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 AI의 ‘챗GPT’부터 중국 스타트업이 개발한 ‘딥시크’ ‘마누스’까지, 인공지능(AI) 시장 내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수많은 AI 플랫폼 중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쓰는 앱은 챗GPT로, 국내산 AI ‘뤼튼’과 ‘에이닷’이 그 뒤를 잇고 있습니다(앱·리테일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리테일·굿즈’ 스마트폰 이용자 5120만명 조사)
그럼 기업들 사이에선 어떤 AI 서비스가 인기일까요. 실제 기업 내부에선 개인이 쉽게 접하는 AI를 쓰긴 어렵습니다. 바로 보안 문제 때문인데요, 2023년엔 기업 정보 유출 가능성 때문에 삼성이 챗GPT의 사내 이용을 제한하는 일이 있었고, 지난 2월엔 데이터 수집 문제로 외교·산업부·카카오 등 정부와 기업에서 딥시크 이용을 금지하는 일도 있었죠.
딜로이트가 지난 1월 발표한 ‘아시아-태평양 지역 AI 거버넌스 서베이’ 보고서에선 모든 산업이 AI 활용으로 보안 취약·개인정보 보호 및 법적 리스크와 같은 위험에 직면했다고 발표했어요. 아시아·태평양 지역 기업 고위 임원진 900명 설문조사 결과, 금융·생명과학 및 의료·정부 분야의 각 42·31·28%가 AI 활용으로 인한 사고가 증가했다고 밝혔죠.
그럼에도 인공지능 시대에 AI 사용을 거스를 수는 없습니다. 정부와 기업이 보안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AI 활용법을 적극적으로 찾는 이유죠. 최근 각국 정부는 AI 활용 규제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선 지난해 12월, ‘AI 기본법’이 국회를 통과해 내년 1월부터 시행됩니다. 유럽은 2023년 8월, 세계 최초로 포괄적 AI 관련 법 ‘EU AI법’을 발효해 올해 11월부터 처벌 규정을 적용할 예정이죠. 미국 역시 같은 해 10월, 안정적이고 신뢰 가능한 AI 개발과 안전에 대한 행정 명령을 내렸습니다.
지난해 12월 26일, 국회 본회의에서 AI 기본법이 통과됐다. 연합뉴스
기업들도 분주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주요 기업들은 내부용 생성형 AI를 개발하고 있어요. 챗GPT같은 범용적 AI 서비스를 ‘퍼블릭 AI’라고 부른다면, 자체적으로 활용하는 ‘프라이빗 AI’를 만드는 거죠. 프라이빗 AI는 기업이나 기관 내부 서버 등 폐쇄 인프라에서 작동하기 때문에 내부 정보 유출 가능성이 작아 차세대 기업 AI 플랫폼으로 여겨집니다. 조직 내부 데이터를 전문적으로 학습해 기업 특화형 모델로 활용할 수 있는 점도 장점이죠.
대기업부터 스타트업까지, 비밀 AI 프로젝트의 시작
실제 많은 국내·외 기업에선 프라이빗 AI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금융 미디어 ‘블룸버그’는 자사 뉴스와 보도자료, 회사 재무제표 등 직접 만든 내부 데이터를 활용한 ‘블룸버그 GPT’를 개발, 내부 전문가를 대상으로 금융·투자 분야 분석 결과를 제공해요. LG AI 연구원은 기업용 AI 에이전트 ‘챗엑사원’을 만들어 사내망에서 내부 데이터를 안전하게 활용할 수 있는 AI 에이전트를 구축했죠. 삼성SDS 역시 폐쇄망 안에서 업무 협업을 지원하는 기업용 협업 AI 솔루션 ‘패브릭스’를 개발했습니다.
LG 사내 임직원이 활용하는 기업용 AI 에이전트 '엑사원'. LG
프라이빗 AI 개발은 대기업만의 일은 아닙니다. 1000억 원대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 ‘업스테이지’는 2023년 이커머스 전문기업 ‘커넥트웨이브’와 손잡고 가격 비교 사이트 ‘다나와 ‘에누리’에 내재화하는 AI 개발에 나섰어요. 지난해 6월엔 신한투자증권과 함께 금융투자업 특화 AI를 만들겠다고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국내 ERP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하는 더존비즈온 역시 기업용 프라이빗 AI 서비스 ‘ONE AI Private Edition’을 내놨습니다. 기업 내부 폐쇄망 안에 AI 인프라를 구축한 클라우드형 서비스입니다. 최근 공공·금융 등에서 데이터를 안전하게 학습하고 AI를 통해 업무 수행이 가능한 기반 마련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등장한 서비스죠. 더존비즈온의 데이터 센터 ‘D-클라우드 센터’를 활용해 보안성 강화에 나섰다고 해요.
sLLM 시대가 온다…가볍고 싼 AI 모델의 등장
LG의 ‘엑사원’과 더존비즈온의 ‘ONE AI Private Edition’ 등 프라이빗 AI의 공통적인 특징은 거대 언어 모델(LLM)이 아닌, 경량화된 소형 언어 모델(sLLM)을 쓴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요즘 글로벌 기업들 사이에서 sLLM기반 AI 개발 경쟁이 치열합니다. 메타의 ‘라마3’, 구글의 ‘젬마’, 마이크로소프트의 ‘파이-3 미니’ 등이 대표 사례죠.
새삼 sLLM이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GPT-4같은 기존 LLM을 기업 내부에서 운영하려면 엄청난 GPU 자원과 서버 저장공간 등이 필수라 고도의 운영 기술과 비용을 쏟아부어야 해요, 하지만 sLLM은 LLM이 가진 언어 이해 및 콘텐트 생성 능력을 유지하면서도 모델 크기를 줄여 LLM의 한계를 보완합니다. 엑사원 개발에 참여한 LG AI 연구원의 송호성 연구원은 “체급은 낮추고 활용 퍼포먼스는 높인 것”이라고 비유했어요.
더존비즈온의 AI 관계자 역시 “LLM이 컴퓨터라면 sLLM은 스마트폰”이라며 “적은 자원으로 핵심 기능을 빠르게 처리할 수 있어 기업이 자체적으로 운영하기에도 부담 없는 모델”이라고 전했습니다.
퍼블릭 AI가 등장하면서 전세계 개인과 기업에 AI와 함께 일하는 가능성을 줬다면, 이제는 프라이빗 AI를 통해 안전하고 전문적인 AI 활용이 가능해질 거예요. 개인 성향에 맞는 맞춤형 생성형 AI가 발전했듯, 기업 특징에 맞는 전문화된 AI로 진화할 수 있겠죠. 앞으로 AI 산업은 또 어떻게 발전하게 될까요. 새로운 AI 패러다임의 전환이 기다려집니다.
서혜빈 기자 seo.hyeb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