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우리 집이 아니야"…치매 환자 망상 핵심은 '장소 망상'

치매 환자의 망상 네트워크. 그래픽 이가진·박지은

치매 환자의 망상 네트워크. 그래픽 이가진·박지은

 
"여긴 우리 집이 아니야" 같은 말을 반복하는 '중복 장소 망상'(reduplicative paramnesia)이 치매 환자에게 나타나는 여러 망상과 깊게 연결돼 있어 전체 망상 네트워크의 허브 역할을 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용인효자병원 곽용태 박사와 순천향대 천안병원 양영순 교수팀은 16일 미국정신의학회 학술지 미국 노인 정신의학 저널(American Journal of Geriatric Psychiatry)에서 치매 환자 102명에 대한 망상 네트워크 분석에서 이런 사실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치매 환자 중에선 "이 집은 내가 살던 집이 아니다", "누가 내 물건을 훔쳐 갔다", "배우자가 외도한다" 등의 말을 반복하는 망상 증상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연구팀은 치매 환자의 가족들은 이런 망상을 혼란이나 나이 탓으로 여기기 쉽다며 하지만 이런 망상이 어떤 식으로 나타나고, 서로 어떤 연관성을 갖는지 체계적으로 분석한 연구는 거의 없었다고 짚었다. 

이들은 양전자 단층촬영(PET)을 통해 알츠하이머병의 원인으로 알려진 베타아밀로이드라는 작은 단백질의 생성·침착이 확인되고 약물 치료를 받지 않은 초·중기 치매 환자 102명이 보이는 다양한 망상 유형을 정량화하고 이를 연결망 구조로 분석했다고 설명했다. 


곽 박사는 "이 연구는 치매 환자의 망상을 단순한 증상 나열이 아니라 하나의 연결망(network)으로 이해하려는 첫 시도"라고 강조했다. 

분석 결과 치매 환자들에게 가장 흔하게 나타난 망상은 '물건이 없어졌다'는 도둑 망상(89%)이며, 다음은 '이곳은 우리 집이 아니다'라는 중복 장소 망상(46%)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중복 장소 망상은 다른 여러 망상과 깊게 연결돼 있어 전체 망상 네트워크의 중심 허브 역할을 하는 것으로 드러났고, 도둑 망상은 다른 망상을 이어주는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하지만 치매 환자에 많은 망상 중 하나인 '배우자가 외도를 한다'는 '부정 망상'은 연결성이 거의 없어 망상 네트워크 밖에 떨어져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부정 망상이 관계나 감정 문제처럼 별도 요인에 의해 발생할 가능성을 시사한다는 게 연구팀 설명이다. 

곽 박사는 "이 연구 결과는 '집이 복제됐다'는 공간 인식 오류로 인한 중복 장소 망각이 치매 환자의 망상 허브로 작동하고 '도둑 망상'이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이는 두 망상을 우선 치료하면 복잡하게 얽힌 여러 망상을 함께 완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고 말했다. 

이어 "망상을 단순히 뇌의 광범위한 손상으로 보는 게 아니라 각각의 망상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분석했다"며 "이 연구는 명확한 생물학적 진단을 받은 치매 환자만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망상이라는 증상을 병태생리적으로 이해하는 데 중요한 과학적 근거를 제공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