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P=연합뉴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간) 러시아와 협상장에 직접 가지 않고, 16일 협상단만 튀르키에 이스탄불에 파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러시아 정부도 이날 푸틴 대통령의 협상 불참을 공식화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의 회담 후 기자들을 만나 "루스템 우메로프 국방장관이 이끄는 우크라이나 협상 대표단이 내일 이스탄불에서 러시아 대표단과 만난다"고 밝혔다. 그는 협상 대표단의 임무가 휴전을 논의하는 것이라며 "내가 이스탄불에서 할 일이 없다. 러시아 대표단 중 누구도 실제 결정할 수있는 사람이 없다"며 회담에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전쟁 발발 3년 2개월만에 이뤄지는 이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협상은 푸틴 대통령의 불참으로 정상회담이 아닌 대표단 회담으로 격을 낮춰 열리게 됐다.

15일(현지시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국의 협상이 이뤄질 튀르키예 이스탄불 돌마바흐체 궁전 대통령 집무실 인근에서 취재진들이 모여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러시아가 블라디미르 메딘스키 보좌관을 협상단 전면에 다시 내세움으로써 이번 협상이 3년 전 결렬된 협상의 재개라는 의미를 부각하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메딘스키는 2022년 3월 이스탄불에서 진행된 마지막 양국 협상에서 러시아측 대표단 단장을 맡았다. 뉴욕타임스는 “푸틴은 트럼프와의 관계를 유지하는 차원에서 협상은 하되, 시간을 끌며 우크라이나의 힘을 뺄 생각”이라고 해석했다. 러시아 대표단에는 메딘스키 외에 미하일 갈루진 외교차관, 이고리 코스튜코프 러시아군 총정찰국장, 알렉산드르 포민 국방차관등이 포함됐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14일 크렘린궁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푸틴 대통령의 불참 소식에 회담 참석을 고려했던 트럼프 대통령도 이스탄불에 오지 않는다고 로이터통신이 미 당국 관계자를 인용해 전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카타르 도하에서 “(러·우 협상에서) 무언가가 일어난다면 나는 금요일(16일)에 (이스탄불에) 갈 것”이라고 여지를 남겼다. 일단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스티브 위트코프·키스 켈로그 특사 등이 튀르키예에서 양국 간 협상을 중재할 예정이다.
푸틴 대통령에 ‘바람’을 맞은 젤렌스키 대통령은 튀르키예에 도착해 러시아 측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날 앙카라 에센보가 공항에 내린 젤렌스키 대통령은 취재진에 “러시아 측 (협상) 참석자 명단을 공식 통보받진 않았지만 사실상 장식 수준에 가깝다. 러시아에서 누가 결정을 내리는 지 모두 알고 있다”며 푸틴 대통령의 협상 불참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푸틴 대통령이 오지 않으면 이스탄불에 가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혀 온 젤렌스키 대통령은 에르도안 대통령과의 회담 뒤 다음 행보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발언에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젤렌스키는) 광대·패배자,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이라고 비난했다고 타스 통신이 보도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앙카라 에센보가 공항에 도착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양국 협상의 격이 정상회담에서 실무진 회담으로 낮아지면서 협상 전망은 어두워졌다. WSJ은 “회담을 둘러싸고 양측이 진전의 의지가 있다는 것만 보여주려 할 뿐 최종 목표는 양보하지 않고 줄다리기만 벌인다. 협정이 체결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양국의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어 유의미한 결과가 나올지는 미지수다. 가장 이견이 큰 쟁점은 영토다. 러시아는 2014년 강제 병합한 크림반도를 비롯해 이번 전쟁에서 점령한 루한스크·자포리자·도네츠크·헤르손 지역을 자국 영토로 인정받으려 한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영토 포기는 국민 정서와 헌법상 절대 안 된다는 입장이다.

신재민 기자
대(對)러 제재도 쟁점 중 하나다. 러시아는 휴전 조건으로 서방이 부과한 모든 제재의 해제를 요구하고 있다. 반면 우크라이나와 유럽은 러시아의 휴전 준수 상황에 따라 단계적으로 완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