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시인 "아방가르드 여인"…그 아내, 김현경 여사 별세

김수영 시인 아내 김현경 여사. 경기 용인시 기흥구 교동마을현대홈타운 자택에서 2024년 5월 16일 촬영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김수영 시인 아내 김현경 여사. 경기 용인시 기흥구 교동마을현대홈타운 자택에서 2024년 5월 16일 촬영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김수영(1921~1968) 시인이 "아방가르드 여인"이라 했던 아내 김현경 여사가 22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98세.

김수영이 첫사랑에게 버림받고 방황하던 1942년 일본 유학 시절, 10대 소녀 김현경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국경을 넘어 편지를 주고받으며 문학을 논하는 문학 동지에서 사랑하는 연인이 됐다. 그러나 사업가였던 김여사의 아버지는 기울어진 집안의 가난한 시인 사위를 원치 않았다. 문학이 사랑이자 구원이었던 두 사람은 관습을 뛰어넘어 동거하고, 결혼한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터지고, 임신한지 두 달 만에 김수영 시인이 북에 의용군으로 끌려갔다. 이어진 탈출과 포로수용소 생활에 이별과 재회가 이어지며 둘은 파란만장한 부부의 연을 이어갔다.

그는 이화여대를 다니다 연애금지 학칙에 걸려 퇴학당한 엘리트 여성이었다. 김수영 시인의 육필원고의 상당수는 김여사의 글씨다. 시인의 초고를 받아 두 벌을 정서해 한 벌은 출판사에 보내고, 한 벌은 보관했다고 한다. 가장 첫번째 독자요 비평가, 문학적 동지였다. 2년이 넘는 포로생활로 피폐해진 김수영 시인의 몸과 마음을 돌보고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닭을 키우는 양계업을 했다. 

김수영 시인이 귀가길 교통 사고로 세상을 떠난 뒤에는 홀로 아들과 딸을 키웠다. 직접 디자인하고 만든 옷으로 의상실을 운영하기도 했고, 미술 컬렉터로도 활동했다. 소설가의 꿈도 꾸었으나 산문집 『김수영의 연인』(2013)이 그가 남긴 유일한 작품이다. 지난해 더중앙플러스 인터뷰에서 김수영 시인과의 특별한 사랑 이야기를 증언했다. 

"김 시인은 사랑한다는 말은 안 했지만 깊은 사랑을 했어요. 늘 사랑이 있고요. 사랑은 받는 게 아니고 주는 거거든. 모든 것을 사랑으로 보면 다 아름답고, 또 세상이 이렇게 좋아지지. 그런데 이 좋은 세상을 못 보고 가셨네." 


유족으로 아들 우씨, 딸 선주씨 등이 있다. 빈소는 성남 분당제생병원 장례식장 2호실. 발인은 24일 오전 5시30분, 장지는 천주교용인공원묘원이다. 

 

김현경 여사의 서재. 위칸이 일어판 하이데거 전집 등 김수영 시인이 읽던 책이다. 이경희 기자

김현경 여사의 서재. 위칸이 일어판 하이데거 전집 등 김수영 시인이 읽던 책이다. 이경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