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립 주택 배달했을 뿐인데"…우크라 '거미집' 작전 막전막후

 

우크라이나는 1일 러시아 시베리아 이르쿠츠크 지역의 공군기지 4곳을 드론으로 공격해 러시아 전략폭격기 40여 대를 타격하는 ‘거미줄 작전’을 펼쳤다. 사진은 러시아 전투기가 우크라이나 드론 공격을 받아 불타는 모습. 사진 BBC 유튜브 캡처

우크라이나는 1일 러시아 시베리아 이르쿠츠크 지역의 공군기지 4곳을 드론으로 공격해 러시아 전략폭격기 40여 대를 타격하는 ‘거미줄 작전’을 펼쳤다. 사진은 러시아 전투기가 우크라이나 드론 공격을 받아 불타는 모습. 사진 BBC 유튜브 캡처

러시아 무르만스크에서 조립식 목조 주택 4채를 주문받았어요. 배달해 주실래요? 
러시아 동부 시베리아의 관문 도시인 첼랴빈스크에 사는 러시아인 트럭 운전사 알렉산드르(55)는 얼마 전 아르티옴(37)이라는 사업가를 만났다. 아르티옴은 트럭으로 약 3100km 거리 떨어진 서북단 무르만스크까지 조립식 목조 건물을 실어 날라달라고 의뢰했다. 

운임비를 합의한 뒤 알렉산드르는 ‘화물들’을 아르티옴 소유의 트럭에 싣고 출발했다. 운전 중 알 수 없는 사람이 전화를 걸어와서 ‘언제, 어디에’ 트럭을 세워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지시했다. 알렉산드르가 지난 1일(현지시간) 최종 정착지로 지정된 무르만스크 군 비행장 인근의 주유소에 트럭을 세우자, 갑자기 ‘화물들’의 지붕이 열리면서 무인기(드론)가 날아올랐다.

또 다른 러시아인 트럭 운전사 안드레이(61)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그 역시 아르티옴이란 사업가의 의뢰로 트럭을 이르쿠츠크 지역까지 조립식 주택을 운반하는 일감을 맡았다. 같은 날 예정대로 어느 카페 근처에 주차하자, 트럭에서 드론이 이륙했다.  

 
러시아 본토를 겨냥한 우크라이나의 대규모 드론 공격의 전말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은 최전선에서 4300㎞ 이상 떨어진 러시아 동부 시베리아 이르쿠츠크 벨라야 기지 등 4곳의 공군기지를 드론으로 타격했다. 우크라이나 측에 따르면 이번 공격으로 러시아군은 Tu-160, Tu-95 등 70억 달러(약 9조7000억원)에 달하는 41대의 전략폭격기를 잃었다.


‘거미줄’로 명명된 이번 비밀 군사작전에선 트럭 운전사들에게 운송을 의뢰한 아르티옴이란 인물이 눈길을 끈다. 아르티옴과 계약한 대로 목조주택을 운반했더니, 지붕이 열리며 드론이 일제히 날아올랐다는 게 공통된 증언이다. 드론이 날아오르는 걸 목격한 러시아인들은 돌을 던졌지만, 드론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러시아 수사당국은 아르티옴을 우크라이나인으로 단정하고, 그의 소재를 추적 중이다. 이와 관련,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 공격을 도운 모든 인물은 작전 개시 전에 러시아 영토에서 철수했고, 현재 안전하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옛 소련 시절부터 우크라이나에 동화 정책을 펼쳐 대부분의 우크라이나인이 러시아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러시아군에 정통한 텔레그램 매체 바자에 따르면 이번 사건과 연관된 의문의 트럭 폭발 사고도 있었다. 시베리아의 고속도로(치타~하바롭스크)에서 지난달 31일 컨테이너 화물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트럭 운전사 바실리(62)가 진화를 위해 화물 내부로 들어갔으나 폭발이 일어나 즉사했다고 한다. 바자는 “우크라이나 보안국(SBU)이 동원한 화물들과 매우 유사한 화물이었다”며 “인근 아무르주의 공군기지도 우크라이나의 공격 목표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러시아 당국은 첼랴빈스크에서 우크라이나가 이번 작전에 사용한 창고를 찾아냈다. 드론은 이 창고에서 조립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월세 35만 루블(한화 약 610만 원)의 임대 매물로 올라온 곳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 1일 거미줄 작전의 성공을 보고받고있다. EPA=연합뉴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 1일 거미줄 작전의 성공을 보고받고있다. EPA=연합뉴스

 
드론의 운용 방식은 이번 작전의 최대 미스터리다. 1인칭 시점(FPV) 드론 117대를 원격 조종해 목표물을 타격했다고 우크라이나는 밝혔으나, FPV 드론은 통상 20㎞ 정도가 운용 거리의 한계다. 이와 관련, CNN은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의 스페이스X가 운영하는) 스타링크가 아니라 러시아의 이동통신망을 이용해 조종한 것 같다”고 전했다. 사무엘 벤데트 신미국안보센터 수석연구원은 “드론이 상공에 뜨는 것까지는 미리 프로그램해 놓고, 그 뒤부터는 러시아 이동통신망으로 조종했을 것”이라고 키이우 인디펜던트에 말했다.

우크라이나의 꾀 말고도 러시아의 방심도 작전 성공 요인으로 지목된다. 우크라이나에서 멀리 떨어진 기지란 이유로 “러시아 폭격기들이 비행장에 그냥 서 있었고, 심지어 구글 지도 등 공개 위성 이미지에서도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상태였다”(CNN)고 한다. 러시아 레이더와 방공 체계는 드론과 같은 저고도 공격에 취약하다. 그런데도 우크라이나군의 공격 당시 유일한 대응 수단이라 할 만한 중기관총을 통한 대공 사격이 없었다고 한다. CNN은 “러시아가 국경 너머가 아닌 목표물 바로 옆에서 드론을 발사해 공격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이런 가운데 2일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열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2차 휴전협상은 별 다른 성과 없이 1시간 만에 끝났다. 양측은 전쟁 포로와 전사자 시신 교환을 합의하는 데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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