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거울이 화장도구가 아니었다고? 거울 통해 본 고대인의 삶

거울이 화장도구가 아니었다고? 거울 통해 본 고대인의 삶  

우리가 하루에 한 번은 꼭 보는 거울은 빛의 반사를 이용하여 물체의 모양을 비추어 보는 물건이죠. 현대에 사용하는 거울은 보통 유리 뒤쪽에 아말감을 발라 만드는데요. 옛날에는 돌이나 청동 등으로 만들었다고 해요. 그렇다면 인류는 언제부터 거울을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초기의 거울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화순 대곡리 유적의 다뉴정문경은 거미줄 같은 촘촘한 무늬가 특징이다. ⓒ국립청주박물관

화순 대곡리 유적의 다뉴정문경은 거미줄 같은 촘촘한 무늬가 특징이다. ⓒ국립청주박물관

거울에 담긴 고대인의 삶을 들여다보고, 동북아시아 교류 양상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 '거울, 시대를 비추다'가 충북 청주시 상당구에 있는 국립청주박물관에서 오는 7월 20일까지 열립니다. 고대 농경사회 샤먼의 거울부터 고(故) 이건희 회장이 수집한 거울까지, 여러 시대와 지역을 아우르는 다양한 거울을 특별전 형식으로 만날 수 있죠. 김시영 학예연구사가 "이번 특별전은 주로 삼한시대와 삼국시대에 제작된 청동거울(동경·銅鏡)을 전시합니다. 제작·상징·교류라는 세 가지 관점을 중심으로, 시대를 관통하는 청동거울 문화와 지역별 차이를 보여주죠"라고 소개했어요.  

총 3부로 구성된 전시의 1부 '빛을 담다'에서는 청동거울의 제작 과정과 기술의 발전, 그리고 거울이 고대 사회에서 지닌 의미를 살펴봅니다. 청동거울 이전에는 돌을 다듬어 만든 거울이 있었어요.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이른 시기의 돌거울은 기원전 약 6000년경 지금의 튀르키예에 해당하는 아나톨리아 지역에서 만들어진 흑요석 거울입니다. 이후 세계적으로 청동기가 시작되면서 여러 문명권에서 금속으로 거울을 만들기 시작했죠. 한반도에서는 기원전 10~9세기 무렵 중국 요령지역의 청동기 문화 영향을 받아 청동거울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어요.  

그럼 청동은 어떻게 만들까요. 전시된 구리(Cu)·주석(Sn)·납(Pb) 등이 바로 청동의 재료입니다. "청동은 인간이 납·구리·주석을 적절한 비율로 배합해 높은 온도로 녹여 만든 금속이에요. 구리와 주석의 비율에 따라 색과 강도가 달라지죠. 구리의 비율이 높으면 붉은색을 띠고 잘 구부러지는 반면, 주석의 비율이 높으면 은백색에 가까워지며 경도는 단단해져요. 그런데 주석의 함유량이 22%를 넘으면 청동이 쉽게 깨지게 되죠."  


오는 7월 20일까지 전시 '거울, 시대를 비추다'가 열리는 국립청주박물관 특별전시실 전경.

오는 7월 20일까지 전시 '거울, 시대를 비추다'가 열리는 국립청주박물관 특별전시실 전경.

 
청동거울 제작을 위한 합금 비율은 주나라 사회규범을 담은 『주례(周禮)』의 「고공기」에도 남아있어 이 기록을 통해 당시 표준화된 청동거울 생산이 이뤄졌음을 알 수 있어요. 보통 원하는 형태로 만든 거푸집에 청동을 녹여 부어서 제작하는데, 청동거울 제작용 거푸집은 주로 흙이나 돌로 만들었죠. 거푸집을 만드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거푸집 자체에 직접 무늬를 새기는 만형법, 두 번째는 먼저 원하는 형태를 만든 후 그것을 흙에 찍는 원형법이죠. 단단해서 조형에 한계가 있는 돌은 만형법으로만 거푸집을 만들 수 있지만, 흙은 만형법·원형법을 모두 적용할 수 있고 여러 번 사용이 가능해요.  

