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유화학 업체가 밀집해 있는 전남 여수시 여수국가산업단지에서 하얀 수증기가 올라오고 있다. 연합뉴스
세계 1위 석유화학 업체인 독일 바스프는 적극적인 인수합병(M&A)을 통해 수익성이 낮은 범용 사업을 축소하고 스페셜티 중심으로 사업 구조를 개선했다. 1990년대부터 순수 석유화학 제품 비중을 줄이는 한편, 전기차용 2차 전지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해왔다. 그 결과 범용 제품 비중은 2005년 42%에서 2022년 17%까지 낮아졌다.
범용 제품을 주력으로 생산하던 독일 에보닉도 스페셜티 사업 전환에 성공한 대표 사례다. 에보닉은 1980년대 후반부터 M&A를 통해 사업 구조를 재편했고, 2000년대 초반부터는 바이오기술 연구개발(R&D)에 집중해 첨가제, 화장품 등 스페셜티 중심으로 투자했다. 에보닉의 지난해 매출은 151억5700만 유로(약 23조7100억 원)였으며, 스페셜티 사업 부문은 전체 매출의 약 78%에 해당하는 117억9200만 유로(약 18조4439억원)를 기록했다. 스페셜티 매출 비중은 2015년(68%)보다도 10%포인트 더 높아졌다.
일본 석유화학 산업도 선제적 구조조정으로 체질을 개선했다. 석유 수입국인 일본은 원가 경쟁력에서 불리해 석유화학 업체 간 자율적 M&A만으로는 경쟁력 확보에 한계가 있었다. 이에 정부 주도로 설비를 축소하고 고부가가치 사업으로 전환하는 전략을 본격화했다. 1970년대 일본 정부는 석유화학 산업에 독점금지법 적용을 한시적으로 유예해 M&A가 수월한 환경을 만들었고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범용 부문 통폐합과 함께 해외 직접진출 및 수출 확대 전략을 추진했다. IM증권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은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생산비용이 저렴한 동남아시아 국가에 직접 투자해 범용 생산기지를 확보했다.
동시에 내수 시장에서는 전자소재, 의료기기 등 스페셜티에 집중하는 연구개발 전략을 강화해왔다. 2001년부터 2023년까지 미츠비시 화학, 도레이 등 일본의 주요 석유화학 6개사 평균 매출액 대비 R&D 비중은 3.9%다. 같은 기간 한국 석유화학 4개사(LG화학·롯데케미칼·대한유화·금호석유)의 평균은 0.9%에 그쳤다.

대림은 아시아 4위 규모의 NCC와 독자 기반 기술의 고부가 폴리머 생산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사진은 대림산업 여수 석유화학 단지 고밀도 폴리에틸렌 공장 전경. 사진 대림그룹
롯데케미칼은 현대차·기아 기초소재연구센터와 협업해 모빌리티용 친환경 플라스틱 소재인 친환경 폴리메타크릴산 메틸(PMMA) 개발을 확대하고 있다. 친환경 PMMA는 플라스틱을 화학적으로 분해한 후 재융합하는 ‘해중합’ 방식이 적용돼 기존 플라스틱과 동등한 품질 구현이 가능한 제품이다.
배진영 성균관대 화학공학부 교수는 “나프타분해설비(NCC)로 기초유분을 생산하는 석유화학 기업들은 중국과의 가격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며 “ 정부 주도로 과감한 통폐합을 시행하고, 대규모 연구개발(R&D) 투자와 지원도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