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수도 워싱턴DC에 위치한 주미 이스라엘대사관 직원 2명이 21일 밤(현지시간) 총격을 받아 숨졌다. 용의자는 미 시카고 출신의 엘리아스 로드리게스(30)로 밝혀졌다. 그는 범행을 저지른 뒤 “팔레스타인 해방”을 외쳤다고 한다. 

총격으로 사망한 대사관 직원은 약혼을 앞둔 젊은 커플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사건 직후 “반(反)유대주의에 기반한 끔찍한 살인사건”으로 규정했다. 수사 과정에서 범행의 배후 등이 밝혀질 경우 확전 등 중동 정세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워싱턴 경찰 당국에 따르면 검거된 로드리게스는 이날 오후 9시 8분경 백악관에서 차로 9분 거리에 있는 유대인박물관에서 열린 미 유대인위원회(AJC) 주최 리셉션에 참석했던 이스라엘 대사관 직원 2명에게 총을 쐈다.

용의자는 범행 현장을 떠나지 않고 목격자 행세를 하며 경찰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팔레스타인의 자유(Free, Free Palestine)”라는 구호를 외친 것으로 파악됐다. 


범행 현장에 있던 목격자 사라 마리누치는 CNN에 “9시무렵 총성이 울린 뒤 한 남자가 현장에 달려들어와 ‘경찰에 신고해달라’고 하자 경비원들은 그를 목격자로 착각하고 물을 주며 위로해주려고 했다”며 “약 10분 뒤 경찰이 도착하자 그는 ‘내가 해냈다. 가자지구를 위해 해냈다’면서 ‘팔레스타인 해방’을 외쳤다”고 말했다.

범행 발생 장소는 주변에 백악관을 비롯해 국회의사당, 법무부, 연방수사국(FBI) 본부가 밀집해 있는 워싱턴DC의 핵심 지역이다.

파멜라 스미스 워싱턴 메트로폴리탄 경찰서장은 “경찰이 도착했을 때 총격 피해를 입은 성인 남녀 2명이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며 “용의자는 검거된 뒤 범행에 사용한 총기를 어디에 버렸는지 자백했고, 검거 과정에서 팔레스타인의 해방을 외쳤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용의자가 총격을 가하기 전 범행 장소 주변을 왔다갔다하는 모습이 목격됐다”며 “로드리게스는 리셉션을 마치고 나오던 4명의 그룹에 접근해 권총을 꺼내 총격을 가했고, 2명이 사망했다”고 설명했다.  

수사 당국은 현재까지 검거된 용의자가 유일한 총격범이고, 추가 위협은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총격으로 사망한 대사관 직원은 약혼을 앞둔 커플이었다. 예히엘 라이터 주미 이스라엘대사는 CNN에 “남성 직원이 이번 주에 반지를 샀고, 다음 주 예루살렘에서 여자친구에게 청혼을 하려고 했다”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대사관은 이날 숨진 커플의 이름과 사진을 X(옛 트위터)에 공개하며 “야론과 사라는 우리의 친구이자 동료였다”며 “이 엄청난 상실 앞에서 우리의 비통함과 공포를 표현할 말조차 없다”고 했다. 

사건 발생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에 “워싱턴DC에서 벌어진 반유대주의에 기반한 끔찍한 살인 사건은 당장 종식돼야 하고, 증오와 급진주의는 미국에 설 자리가 없다”며 “희생자와 가족들에게 애도를 표한다”고 적었다.

앞서 팸 본디 미 법무장관은 범행 현장에 도착한 뒤 트럼프 대통령에게 여러차례 직접 전화 통화로 상황을 보고했다고 밝혔다.

이번 총격 사건은 2023년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하면서 시작된 가자 전쟁 와중에 발생했다. 중동의 긴장이 고조되면서 미국 내 대학가와 이스라엘의 외교시설 인근에선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시위가 그간 계속돼 왔다. 특히 워싱턴 주재 이스라엘대사관은 시위대의 주요 표적이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역시 이번 총격 사건을 ‘끔찍한 반유대주의적 살인사건’이라고 규탄하면서 전세계 이스라엘 외교 공관에 즉시 주변 보안을 강화할 것을 지시했다. 그는 성명에서 “우리는 반유대주의와 이스라엘에 대한 거친 선동이 불러온 끔찍한 대가를 목격하고 있다”며 “이스라엘을 향한 피비린내 나는 비난으로 실제로 우리는 피를 흘리고 있으며, 이에 대해 우리는 단호하게 맞서싸워야 한다”고 했다.

아이작 헤르조그 이스라엘 대통령도 X에 올린 성명에서 “젊은 대사관 직원 두 명이 목숨을 잃은 것은 증오와 반유대주의에 기반한 비열한 행위”라며 “이스라엘은 우리 국민과 우리가 공유하는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더 단결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드온 사르 이스라엘 외무장관도 “이스라엘은 테러리즘에 항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대니 다논 주유엔 이스라엘대사는 “이번 사건은 잔인한 반유대주의 테러”라며 “특히 외교관과 유대인 커뮤니티에 대한 공격은 레드라인을 넘는 일”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