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출신 EU 위원 “체코, 韓과 원전 계약 중단해야” 서한 논란

현재 가동 중인 체코 두코바니 원전 1~4호기 전경. 한국의 한국수력원자력 컨소시엄은 지난해 7월 이 지역에 추가로 2기 이상의 원전을 짓는 일감을 수주(우선협상대상자 선정)했다. 한수원

현재 가동 중인 체코 두코바니 원전 1~4호기 전경. 한국의 한국수력원자력 컨소시엄은 지난해 7월 이 지역에 추가로 2기 이상의 원전을 짓는 일감을 수주(우선협상대상자 선정)했다. 한수원

 

한국(한국수력원자력 컨소시엄)이 지난해 7월 수주한 체코 원전 건설사업을 둘러싸고 한국에 밀렸던 프랑스 측의 발목 잡기가 거세지고 있다. 13일 원전업계에 따르면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의 스테판 세주르네 번영ㆍ산업전략 담당 수석 부집행위원장은 지난 2일 루카시 블체크 체코 산업통상장관에게 ‘신규 원전 계약 서명 중단을 위한 즉각적인 조치 요청’ 제목의 서한을 보냈다. 그는 프랑스 출신으로 프랑스 외무장관까지 지낸 인물이다.

한수원이 EU의 역외보조금규정(FSR)을 위반했는지 예비조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앞서 프랑스(프랑스전력공사 컨소시엄)의 이의 제기에 따른 조치다. 2023년 도입된 FSR은 EU 외부의 기업이 과도한 보조금을 받고, EU 역내 공공입찰에 참여하면 불공정 경쟁으로 간주하고 제재할 수 있다.  

세주르네 부집행위원장은 “만일 (체코ㆍ한국이) 최종 계약에 서명하면 EU 집행위가 조사를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권한 등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며 “(한수원 컨소시엄이) EU 시장을 왜곡할 수 있는 보조금을 부여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실질적 정황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사실상 한수원과 체코 간 원전 계약을 연기 또는 중단하라는 의미다.

 
한수원은 이에 대해 “보조금을 받은 바 없으며, 관련 입찰은 2022년 시작됐기 때문에 2023년 시행된 FSR의 적용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체코의 발주처와 정부도 같은 목소리다.


 
이 때문에 EU가 회원국 중 두 번째 경제 대국인 프랑스의 입김에 프랑스 이익을 대변하는 게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공교롭게도 서한 발송일은 프랑스전력공사(EDF)가 체코 법원에 한수원의 계약을 막아달라는 소송을 제기한 날이다.  

체코 내에서도 프랑스가 외교적 압박을 가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블체크 장관은 12일(현지시간) 체코 공영방송 인터뷰에서 세주르네 부집행위원장이 프랑스 출신인 점을 언급하며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서한은) 프랑스전력공사의 시각과 의견을 반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니엘 베네시 체코전력공사(CEZ) 사장도 이날 “프랑스 측이 원전 건설을 방해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며 정부가 EU의 요구를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다만 토마스 레니에 EU 대변인은 “(EU) 단일시장을 보호하기 위해 법을 집행하는 것”이라며 세주르네 부위원장이 자국 이익을 옹호한다는 의혹을 반박했다.

이런 최근 움직임에 체코 일각에서는 프랑스 측의 압박에 따라 한국과 계약이 무산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체코 경제지 e15에 따르면 체코 독립에너지 공급자협회(ANDE)의 이르지 가보르 사무총장은 ▶한국의 비상계엄 사태 ▶차기 한국 정부의 탈원전 정책 가능성 ▶미국 웨스팅하우스와의 협약에 따른 한수원의 유럽 철수 가능성 등을 위험요인으로 꼽았다. 체코 투자회사 내트랜드의 페트르 바르톤 연구원은 “프랑스가 한국 대신 사업 계약을 따낼 가능성이 유효하다”고 전했다.

한국 정부와 한수원은 계약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국내 원전업계에서는 ‘정권 교체 여부와 무관하게 정부 차원의 외교ㆍ정책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많다. 정용훈 KAIST 원자력및양자공학과 교수는 “현 정부뿐만 아니라 차기 정부에서도 체코 사업을 흔들림 없이 이행하고 이를 뒷받침할 원전 산업을 지속적으로 육성할 거라는 믿음을 줘야 한다”며 “대선 후보들도 관련 메시지를 내는 등 힘을 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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