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경찰과 법조계에 따르면 경찰공무원법은 연령정년 60세와 별도로 치안감 4년, 경무관 6년, 총경 11년, 경정 14년 등 계급정년을 두고 있다. 이에 대해 한모씨 등 현직 경정 3명은 지난 3월 “경정이 14년 내 승진하지 못하면 당연퇴직하도록 정한 경찰공무원법 30조 1항 2호는 헌법이 보장한 평등권, 공무담임권,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세 경정의 출신은 경찰대, 변호사 특채, 순경 공채로 각각 달랐다. 주로 일선서 과장인 경정은 지난해 12월 기준 3210명이다.

한모씨 등 경정 계급 경찰관 3명이 "경정 계급정년을 14년으로 정한 경찰공무원법 조항이 평등권을 침해한다"며 지난 3월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한 것으로 25일 파악됐다. 김정연 기자
“군인, 국정원보다 계급정년 짧아 차별”
청구인들은 경찰 승진 제도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계급정년제의 폐해가 막심하다는 주장도 펼쳤다. 지난해 12월 기준 경찰 공무원 전체(13만1158명)에서 총경이 차지하는 비중은 0.52%(686명)에 불과하다. 그런데 20대 중반에 경위 계급을 다는 경찰대 또는 간부후보생 출신 경찰관의 경우, 경정으로 승진한 뒤 총경 승진을 못 하면 50대 초중반에 퇴직해야 한다.

김영옥 기자
이로 인한 총경 승진 경쟁으로 브로커 등을 통한 인사 청탁이 난무하고, 외압에 취약한 구조가 굳어졌다는 게 청구인 측 주장이다. 헌법소원을 대리하는 강동필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경정 계급정년 폐지는 개인의 생존뿐 아니라 경찰 조직의 건전성이 달린 문제”라고 말했다.
경찰청은 “경정 계급정년의 즉시 폐지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서를 지난 7일 헌재에 제출했다. 계급정년을 폐지할 경우 ▶승진 인원 감소로 조직 활력이 저하될 우려가 있는 점 ▶제도 유지를 통해 하위직 인재의 승진 기회가 확대될 수 있는 점 ▶경정 계급정년제도의 적용 대상자가 소수에 불과한 점 등 이유에서다. 이를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다른 특정직 공무원과의 차별은 합리적 이유가 있는 차별에 해당하기 때문에 평등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경찰청은 주장했다.

경찰청은 지난 7일 경정 계급정년 즉시폐지는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다. 뉴스1
“계급정년 더는 경찰대 출신만의 문제 아냐”
폐지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경찰대 출신 한 총경은 “처음부터 룰을 알고 들어온 것 아니냐”며 “위에서 자리를 비워줘야 아래에서 올라갈 수 있다”고 말했다. 순경 공채 출신 한 경위는 “경찰대나 간부후보 출신이 아니면 딱히 공감하기 어려운 주제”라는 반응을 보였다.
다만 “경정 계급정년이 더는 경찰대 출신만의 고민이 아니다”라는 의견도 있다. 순경 공채 출신 경찰관도 근속과 시험승진 등을 통해 이른 나이에 경위가 되는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2023년이면 경정 계급정년으로 퇴직하는 경찰관 중 순경 입직자 비율이 21.4%까지 증가할 것으로 추정했다. 33세에 경위가 된 순경 공채 출신 경찰관은 “경정 계급을 빨리 달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과 계급정년을 생각하면 천천히 다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교차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2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경정 계급정년 폐지를 촉구하는 세미나가 개최됐다. 사진 재단법인 대한민국 역사와 미래
전문가 사이에선 헌재 판단 이전에 입법부가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조언이 나온다. 치안정감 출신 윤재옥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2019년 4월 경정 계급정년을 최대 18년까지 연장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경찰공무원법 개정안을 냈지만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치안정감 출신 이상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중앙일보에 “기본적으로 경정 계급정정은 폐지 또는 완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라면서도 “예민한 문제이기 때문에 경찰 조직의 공감대와 관련 연구가 선행돼야 한다”고 했다.
경찰이 자체적으로 개선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경찰 출신 김학경 성신여대 융합보안공학과 교수는 “평시 상황에서 심사를 통해 4년까지 계급정년 연장을 정하고 있는 경찰공무원법 30조 3항을 경찰청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