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열린 미국판 미사일방어망인 '골든돔'(Golden Dome) 실전 배치와 관련된 기자회견에 참석해 있다. AF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미사일방어체계 ‘골든돔’ 관련 행사 직후 기자들과 만나 “러시아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지켜본 뒤 내가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 등이 전했다. 같은 날 유럽연합(EU)과 영국이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 제재, 국제 금융망 차단 등 즉각적인 강경 대응에 나선 것과 온도 차가 있는 행보다.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도 이날 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러시아가 평화 협상에 관심이 없다면 추가 제재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면서도 “대통령은 지금 러시아를 압박하면 오히려 협상 자체가 무산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푸틴 대통령과 2시간 넘게 통화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휴전이나 종전과 관련한 러시아 측의 구체적인 양보를 얻어내지는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통화 직후 자신의 SNS 트루스소셜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즉각적인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기존에 내세우던 ‘조건 없는 즉각 휴전’ 요구에서 다소 후퇴한 입장을 내놨다.
이런 태도 변화는 “지난 2월 백악관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휴전을 원하지 않는 것 아니냐’고 질책했던 모습과 다르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짚었다. WSJ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조건을 모두 받아들여야만 휴전이 가능하다’는 러시아 측 입장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인다”며 “그런 접근 방식은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아무것도 가져다주지 않았다”라고 분석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그간 미국 측 요구에 협조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지난달 트럼프 대통령이 제안한 ‘조건 없는 휴전안’을 즉각 수용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추가 지원 조건으로 제시했던 ‘광물 협정’도 자국 내 반발과 불평등 논란에도 서명했다. 지난 15일 튀르키예를 방문했을 때는 푸틴 대통령이 온다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이스탄불 협상장에 참석할 의사도 보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달 26일(현지시간)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에서 회동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반면 트럼프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 간의 통화 직후 기세가 오른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평화협정 각서’를 제안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 각서에는 위기 해결의 기본 원칙, 협정 체결 일정, 휴전 가능성 등의 내용이 담길 것이라고 타스 통신이 전했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이제 키이우의 차례”라며 “우크라이나가 국가를 보존하기 위해 건설적인 입장을 취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에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는 전장에서 시간을 벌기 위해 외교를 이용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평화협정 체결에 앞서 각서를 두고 러시아가 시간 끌기에 나섰다는 주장이다. 실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각서가 완성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라며 장기 협상을 예고했다. 러시아 일간 코메르산트는 “러시아가 각서 제안으로 새로운 시간을 확보했다”며 “기한이 정해지지도 않은 채 미래에 가능한 각서의 원칙들이 정해질 때까지 협상이 계속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