거친무늬가 새겨진 청동거울은 조문경(粗文鏡)이라 하고, 세밀한 무늬가 새겨진 청동거울은 정문경(精文鏡)이라 해요. 조문경에서 시작된 한반도의 청동거울은 청동기 제작기술이 발전하면서 기원전 3세기가 되면 세밀한 기하학적 무늬가 특징인 정문경으로 발전합니다. 이러한 정문경을 만드는 거푸집은 좀 더 섬세한 무늬를 구현할 수 있는 흙으로 만들었죠. 이처럼 청동거울은 청동 제련, 반사가 잘 되는 합금 비율, 정밀한 무늬를 새길 수 있는 도구 제작, 거푸집 제작 등 전문적 지식을 갖춘 장인만이 만들 수 있었어요. 그래서 고대 청동거울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삼국시대 이전의 거울은 대부분 원형이며 일반적으로 청동으로 제작됐고, 일부는 철로 만들었어요. 거울면은 매끄럽게 다듬고 뒷면(무늬면)에는 다양한 글귀와 무늬를 새겼죠. 이를 통해 거울이 언제 어디서 만들어졌는지 알 수 있습니다. 또 무늬면에는 고리가 있어 끈을 매달아 사용했죠."  

청동거울은 납·구리·주석을 적절한 비율로 배합해 만든 청동으로 만든다. 사진은 왼쪽부터 구리·주석·납석.

청동거울은 납·구리·주석을 적절한 비율로 배합해 만든 청동으로 만든다. 사진은 왼쪽부터 구리·주석·납석.

 
우리나라의 청동거울은 뒷면에 끈을 매다는 꼭지가 2개 이상인 다뉴경이 많다는 게 특징입니다. 또한 중국 청동거울은 뒷면에 동물·글자 등을 장식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우리나라 청동거울은 선·원 등을 이용해 기하학적 문양을 장식하는 경향이 강해요. 전시실에서는 충남 아산 남성리 유적에서 발견한 조문경과 전남 화순 대곡리 유적에서 발굴한 국보 정문경을 함께 살펴볼 수 있었어요. 비교적 무늬가 단순한 조문경과 달리 정문경 뒷면에는 머리카락보다 가는 선 여러 개가 일정한 간격으로 세밀하게 무늬를 이루고 있었죠.  

청동거울이 출토된 장소를 보면 당시 사람들이 거울에 어떤 의미를 부여했으며, 어떻게 사용했는지 알 수 있어요. 전시 2부 '권력이 되다'에서는 청동거울을 소유한 사람들은 누구였으며, 그들이 어떤 사회적·정치적 배경 속에서 청동거울을 가질 수 있었는지 알아봅니다. 고대 사회에 청동거울은 부·권위·정치력을 가진 자의 위세를 보여주는 상징적 물건이었어요. 다뉴경과 같은 청동거울은 청동기에서 초기 철기까지 하늘과 소통하는 의례 도구로서 사용되곤 했죠. 그래서 주로 무덤, 제사 터, 우물, 조개무지, 집터 등에서 출토되는 경우가 많아요. 이를 통해 마을의 안녕과 풍년, 항해의 안전을 기원하는 의례를 행할 때 청동거울을 사용했다는 걸 알 수 있죠.  

"금속의 가장 큰 특징은 반짝이는 광택과 부딪힐 때 나는 소리죠. 청동거울처럼 금속판을 매끈하게 다듬어서 햇볕에 비추면 빛이 반사되는데, 고대인들은 이런 눈부심을 태양처럼 느꼈을 겁니다. 또 금속이 가진 소리는 방울로 형상화됐어요. 그래서 하늘과 인간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던 고대 샤먼(제사장)은 청동거울과 방울을 갖고 있곤 했습니다."

'거울, 시대를 비추다'는 시대를 관통하는 거울 문화와 지역별 차이를 폭넓게 소개한다.

'거울, 시대를 비추다'는 시대를 관통하는 거울 문화와 지역별 차이를 폭넓게 소개한다.

