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용각산에서 시작한 제약기업 보령, 우주사업 나선 이유

보령그룹 3세 김정균 대표 언론 첫 인터뷰  

민머리에 검정 사파리와 면바지는 김정균 대표의 트레이드 마크다. 첫 아이 돌 즈음 배냇머리를 민 이후로 같이 민머리를 유지하고 있다. 검정 사파리와 검정 바지는 옷에 신경쓰기 싫어서라고 답했다. 김종호 기자

민머리에 검정 사파리와 면바지는 김정균 대표의 트레이드 마크다. 첫 아이 돌 즈음 배냇머리를 민 이후로 같이 민머리를 유지하고 있다. 검정 사파리와 검정 바지는 옷에 신경쓰기 싫어서라고 답했다. 김종호 기자

지난 7일 오후 서울 북촌 보령홀딩스 사옥 3층에 자그마한 키의 일본인 남성이 나타났다. 그의 이름은 와카타 고이치(若田光一·62). 일본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 출신 유명 우주비행사였다. 우주왕복선과 국제우주정거장(ISS) 등을 이용한 우주 체류 시간이 일본인 중 가장 많은 504일에 달한다. ISS의 일본 실험모듈 ‘키보’ 구축에도 참여한 우주 최고 엔지니어이기도 하다. 지난해 3월 일본 JAXA를 공식 은퇴한 후, 미국 우주 스타트업 액시엄 스페이스에 최고기술책임자(CTO)로 합류했다. 그는 이날 한 시간가량 보령 임직원 30여 명과 강연·토론을 이어갔다. 액시엄의 CTO가 한국의 중견 제약그룹 보령을 찾은 이유는 민간 우주정거장 등 우주 사업 협업을 위해서다. 보령은 2022년 두 차례에 걸쳐 액시엄에 6000만 달러(약 840억원)를 투자, 지분 2.68%를 확보했다. 용각산으로 대중에 친숙한 제약회사 보령이 우주에 뛰어든 건 김정균(40) 사장이 2022년 보령제약의 대표이사로 취임하면서다. 그는 보령의 오너 3세다. 창업주인 김승호 회장의 외손자다. 보령제약이 사명에서 ‘제약’을 뗀 것도 이때부터다. 지난 2월엔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우주항공 리더 조찬 포럼에 나와 보령의 우주 헬스케어 사업 비전과 전략을 발표하기도 했다. 7일 오후 와카타 CTO가 보령을 방문하기에 앞서 중앙일보가 김 대표를 만났다. 민머리에 검은 사파리와 면바지가 인상적이었다. 2월 조찬포럼 때와 같은 복장이었다.

제약회사가 왜 우주인가.
많이 받는 질문이다. 하지만 난 제약회사니까 오히려 우주에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가는 곳에 사업이 생긴다. 제약은 그 사람의 건강을 돌보는 일이다. 우주도 결국 사람이 가는 곳이고, 그곳에서 새로운 건강 문제가 생긴다.
 

언제부터 우주에 관심을 갖게 됐나.
2018년이다. 갓 돌이 된 첫째 아들과 시간을 보내다 우연히 유튜브에서 스페이스X 팰컨 9 로켓이 착륙하는 장면을 봤다. ‘이 기술이 있다면 앞으로 많은 사람이 우주에 갈 수 있는 시대가 오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제 머릿속에 처음으로 우주라는 개념이 들어온 순간이었다.
미국 우주 스타트업 액시엄 스페이스가 구상 중인 민간 우주정거장 액시엄 스테이션의 이미지. [사진 액시엄 스페이스]

미국 우주 스타트업 액시엄 스페이스가 구상 중인 민간 우주정거장 액시엄 스테이션의 이미지. [사진 액시엄 스페이스]

 

우주 공간 건강 문제 미국도 답 없어

 

그런 관심을 사업으로 연결한 계기가 있나.
 


처음엔 그저 ‘우주에 기회가 있을 수 있겠다’는 정도의 관심이었는데, 2019년 휴스턴에 있는 미 항공우주국(NASA) 존슨 우주센터를 방문하면서 확신이 커졌다. 우주 공간에서 인간의 건강 문제는 미국도 제대로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이건 우리가 해볼 수 있는 분야’라는 판단이 섰다. 돌아와서는 회사 내 TF를 꾸렸고, 국내 연구기관과 대학, 스타트업들을 찾아다니며 우주 헬스케어의 가능성을 조사했다. 그 결과 2021년부터 미국에서 ‘케어 인 스페이스’라는 경진대회를 열게 됐고, 현재는 NASA와 협력하는 ‘휴먼 인 스페이스(HIS)’ 프로그램으로 이어지고 있다.
 
