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4일 제주도교육청에 마련된 분향소에서 학생 가족의 민원에 시달리다 숨진 제주 모 중학교 교사를 추모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연합뉴스
제주의 한 중학교에서 숨진 교사가 학생의 가족으로부터 수차례 항의성 민원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2023년 서이초 교사 사망 이후 2년 만에 또 비극적인 일이 발생하면서 학교 민원 대응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25일 교육계에 따르면, 지난 22일 자신이 재직 중인 학교에서 숨진 채 발견된 교사 A씨의 개인 휴대전화에는 3월부터 학생 가족이 건 전화 기록이 남겨져 있었다. 민원 내용은 ‘아이가 A교사 때문에 학교에 가기 싫다고 한다’ ‘왜 폭언을 했냐’ 등이었다.
교육계는 A교사가 개인 연락처로 학생 보호자와 직접 연락을 받은 점에 주목하고 있다. 교육부는 서이초 사건 직후인 2023년 8월 교육 활동 보호 종합 지원 방안을 발표하고, 민원 처리는 교원이 아닌 학교가 대응하는 체계로 개선을 추진했다. 학교 대표전화나 학교 온라인 시스템 등으로 접수된 민원을 특성에 따라 1차 분류한 뒤 교무 분야는 교감, 행정 분야는 행정실장 등 관리자가 답변하는 방식이다.
교원단체들은 이런 민원 대응 시스템이 제대로 정착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교사노동조합연맹이 올해 스승의날을 맞아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민원 응대 시스템이 잘 운영되고 있다”고 답한 교사는 설문 교사 8254명 중 14%(1159명)였다. 장세린 교사노조 대변인은 “‘하이톡’ 등 메신저를 통한 소통 방식이 자리 잡은 초등과 달리 중·고교에선 학생과 교사가 직접 소통하는 문화가 남아있어서 연락처 비공개가 쉽지 않다”며 “행정직군의 반대 등으로 민원 시스템 구축이 흐지부지 된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2년간 교권침해 과태료 부과 0건 “강제력 없어”

차준홍 기자
악성 민원을 넣는 보호자에 대해 강제 조치가 없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교권보호심의위원회는 교권을 침해한 보호자에 대해 ▶서면사과 및 재발방지 서약 ▶특별교육 이수 또는 심리치료 ▶과태료 부과 등의 조치를 권고할 수 있다. 그러나 교육부가 강경숙 조국혁신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년 간 교보위가 심의한 학부모 교권침해 사안 814건 중 과태료를 부과한 사례는 0건이었다. 같은 기간 서면 사과는 227건(27.9%), 특별 교육은 171건(21.0%)이었고 조치 없음으로 종결된 사안도 212건(26.0%)이었다.
정수경 초등교사노조 위원장은 “최근 무고성 신고를 이유로 교보위에서 특별 교육 이수 처분을 받은 학부모에 대해 교사가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가 증거 불충분으로 검찰 불송치된 사안이 있었다”며 “교보위 처분은 증거로도 이용될 수 없는 반면 아동학대법은 처벌이 가능한, 불공평한 상황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정 위원장은 “지금은 교보위의 모든 조치에 강제력이 없다”며 “일정 부분은 강제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