 
실제로 전남 화순 대곡리 무덤에서는 다뉴정문경이 한국식 동검, 여덟 개의 방울이 달린 팔주령 등과 함께 출토됐죠. 이를 통해 무덤의 주인이 칼로 상징되는 군사력을 갖춘 사실 외에도 방울을 흔들며 하늘과 땅을 연결하고, 비와 풍년을 기원하는 제를 지내는 샤먼의 역할도 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거울이 빛을 반사하는 기능을 제대로 하려면 거울면이 항상 깨끗해야죠. 고대 청동거울은 사용하지 않을 때는 경의(鏡衣)라 불리는 주머니에 넣어 보관했어요. 전남 해남 만의총 1호 무덤에 있던 삼국시대 직물흔 동경이나 평양 오야리 25호 무덤에 있던 후한 시대 직물흔 동경처럼 표면에 직물 흔적이 남은 청동거울이 발견된 것으로 알 수 있죠.  

청동거울을 가질 수 없던 사람들은 제사와 같은 의례를 지낼 때 흙이나 돌로 만든 거울을 신에 바치기도 했어요. 서울 풍납토성, 제주 화순리, 전북 부안 죽막동 유적에서는 청동거울보다 값싸고 만들기도 쉬운 흙이나 돌로 만든 거울이 출토됐죠. 이것은 당시 거울이 사람이나 물체를 비추는 용도 외에도, 의례용으로 상징적 의미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청동거울 제작을 위한 합금 비율이 적힌 『주례』의 「고공기」.

청동거울 제작을 위한 합금 비율이 적힌 『주례』의 「고공기」.

 
고대에는 거울을 의도적으로 깨뜨려 사용한 흔적도 확인돼요. 전시실에는 충남 서천 장항 30-1호 무덤에서 출토된 정문경이 있었는데요. 무덤 주인공의 머리 옆쪽에서 여러 조각으로 깨진 상태로 출토됐죠. "무덤에서 출토되는 깨진 거울은 살아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을 구분하고, 무덤의 주인공이 사후 세계에서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던 것으로 보여요. 그런데 무덤에서 발굴된 파경(破鏡)의 조각을 다 맞춰도 온전한 형태가 되지 않는 경우도 있어요. 당시 청동거울은 매우 귀한 물건이었기 때문에 깨진 거울 조각을 가공해 부적으로 지니기도 했죠."

앞서 고대 청동거울은 권력자의 위세품이라고 설명했죠. 샤먼뿐만 아니라 왕의 무덤에도 껴묻거리로 청동거울이 출토된 사례가 있어요. 백제 무령왕릉, 신라 황남대총 등이 대표적이죠. 이들 중 일부는 고구려·백제·신라가 주변의 여러 나라와 활발히 교류했다는 사실도 알려줍니다.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총 3점의 청동거울 중 자손이 계속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의자손(宜子孫)'이란 글자가 새겨진 청동거울은 중국 후한 시대의 수대경(동물무늬 청동거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죠. 황남대총에서도 중국 후한 시대에 유행한 형태의 청동거울이 출토됐어요.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의자손'이란 글자가 새겨진 의자손수대경. ⓒ국립청주박물관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의자손'이란 글자가 새겨진 의자손수대경. ⓒ국립청주박물관

 
청동거울은 소유한 사람의 사회적 지위는 물론 당시에 이루어진 국제적 교류의 흔적도 보여주는데요. 3부 '문화를 잇다'에서는 청동거울이 시대와 지역을 넘어 전해진 과정을 따라가며, 그 안에 담긴 고대인들의 삶과 문화를 만납니다. "삼국시대 이전의 거울은 대부분 둥근 원형이며, 청동이나 철로 만들어졌어요. 또 거울 뒷면에는 다양한 글귀와 무늬가 새겨졌죠. 거울의 글귀와 무늬는 시기와 지역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이를 통해 교류의 흔적을 파악할 수 있죠. 예를 들어 중국 전한(前漢·BC 202~AD 8) 시기 거울에 새겨진 문양은 군주에 대한 충성심을 강조하는 내용이 많고, 후한(後漢·AD 25~220) 시기 거울에는 집안의 부귀영화나 자손의 번창을 담은 내용이 많아서 사회적 분위기 변화를 보여주죠."

