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 R&D 과제로 2022년 개발된 수소전기동차. 사진 국토교통부
바꿔 말하면 국내 철도의 15%는 전기로 달리는 전철이 다닐 수 없는 구간, 즉 ‘비 전철화 구간’이라는 건데요. KTX와 KTX-이음 같은 고속열차는 물론 ITX-새마을, ITX-마음 같은 전철은 운행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비 전철화 구간에선 중·단거리 통근은 디젤동차(RDC)가, 화물 수송은 디젤기관차가 주로 맡아 왔습니다. 디젤동차는 별도의 기관차 없이 엔진이 객차 아래에 설치돼 있어 얼핏 전동차처럼 보이기도 하는데요.
경유를 사용하는 디젤동차는 힘이 좋아 언덕길 등도 상대적으로 잘 오른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하지만 디젤동차는 배기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탓에 코레일에선 사실상 사용을 중단했는데요.

중단거리 통근용으로 많이 활용된 디젤동차. 현재는 대부분 퇴역했다. 사진 코레일
애초 120여량의 디젤동차를 2020년 폐차 예정이었으나 퇴역을 조금 늦추는 과정을 거쳐 일부 특수목적의 동차를 제외하곤 모두 운행을 멈췄습니다. 지난해 말 운행을 종료해 관광객들의 아쉬움을 샀던 동해안의 바다열차도 디젤동차입니다.
환경을 고려해서 디젤동차를 없애는 건 좋은데 고민은 이를 대신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점입니다. 물론 전철이 다닐 수 있게 비 전철화 구간에 관련 설비를 설치하면 되겠지만, 비용이 문제입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일반철도(복선)의 표준공사비가 1㎞당 207억원가량인데 이 중 전철화 관련 비용이 18%인 37억원을 차지하는데요. 약 15%인 비 전철화 구간을 다 전철화한다면 무려 2조 4000억원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아니면 주로 화물 운송에 쓰는 디젤기관차에 객차를 붙여서 운행하는 ‘궁여지책’이 있기는 합니다. 20년 만에 재개통한 교외선이 해당하는데요. 그러나 배기가스를 많이 배출한다는 문제는 여전히 남습니다.

자료 국토교통부
외부에서 전기를 공급받을 필요 없기 때문에 비 전철화 구간에서도 자유롭게 운행이 가능합니다. 또 디젤엔진과 비교해서 에너지 효율이 2배 이상 높은 데다 배기가스도 전혀 배출하지 않는 친환경성까지 갖췄으니 금상첨화인 셈인데요.
최근 국토부는 2027년까지 총 321억원을 투입해서 수소전기동차의 실증 R&D(연구개발) 사업을 본격착수한다고 밝혔는데요. 순조롭게 실증사업이 진행되면 2028년에 본격 상용화할 계획입니다. 실증 사업에는 정부와 코레일, 우진산전 등이 참여합니다.
모터를 객차에 분산해 배치하고(동력분산식), 양방향 운행이 가능하며, 한번 충전으로 600㎞를 달릴 수 있고, 최고 운행속도가 시속 150㎞인 2량 한 편성짜리 수소전기동차를 제작해 안전성을 검증하는 사업인데요. 수소 충전소와 차량 검수시설도 설치합니다.

독일은 2018년 9월에 수소열차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 했다. 중앙일보
사실 이 실증사업에 오기까지 난관도 적지 않았습니다. 예산확보가 걸림돌이었는데요. 앞서 수소전기동차 관련 기술은 지난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정부 R&D 사업으로 총 256억원을 투입해 개발됐습니다.
국고에서 220억원이 지원됐고, 철도차량 제작업체인 우진산전이 36억원을 보탰는데요. 기술개발은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철도기술연구원과 우진산전이 함께 했습니다.
이때 제작된 시제차량은 2량 한 편성으로 좌석과 입석을 합해 최대 400명을 태울 수 있고, 최고 속도는 시속 110㎞였습니다. 또 한 번 충전으로 600㎞를 주행할 수 있고, 오송시험선에서 5000㎞ 주행시험도 마쳤다고 하는데요.
이렇게 개발된 기술을 바탕으로 실증용 차량을 만들어 안전성을 검증하면 곧바로 상용화가 가능한 단계까지 진행된 셈이었습니다. 그러나 실증사업을 위해 신청한 예산이 2023년과 2024년도 정부 예산안에서 연거푸 빠진 겁니다.

교외선에선 디젤기관차에 객차를 연결해서 운행 중이다. 중앙일보
이 때문에 독일, 미국, 일본, 중국, 캐나다 등 주요 국가 간에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수소열차 개별 경쟁에서 자칫 뒤처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었는데요. 다행히 올해는 예산확보에 성공해 실증사업에 드디어 나서게 됐습니다. ‘3修’만에 추진이 되는 셈인데요.
2028년에 첫 상용화가 이뤄진다면 비 전철화 구간 중에서 우선 고려될 노선은 교외선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입니다. 현재 디젤기관차를 앞뒤로 붙여 발전차(1량)와 객차(2량)를 끌고 가는 임시방편으로 운행 중이기 때문인데요.
국토부와 코레일이 수소전기동차 상용화를 서두르는 것도 교외선 때문인 측면도 있는 게 사실입니다. 아무튼 3수 만에 나서는 수소열차의 실증사업이 성공적으로 끝나서 3년 뒤에 반갑게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