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이 지난해 인수한 미국 필리조선소에 1000억 원을 투자해 연간 10척을 건조할 수 있는 최신 조선소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미국 조선사 중 최초로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도 만들 예정이다. 다만, 고부가가치 선박을 만들기 위한 숙련 인력 확보와 높은 인건비 문제는 숙제로 꼽힌다.
20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한화그룹은 최근 한국 애널리스트들을 미국 필리조선소에 초청해 장기 계획을 소개했다. 선박 생산은 연간 최대 10척으로 확대하고, 2035년까지 매출 40억 달러(약 5조6000억원)를 달성하겠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이를 위해 현재 필리조선소에는 한화오션에서 파견된 전문가 50여 명이 생산 효율화 작업을 진행 중이다. 도크를 현대화하고, 공정에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작업에만 1000억 원가량이 투입될 것으로 보고 있다.
“목표는 10년 뒤 필리조선소 매출 5조6000억”
한화그룹은 10년 뒤 필리조선소의 매출 목표를 40억 달러(약 5조6000억 원)로 잡았다. 지난해 필리조선소 매출(3억6800만 달러, 약 5100억 원)보다 10배 이상 많고, 한화오션 지난해 매출(10조7760억 원)의 절반 수준이다.
한화그룹이 지난해 인수한 미국 필리조선소 전경. 사진 한화그룹
매출을 현재의 10배 이상으로 키우려면 LNG선 같은 고부가가치 선박을 건조해야 한다. 영하 163도의 액화 가스를 운반하는 LNG선은 극저온 상태를 유지하며 안전하게 연료를 운송하기 위해 높은 수준의 기술이 요구된다. 그만큼 값도 비싸다. LNG선 평균 가격은 일반 대형 컨테이너선 대비 30%가량 비싸다. 지난해 국내 조선소가 수주한 LNG선의 평균 계약가는 2억6000만 달러(약 3700억 원)이었다. 이런 배를 필리조선소에서 건조하겠다는 게 한화필리조선소의 계획이다.
이런 계획에 대한 우려도 크다. 거제·울산 등 국내 주요 조선소가 위치한 지역에는 부품 납품 업체들이 함께 모여 있는 등 후방 산업 생태계가 탄탄한데 비해 미국은 조선업 생태계가 무너져 있기 때문이다. 철강, 특수 용접, 전자 부품, 정밀 기계 등 조선 산업을 뒷받침하는 후방 산업은 미국 조선업 쇠퇴와 맞물려 심각한 침체기를 겪고 있다. 선박 주요 부품인 엔진, 프로펠러, 전자 부품 등 핵심 부품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한화오션이 공개한 차세대 무탄소 추진 액화천연가스 운반선. 사진 한화오션
선박을 만들 수 있는 전문 인력 수급 문제도 큰 숙제다. 특히 한화그룹이 미국 조선소 최초로 만들겠다고 한 LNG선의 경우 일반 선박 대비 특수 용접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숙련된 용접 인력을 많이 확보해야 하는데, 미국 현지에서 숙련 인력을 구하기란 쉽지 않다. 국내 사업장도 LNG선 제작에 투입되는 용접 인력이 부족해 납기를 맞추기 어려운 상황에서 자칫 숙련된 국내 인력을 필리조선소로 파견할 경우 국내 건조 선박의 품질 저하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이밖에 국내 대비 높은 인건비 역시 추후 선박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미국 정부가 국적 전략 상선단을 250척까지 늘리기로 한 만큼, 한화그룹이 수익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미 정부의 보조금 등 지원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영우 기자 novembe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