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이재명 2심 뒤집었다…선거법 유죄로 파기환송

대법원이 1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공직선거법 사건의 항소심 무죄를 파기하고 유죄 취지로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서울고법 파기환송심과 재상고심 확정판결까지 물리적 시간 때문에 이재명 후보의 6·3 대선 출마에는 지장이 없을 전망이다.

이날 대법원이 이재명 후보에 법률적으로 유죄 판단을 내리면서도 확정판결(파기자판)을 하지 않아 유권자의 최종 판단에 맡긴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다만 6·3 대선을 33일 앞두고 이 후보가 자격 논란 등 사법 리스크 족쇄를 안게 되면서 대선 레이스에 파장은 불가피해졌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1일 서울 종로구의 한 포차 식당에서 '당신의 하루를 만드는, 보이지 않는 영웅들'이란 주제로 열린 배달 라이더, 택배 기사 등 비(非)전형 노동자들과의 간담회를 마친 뒤 나서며 손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1일 서울 종로구의 한 포차 식당에서 '당신의 하루를 만드는, 보이지 않는 영웅들'이란 주제로 열린 배달 라이더, 택배 기사 등 비(非)전형 노동자들과의 간담회를 마친 뒤 나서며 손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12명 중 10명 유죄 취지…文 임명한 2명만 반대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조희대 대법원장, 주심 박영재 대법관)는 이날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 혐의로 기소된 이 후보 상고심 선고기일을 열어 대법관 12명 중 10명의 다수의견으로 “원심은 공직선거법이 규정한 허위사실공표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 후보의 골프 발언, 백현동 협박 발언 등을 전부 무죄로 판단한 2심 판단에 문제가 있으니 다시 재판하라는 의미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고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 등과 2015년 호주·뉴질랜드 출장 당시 찍은 사진. 이 대표는 2021년 이기인 당시 국민의힘 성남시 의원이 사진들을 공개하자 “조작됐다”는 취지로 말했다. [사진 이기인 최고위원, 김문기씨 유족]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고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 등과 2015년 호주·뉴질랜드 출장 당시 찍은 사진. 이 대표는 2021년 이기인 당시 국민의힘 성남시 의원이 사진들을 공개하자 “조작됐다”는 취지로 말했다. [사진 이기인 최고위원, 김문기씨 유족]

이 후보는 지난 대선을 앞둔 2021년 고(故)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을 성남시장 시절 몰랐다고 말하고, 국정감사에서 국토교통부 협박으로 백현동 부지 용도를 상향했다고 말해 허위 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은 피선거권 박탈 형인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2심은 무죄를 선고했는데 이날 대법원은 1심 판단과 궤를 같이했다. 1심은 “유권자가 받아들이는 전체적인 인상”을 중시했고, 2심은 “피고인의 이익”을 중시했는데, 1심 논리가 맞다고 본 것이다.

구체적인 유·무죄 판단 논리도 1심과 같았다. 김문기 발언과 관련해 1심 재판부는 “국민의힘이 제가 (김 전 처장과) 골프를 친 것처럼 사진을 공개했던데, 확인을 해보니까 단체 사진 중 일부를 떼 내 가지고 보여줬더군요. 조작한 거죠”(2021년 12월 29일, 채널A)란 발언을 유죄로 봤는데, 2심은 “원본 중 일부를 떼 내 보여준 것이어서 조작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며 ‘조작’이라는 표현은 골프를 쳤다는 사실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사진이 편집된 점을 의미했을 수 있다며 무죄로 봤었다.


 
대법원은 이 발언이“허위사실공표죄에 해당한다”고 못 박았다. “공직을 맡으려는 후보자가 자신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국민에게 허위사실을 공표하는 국면에서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지니는 의미와 그 허용 범위는 일반 국민이 공인이나 공적 관심사에 대하여 의견과 사상을 표명하는 경우와 같을 수 없다”며 “골프 발언은 ‘피고인이 김문기와 함께 간 해외출장 기간 중에 김문기와 골프를 치지 않았다’는 의미로 해석되고, 원심이 판단한 것과 같이 다의적인 의미로 해석되지 않는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국토부로부터 혁신도시법 의무조항을 근거로 압박을 받고 직무유기를 문제삼겠다고 협박받았다”는 발언을 “당시 상황을 과장한 표현일 수는 있지만 허위로 단정하기 어렵다”며 무죄로 판단한 2심 판결을 배척했다. “성남시는 자체적 판단에 따라 용도지역 상향을 추진하였고, 그 과정에서 국토부의 성남시에 대한 압박은 없었다. 국토부가 협박을 한 사실도 없다”며 “백현동 관련 발언은 ‘사실’의 공표이지 단순히 과장된 표현이거나 추상적인 의견 표명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는 것이다.

이번 판결로써 2020년 7월 이 후보를 기사회생시켜준 이른바 ‘권순일 판례’가 5년 만에 깨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후보는 경기도지사 시절 친형을 강제입원시킨 적 없다는 발언과 관련 허위사실공표 혐의로 2심에서 유죄를 받았다가 2020년 7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단정하기 어려운 표현의 경우 원칙적으로 의견이나 추상적 판단을 표명한 것으로 파악해야 한다”며 무죄 취지 파기환송하면서 최종 무죄를 받았었다. 이번 사건의 2심도 이 판례를 인용했는데, 조희대 대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한 판결 선고기일인 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 경찰 차벽이 설치되어 있다. 뉴스1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한 판결 선고기일인 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 경찰 차벽이 설치되어 있다. 뉴스1

 
다만 12명 재판관 중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이흥구·오경미 재판관은 허위사실공표가 아니라는 반대 의견을 냈다. “다른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큼에도 다른 합리적 해석의 가능성을 배제한 채 공소사실 발언에 부합하는 취지로만 해석하는 것은 정치적 표현의 자유와 선거운동의 자유의 헌법적 의의와 중요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결과로서, 죄형법정주의나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에게 유리하게‘라는 형사법의 기본 원칙에 반한다”는 취지에서다.

“유권자 불확실성 해소하려 초고속 결론”

이날 선고는 이례적으로 빨리 진행됐다는 점에서도 주목받는다. 기소로부터 1심 선고까지 799일(2년 2개월)이나 걸렸는데, 대법원은 상고심 선고를 항소심 후 36일 만에 결론 내렸기 때문이다. 조 대법원장이 강조해온 6·3·3(선거사범은 1심은 기소 후 6개월, 2·3심은 전심 후 3개월 내 선고) 규정상 법정 기한인 6월 26일보다도 두 달 가까이 당겨졌다.

이는 오는 11일 마감하는 대선 후보 등록을 넉넉히 앞두고 유력 대선 주자의 사법부 최종 판단을 내어 유권자의 대선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동시에 사법부의 정치 개입 논란도 최소화하려는 결정으로 풀이됐다. 후보 등록일이 지나 선거기간에 선고할 경우 사법부가 정치에 개입한다는 논란이 커질 수 있었다.

대법원 재판연구관 출신 변호사는 “이 후보가 당선될 경우 헌법 84조 논란으로 재판이 5년간 정지될 수도 있었기 때문에, 대법원으로선 반드시 6·3 대선 전 선고해야 했고 선거기간 선고도 최대한 지양하려 했을 것”이라며 “사법부가 심혈을 기울인 끝에 혼란이 극대화되는 가능성은 막은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