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송지효는 제주 구좌읍 하도리 해녀들과 가을 첫 물질에 나섰다. 사진 JTBC, BBC 스튜디오
살기 위해 바다에 들어가야 했던 제주 해녀의 이 말은 JTBC 다큐멘터리 ‘딥다이브 코리아: 송지효의 해녀 모험’의 메시지를 응축한다. JTBC는 이 작품으로 국내 방송사 중 최초로 BBC 스튜디오와 공동 제작에 나섰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제작지원을 받았다. BBC의 자연 다큐멘터리 전문 채널 BBC 어스에서 지난 5월 11일부터 25일까지 방영됐고, 한국에서는 29일 자정 3화가 공개된다.
BBC가 제안한 ‘해녀’와 ‘송지효’

제작진은 송지효를 통해 "해녀라는 직업에 담긴 노동의 가치와 공동체의 의미가 자연스럽게 전달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사진 JTBC, BBC 스튜디오
포항에서 태어나 이모가 해녀, 어머니는 수영선수였던 송지효는 “이건 나를 위한 프로그램이다”라는 확신으로 참여를 결정했고, 현장에서는 악바리처럼 물질에 임했다. 1화에서는 저체온증으로 입술이 파랗게 질릴 정도의 고된 훈련에도 “더 배우고 싶다”고 말하는 장면이 담겼다. 앞서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해녀 현순심 씨는 “경력도 전혀 없는데 100점 만점에 120점을 주고 싶을 정도로 잘했다”고 칭찬했다.

테왁 하나에 의지한 채 망망대해에서 소라를 찾는 송지효 모습. 사진 JTBC, BBC 스튜디오
연출자 허진PD에 따르면 해녀라는 주제와 송지효를 추천한 건 BBC 측이다. 덕분에 송지효 인기가 뜨거운 중국 쪽에서도 이 다큐에 관심을 보인다는 전언이다. 라이언 시오타니 BBC 스튜디오 아시아 콘텐트 담당 수석 부사장은 “송지효의 시선을 통해 해녀의 삶과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을 시청자에게 전달할 수 있어 기쁘다”고 전했다.
허 PD는 22일 중앙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BBC와 공동기획에 들어가며, 글로벌 시청자들이 한국에 대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사했다. 서울보다 제주를 궁금해 한다는 결론이 나왔고, 그 중에서도 고령의 여성들이 매일 바다에 들어가는 직업이 있다는 것에 호기심을 보였다. 해녀를 주제로 한 한국 방송의 다큐는 많았으나, 글로벌 콘텐트로서의 해녀 이야기가 없다는 생각에 연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전통 아닌 생존, 해녀의 현실

'저승에서 벌어서 이승에서 쓴다'는 물질. 송지효는 저체온증에도 물질에 욕심을 냈다. 사진 JTBC, BBC 스튜디오
1~2화에서는 바다 잠수 경험이 전무한 송지효의 도전기가 펼쳐졌다. 고무복을 맞추고 테왁과 망사리 등 해녀 필수 도구를 준비하며 해녀의 모습에 점점 가까워진 그는 “처음엔 호기심 반, 책임감 반으로 시작했으나 지금은 책임감이 더 커졌다”고 말했다. “저승에서 벌어 이승에서 쓰는 일”, “세상에서 제일 위험한 직업”이라 말하는 해녀의 단호한 말에는 생업과 연관되어 있음을 실감한 듯 굳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실제 해녀 대부분은 잠수병에 시달려 진통제를 먹어가며 일하고 있었다.
높은 파도와 거센 바람으로 물질을 할 수 없는 날엔 해녀들은 밭으로 나갔다. 송지효는 해녀 박미정 씨를 따라 당근 밭에서 농사를 도우며 “물질이 좋은가, 밭일이 좋은가”라고 물었다. 박미정 씨는 “좋아서 하는 게 아니라 주어지니까 하는 거다. 그래도 숨 쉴 수 있는 밭일이 낫지 않겠나”라고 답했다.
허진 PD는 “해녀는 외부에서 보면 전통이나 문화유산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생계를 위한 직업이었다”고 설명했다. 해녀들은 자녀가 같은 길을 걷지 않길 바라며 살아왔다. 29일 자정 방송될 3화에는 9세에 물질을 시작해 88세에 은퇴하는 해녀도 등장한다. 해녀들이 은퇴식에서 “용왕님께 감사하고, 무사히 마쳐서 감사하다”고 말하는 장면은 고된 삶의 무게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오랜 세월 바다를 떠난 적 없는 해녀들도 여전히 물 아래 세계는 낯설고 두렵다. 사진 JTBC, BBC 스튜디오
“바다 사용료 내는 심정”
다큐는 전국 각지에서 해녀가 되기 위해 제주로 내려온 젊은 여성들이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바다 쓰레기를 청소하는 활동을 하는 모습도 담았다. 청소에 동참한 송지효는 “쓰레기가 정말 다양하고, 굉장히 넓게 퍼져있다”고 우려했다. 젊은 해녀들은 “우리가 바다에서 먹고 사니까 바다 사용료를 낸다는 마음”이라며 “낚시꾼들이 끊어낸 낚시줄이 제일 위험하다. 고무복에 걸리면 우리는 옷을 벗고서라도 탈출할 수 있는데, 해녀 어르신들에 걸리면 정말 위험하다”고 했다.

송지효는 "두 달 가까이 해녀로 살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공부했다"고 제작발표회에서 소감을 밝혔다. 사진 JTBC, BBC 스튜디오
허 PD는 “산소통 없이 자기 숨으로 소라를 잡아 온 해녀들은 자연과 공존하는 삶의 방식을 지켜왔다”며 “이 다큐는 해녀를 낭만적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문화유산이라는 이름 아래 가려졌던 삶의 현장, 우리가 지켜야 할 바다에 대한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보여주려고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