울대학교의 전신)에 소장되면서 국내로 돌아왔고, 이후 각계 노력 끝에 2006년 47책이 서울대에 기증 형식으로 반환됐다. 2011년엔 의궤 82책도 반환됐고 2017년 일본에서 실록 1책(효종실록)이 추가로 매입·환수됐다. 전시장의 실록 표지 안쪽엔 ‘동경제국대학’ ‘경성제국대학’ ‘서울대학교규장각’ 등의 직인이 찍혀 있어 110년 유랑의 역사를 엿볼 수 있다.

지난 2023년 설립된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강원도 평창 진부면)이 약 10개월 간 새단장 끝에 5월1일 재개관하면서 첫 기획전 ‘오대산사고 가는 길’을 연다. 오대산사고본의 '110년 유랑'을 증명하듯 실록 표지 안쪽에 '동경제국대학' '서울대학교규장각' 등의 직인이 찍힌 모습. 강혜란 기자

지난 2023년 설립된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강원도 평창 진부면)이 약 10개월 간 새단장 끝에 5월1일 재개관하면서 첫 기획전 ‘오대산사고 가는 길’을 연다. 오대산사고본의 '110년 유랑'을 증명하듯 실록 표지 안쪽에 '동경제국대학' '서울대학교규장각' 등의 직인이 찍힌 모습. 강혜란 기자

지난 2023년 설립된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강원도 평창 진부면)이 약 10개월 간 새단장 끝에 5월1일 재개관하면서 첫 기획전 ‘오대산사고 가는 길’을 연다. 사진은 인근에 위치한 오대산사고로, 한국전쟁 때 불타없어진 것을 1992년 복원한 것이다. 사진 국가유산청

지난 2023년 설립된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강원도 평창 진부면)이 약 10개월 간 새단장 끝에 5월1일 재개관하면서 첫 기획전 ‘오대산사고 가는 길’을 연다. 사진은 인근에 위치한 오대산사고로, 한국전쟁 때 불타없어진 것을 1992년 복원한 것이다. 사진 국가유산청

다만 애초 ‘환지본처(還至本處·본래의 자리로 돌아감)’를 내세워 월정사 인근에서 개관한 실록박물관에 오대산사고본 전체가 돌아오진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개관 당시 계획은 이곳 수장고에 실록 75책, 의궤 82책 전부를 보관한단 것이었지만 대부분이 아직 국립고궁박물관(서울 경복궁 내) 수장고에 있다. 실록박물관엔 전시를 위한 20여책 정도만 옮겨온 상태다.

김정임 관장은 “보존연구동 신축을 통해 보다 안전한 지하수장고가 완비되면 옮겨올 것”이라며 “예산(약 200억원) 확보가 관건이지만 이르면 5년내 기대한다”고 말했다. 수장 기능을 갖추지 않았음에도 언론에 ‘전관 개관’을 홍보한 것은 “지역민들에게 교육·전시 허브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하겠다는 의미”라고 부연했다.

지난 5년 간 보수 공사를 거친 강원도 평창 월정사의 월정사팔각구층석탑(국보)이 30일 언론에 공개됐다. 고려 초기 다각다층석탑의 전형으로 꼽히는 이 탑은 상륜부 금속장엄물이 노후화하면서 2019~2024년에 걸쳐 보수 복원이 이뤄졌다. 강혜란 기자

지난 5년 간 보수 공사를 거친 강원도 평창 월정사의 월정사팔각구층석탑(국보)이 30일 언론에 공개됐다. 고려 초기 다각다층석탑의 전형으로 꼽히는 이 탑은 상륜부 금속장엄물이 노후화하면서 2019~2024년에 걸쳐 보수 복원이 이뤄졌다. 강혜란 기자

한편 이날 인근 월정사에선 지난 5년 간 보수 공사를 거친 월정사 팔각구층석탑(국보)가 언론에 공개됐다. 고려 초기 다각다층석탑의 전형으로 꼽히는 이 탑은 상륜부 금속장엄물이 노후화하면서 2019~2024년에 걸쳐 7층 옥개석 이상을 해체하고 선단부, 보주, 수연, 보개 등을 복원품으로 대체하는 공사가 이뤄졌다. 해체한 원본 유물은 보존처리를 거쳐 월정사 성보박물관에 상설전시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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