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퍼사이클'에도 불안한 중형조선사, 美 MRO 훈풍에 너도나도 진격

한화오션이 지난해 6월부터 올해 3월까지 유지·보수·정비(MRO)한 미 해군 7함대 소속 '윌리 쉬라호'가 정비를 마치고 지난 13일 경남 거제 한화오션 사업장을 출항하고 있다. 오른쪽 아래는 지난해 9월 입항당시 모습. 한화오션

한화오션이 지난해 6월부터 올해 3월까지 유지·보수·정비(MRO)한 미 해군 7함대 소속 '윌리 쉬라호'가 정비를 마치고 지난 13일 경남 거제 한화오션 사업장을 출항하고 있다. 오른쪽 아래는 지난해 9월 입항당시 모습. 한화오션

 
미국 해군 함정 유지·정비·보수(MRO) 시장에 중형 조선사까지 뛰어들고 있다. 수주량 감소로 새로운 먹거리가 필요한 데다, MRO 시장이 향후 미 함정 건조 시장으로까지 확장할 수 있다는 기대에서다.  

생존 위한 참전

28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HJ중공업과 SK오션플랜트가 MRO 사업 진출을 선언한 가운데, 대한조선과 케이조선도 검토 중이다. 지난해 중형 조선사의 실적은 나쁘지 않았다. 대한조선과 케이조선, HJ중공업 등 중형 조선 3사는 조선업 ‘수퍼사이클’을 맞아 지난해 흑자를 냈다. 대한조선은 지난해 영업이익이 1581억으로 14.7%의 사상 최대 영업이익률을 기록했고, 케이조선과 HJ중공업(조선부문)은 영업손실에서 벗어났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하지만 마냥 웃을 수는 없다. 지난해 수주량이 전년 대비 줄었기 때문이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가 발간한 ‘2024년 중형조선산업 동향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중형조선사의 지난해 수주량은 탱커 25만CGT(표준화물선 환산톤수)로 전년 대비 40.8% 감소했다. 연말 기준 수주 잔량도 전년 대비 4.6% 줄었다. 보고서는 “건조량을 월등히 초과하는 수주실적을 달성하지 못했다”고 짚었다.

대한조선은 지난해 1581억원 영업이익을 올려 14.7% 사상 최대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다. 사진 대한조선

대한조선은 지난해 1581억원 영업이익을 올려 14.7% 사상 최대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다. 사진 대한조선

 
업계는 중형사가 선수급환급보증(RG) 발급에 어려움을 겪은 게 한 원인이라고 본다. RG는 선수금을 내고 배를 발주하는 선사가 조선소 파산 등으로 기한 내에 배를 인도받지 못할 경우 금융기관이 선수금 환급을 보증해주는 제도를 말한다. 통상 RG가 없으면 신조 계약이 어렵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2021년부터 배 가격은 오르는데, RG 한도는 딱 정해져 있다”며 “이전에 10척 계약할 한도가 지금은 7척 수준이라 RG에 구애받지 않는 다른 먹거리로 눈을 돌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선택”이라고 말했다.


경남 진해에 위치한 케이조선은 미 해군 MRO사업 진출을 검토하고 있다. 사진 케이조선

경남 진해에 위치한 케이조선은 미 해군 MRO사업 진출을 검토하고 있다. 사진 케이조선

 

낮아진 허들도 유인

 HJ중공업은 닐 코프로스키 주한미해군사령관(준장)이 지난 4월 10일 부산 영도조선소를 방문해 유상철 대표 등 경영진과 기념 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HJ중공업은 닐 코프로스키 주한미해군사령관(준장)이 지난 4월 10일 부산 영도조선소를 방문해 유상철 대표 등 경영진과 기념 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 해군 MRO 사업에 당장은 특정 ‘면허’가 필요하지 않다는 점도 유인이다. 대형 조선소를 제외하고 미 MRO 사업에 공식 진출을 선언한 조선사는 HJ중공업과 SK오션플랜트다. 두 곳은 한국 방산 기업 면허는 갖고 있지만, 미 해군 함정정비협약(MSRA)은 취득 전이다. 

올해 1월 미국은 비전투함 MRO 사업에 MSRA가 없어도 입찰이 가능하도록 규정을 바꿨다. 지난 16일 기업설명회에서 미 해군 MRO사업 진출을 발표한 SK오션플랜트 관계자는 “규모가 작은 한국 호위함과 경비함 건조·수리 경험이 풍부해 미 해군 MRO 사업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케이조선과 대한조선은 MRO 사업진출을 검토 중이다. 케이조선 관계자는 “MRO사업에 방산면허가 필요하지 않고, 과거 특수선 건조 경험이 있어 진출을 계획 중”이라고 말했다.

정부 투자 기대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미 조선업 협력을 강조한 만큼 다음 달 어떤 정부가 들어서든 ‘함정 MRO’를 정부 사업으로 육성·투자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한몫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특수선 건조와 MRO 산업을 육성해 시장을 확대하겠다는 정책을 공약으로 내놨다.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도 미 MRO 참여 확대 등 정책 지원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방자치단체도 MRO 사업 육성으로 지역별 특성을 살리려 한다. 케이조선 관계자는 “경상남도와 MRO 관련해 여러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중형사 강점 어필

전문가들은 3년 치 일감이 쌓인 대형사 대비 도크 상황이 여유 있는 중형사가 MRO 사업 수주에 더 알맞을 수 있다고 보기도 한다. 해군 소령 출신 오경원 호원대 항공정비학과 교수는 “싱가포르 MRO 전문기업 ST엔지니어링의 경우 매출의 60%를 차지하는 MRO가 캐시카우 역할을 한다”며 “중소 조선사는 대형사 대비 적은 인건비로 차별화해 이 시장을 잡으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MRO를 카센터 개념으로 보면, 범퍼만 교체하는 수리도 있고 전체를 뜯는 수리가 있다”며 “참여사가 다양해지고 추후 MRO 물량도 늘면 대형사는 대형사대로, 중형사는 중형사대로 각 규모에 맞는 사업을 따낼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