동북아시아의 청동거울은 뒷면에 2개 이상의 꼭지가 달린 한국의 다뉴경, 꼭지가 하나뿐인 중국의 한경, 한경을 모방해 만든 일본 열도의 왜경으로 크게 구분해요. 기원전 2세기경 한반도 남부에서 정문경이 전해진 이후 왜인들은 자신만의 거울인 왜경을 만들었죠.  

중국 한(漢) 나라는 청동거울 문화가 가장 번성했던 시기로, 우리나라와 일본에도 큰 영향을 미쳤어요. 한반도에서 출토되는 중국 거울은 중국과의 정치적 관계에 따라 분포 지역도 달라져요. 전한 시기 청동거울은 상주·대구·경산·영천·경주·포항·밀양·창원·김해 등 내륙 지역을 따라 분포하며, 후한 시기 청동거울은 보령·서산·익산·고성·김해·등 서·남해안 일대를 중심으로 발견됩니다. 이를 통해 한반도 삼한과 중국 한나라의 교류를 엿볼 수 있어요. 전한 시기에 만들어진 청동거울은 당시 지금의 경상도 지역에 형성되어 있던 진한(辰韓)을 중심으로 이동했고, 후한 시기에 만들어진 청동거울은 당시 지금의 충청·전라도·경상 지역에 분포되어 있던 마한(馬韓)·변한(弁韓)을 중심으로 확산됐음을 알 수 있죠.

신선과 동물 등을 새긴 후한 시기 신수경. 중국 한나라의 청동거울은 한반도와 일본에 큰 영향을 미쳤다. ⓒ국립청주박물관

신선과 동물 등을 새긴 후한 시기 신수경. 중국 한나라의 청동거울은 한반도와 일본에 큰 영향을 미쳤다. ⓒ국립청주박물관

 
왜경의 경우 한반도에는 4세기 김해·창원·경주 지역을 중심으로 유입됐어요. 5세기 이후에는 경주를 비롯해 영산강과 남강 유역 등으로 왜경의 분포가 확산돼 당시 한반도와 일본의 활발한 교류를 보여주죠.  

청동거울에 새겨진 무늬를 통해 당대 사람들이 품었던 이상과 바람을 들여다볼 수도 있어요. 예를 들어 평양 오야리 19호 무덤에서 발견된 후한 시기 신수경에는 곤륜산 정상에 사는 도교의 신 서왕모와 남성 신선의 우두머리인 동왕공(동왕부), 삼황오제 중 한 명인 황제 등이 새겨져 있죠. 이러한 요소들은 당시 사람들이 꿈꾸던 이상적 세상을 반영합니다.  

통일 신라 이후 청동거울은 의례용이 아닌, 화장도구로 인식되면서 원형에서 벗어나 다양한 모양으로 제작됐어요. 고려 시대에 이르면 화장도구로 널리 보급됐으며, 19세기 유리 거울이 보편화되기 전까지 널리 사용됐죠. 이는 고(故) 이건희 회장이 기증한 거울을 통해 볼 수 있어요. 한·중·일에서 만들어진 555점의 거울 중 일부가 전시됐는데, 네모난 사뉴방형경, 종 모양을 한 종형경, 구름을 닮은 운판형 현경(매달 수 있는 형태의 거울) 등이 눈길을 끕니다.  

고 이건희 회장이 기증한 555점의 거울 중 일부를 '거울, 시대를 비추다'에서 만날 수 있다. ⓒ국립청주박물관

고 이건희 회장이 기증한 555점의 거울 중 일부를 '거울, 시대를 비추다'에서 만날 수 있다. ⓒ국립청주박물관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오래된 무덤 속에서 발견된 청동거울은 그 형태와 문양, 함께 묻힌 유물에 근거해 해당 무덤의 주인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알려줍니다. 이를 통해 당시 시대상도 함께 살펴볼 수 있죠. 거울 하나에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