휴먼 인 스페이스(HIS) 프로그램은 인류의 헬스케어 문제를 미세중력의 저궤도 우주 공간에서 풀어보자는 취지에서 혁신 스타트업과 연구자를 발굴하는 것이 1차 목표다. 무중력에 가까운 미세중력이 작용하는 지구 저궤도는 우주 의약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새로운 환경으로 평가받는다. 미세중력 환경에서는 표면장력이 지배적인 힘이 되고, 대류·침전·부력 등의 현상이 사라진다. 이런 특성은 신약개발에 필요한 단백질 결정화, DNA 나노물질 조립 등 지구상에서는 어렵거나 불가능한 연구에 매우 유용해, 글로벌 제약업계는 물론 생명공학계에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보령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우주체험 기회를 주는 'HIS Youth'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다음달 중으로 4차 발사될 액시엄 Ax-4가 한국 초등학생 20명의 미술 작품을 싣고 ISS에 올라간다.  

액시엄 스페이스에는 왜 투자했나.
2030년 ISS 퇴역 이후 민간 우주정거장을 만들겠다는 계획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액시엄은 그중 가장 앞서 있는 회사다. 우리는 그 인프라에 연구 모듈을 붙이는 방식으로 우주 사업을 확장하려고 한다.
 
액시엄 스페이스는 2016년 NASA의 국제우주정거장 프로그램 매니저였던 마이클 서프레디니와 항공우주 기업가 캄 가파리안이 세운 기업이다. 아직 만 10년이 안 된 스타트업이지만, 직원 수가 800명에 이른다. 퇴역하는 ISS를 이용해 상업용 우주정거장을 개발하는 것이 목표다. 우선 2027년까지 ISS에 액시엄 모듈을 부착하는 것을 시작으로, 2030년 이후 독립된 상업 우주정거장을 운영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최근까지 ISS에 민간 우주인들을 올려보내 각종 연구과제를 수행하는 민간 우주비행 임무를 세 차례나 진행했다. NASA와 계약을 통해 2026년 예정된 아르테미스 3차 달 탐사에 사용할 차세대 우주복도 개발하고 있다.

연구소를 우주에 세우겠다는 말인가.
그렇다. 우주정거장에 연구 모듈을 만들어, 전 세계 연구자들이 이 공간을 활용할 수 있게 하는 플랫폼 사업이다. 일종의 우주 부동산이자 R&D 허브라고 보면 된다. 보령의 이름으로 우주정거장 모듈을 만드는 것을 검토 중이다. 액시엄과 협력해 모듈을 ISS에 붙이는 것이 목표다.
김정균(왼쪽) 보령 대표가 지난 7일 서울 북촌 보령 사옥에서 와카타 고이치(若田光一·) 액시엄 스페이스 CTO와 함께 섰다. 최준호 기자

김정균(왼쪽) 보령 대표가 지난 7일 서울 북촌 보령 사옥에서 와카타 고이치(若田光一·) 액시엄 스페이스 CTO와 함께 섰다. 최준호 기자

 

반대하던 어머니 지금은 응원

 

6000만 달러 투자를 결정할 때 내부 반발은 없었나.
반발이라기보다 창업주이신 외할아버지 김승호 회장님과 어머니(김은선 회장)께서 ‘우주에서 뭘 하겠다는 거냐’며 많이 걱정하셨다. 지금은 건강 문제 해결이라는 목적에서 이해와 응원을 받고 있다.
 

보령이라는 이름에서 ‘제약’을 뺀 이유는.
제약이라는 단어가 사업의 범위를 제한할 수 있다고 느꼈다. 제약은 여전히 중심 사업이지만 우리가 하는 일은 더 넓다. 건강이라는 본질은 같고 우주에서도 그 가치를 확장하고자 한다.
 
민간이 중심이 되는 우주시대인 뉴 스페이스(New Space) 시대의 파도가 이 땅에도 밀려오는 느낌이다. 대기업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인공위성 벤처기업을 인수하고, 한국형발사체 누리호 개발에 참여하더니, 소형 우주발사체 스타트업 이노스페이스와 인공위성과 지상국·위성영상 서비스를 하는 스타트업 켄텍까지 코스닥 상장기업으로 성장했다. 70년 전 서울 종로5가 보령약국에서 시작해 연 매출 1조원의 중견 제약그룹으로 성장한 보령이 우주기업이 되지 못하란 법은 없다. 김 대표는 “우주라는 공간을 매개체로 국가 간의 협력을 증진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