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조 이르는 치매머니, 돌봄비용 완화 수단으로 활용해야[홍석철이 소리내다]

국내 치매 환자가 100만 명에 육박한 가운데 이들이 가진 각종 자산이 154조원에 이른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국내 치매 환자가 100만 명에 육박한 가운데 이들이 가진 각종 자산이 154조원에 이른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치매머니는 치매 환자가 보유한 소득과 자산을 의미한다. 치매머니는 인구 고령화가 심화하던 2010년대에 일본에서 처음 사용됐다. 치매 노인 규모가 470만 명에 달하는 일본에서는 올해 치매 노인이 보유한 금융자산이 전체 가계 금융자산의 9.4%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2023년 기준 154조원으로 추정
환자 자산, 치료·간병비로 쓰여야
후견인 및 신탁제도 정비도 시급
 
 
 한국의 치매 환자 수는 100만 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달 초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2023년 기준으로 치매 환자의 소득과 자산을 전수 조사한 결과, 국내 치매머니는 154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총생산(GDP)의 5.4%나 된다. 치매머니는 부동산자산 74.1%, 금융자산 21.7%, 그리고 소득 4.2%로 구성되는데, 다수 고령자가 보유한 소액 예금까지 합하면 200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치매의 가장 큰 위험 요인은 노화로 치매 유병률은 75세 이후 가파르게 상승한다. 급격한 인구 고령화로 75세 이상 인구는 현재 약 430만 명에서 2050년까지 1153만 명으로 급증할 것으로 전망되며, 고령 치매 환자도 비례적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전망을 반영하면 2050년까지 치매 고령자 수는 300만 명을 훌쩍 넘기고 치매머니도 500조원(2023년 가격 기준)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고령화에도 국내 치매머니 관리 미흡

 치매머니의 핵심은 인지능력 저하로 인한 자산의 관리와 보호가 취약해지는 문제이다. 최근 치매 노인이 사기와 착취의 대상이 되었다는 뉴스가 빈번해지고 있다. 지난 20년간 고령 인구 10만 명당 사기 등 재산 범죄율은 3배가량 증가했다. 치매 노인이 증가할수록 치매머니의 취약성으로 인한 사회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이 같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2018년 치매 공공후견인 제도가 도입됐다. 후견 심판 청구를 통해 공공후견인을 지정하여 주로 가족이 없는 치매 환자의 의사 결정과 일상생활을 지원하는 제도다. 하지만 제도에 대한 인식과 후견인 양성 기반이 미흡할 뿐만 아니라 후견인의 자산관리 전문성이 충분치 않다는 단점이 있다. 가족이 있다면 법원이 선임하는 성년후견인을 둘 수 있지만 누가 후견인이 되냐를 두고 가족 간 분쟁이 생길 수 있다. 


 대안은 치매 환자가 금융기관 등 신탁회사에 예금이나 부동산의 자산관리를 맡기는 신탁제도다. 일부 은행에서 치매 관련 신탁 상품을 출시하고는 있지만, 사망에 대비한 유언대용신탁 등에 치우쳐있고 치매 전문 맞춤형 설계가 부족하다. 또한 신탁계약의 법적 유효성은 계약 당시 위탁자의 의사 능력 보유에 의존하는데, 의사 능력의 정의나 판단 기준에 대한 민법상의 규정이 미비하여 향후 신탁제도 활성화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크다.  

 후견과 신탁 간의 법적 정합성이 부족해 충돌도 예상된다. 예를 들어 특정 목적으로만 사용하라는 신탁이 이미 설정된 상황에서 치매가 발생하여 후견 개시가 이뤄진다고 하자. 후견인이 위탁자의 건강을 고려해 신탁 자산을 지정된 목적과 다른 곳에 지출하고자 할 때 법적 분쟁이 발생할 소지가 있다. 한편 금융기관이 아닌 공공기관이 수탁자가 되는 공공신탁은 신탁의 신뢰성을 높일 방안이지만, 아직 국내에는 도입되지 않고 있다.

 한국보다 치매머니 문제를 먼저 경험한 선진국들은 각국의 금융제도와 법체계 하에서 다양한 제도들을 발전시켜 왔다. 한국도 치매 공공후견인과 신탁제도의 개선뿐만 아니라, 공공의 신뢰와 민간의 자산관리 전문성을 반영한 공공신탁과 민간신탁의 결합, 후견제도와 민간신탁의 연계 등 혁신적인 정책 추진이 요구된다.

치매머니 관리로 환자 삶의 질 높여야

 하지만 치매머니 관리 정책과 제도의 공익성을 높이려면 자산관리 이상의 관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23년 치매역학조사 및 실태조사에 따르면, 치매 관리에 필요한 의료비, 돌봄비 등 1인당 연평균 관리 비용은 지역사회에서 돌볼 때 1734만원, 시설·병원에서 돌볼 때는 3182만원으로 조사됐다. 치매는 가족과 국가에 상당한 돌봄 부담과 비용을 초래하는 대표적인 건강 문제라는 점을 보여주는 조사 결과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좀 더 혁신적인 치매머니 관리는 치매 환자의 치매머니를 그들의 치료비, 간병비, 돌봄비용 지출과 연계하여 가족과 국가의 부담과 비용을 줄이는 것이다. 특히 치매머니 중 비중이 높은 부동산 자산을 유동화해 치매 환자의 돌봄과 연계하는 과감한 정책 검토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돌봄비용 등으로 목적을 제한하는 자산유동화 치매전용 신탁상품 등의 개발이 요구된다. 또 위탁자가 치매로 판단 능력을 상실한 경우에도 돌봄 목적 자산 지출에 대한 수탁자의 법적 집행 권한을 보장하고, 후견제도와 충돌할 때 우선순위나 조정 절차에 대한 법규 정비가 뒷받침돼야 한다. 법정 후견 제도를 거치지 않고 의사능력 상실 이후의 수탁자를 미리 설정하는 사적 계약에 기반을 둔 미국의 리빙트러스트와 후견인의 법적 권한 범위 안에 신탁 설정 및 관리 권한을 포함하는 일본의 후견신탁 제도 등은 참고할 만한 사례다. 

 치매머니는 초고령사회에 우리 사회가 겪을 사회 문제의 단면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키워드다. 무엇보다 치매머니 관리는 초고령사회가 직면할 돌봄의 지속 가능성 위기를 완화하고 치매 고령자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홍석철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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