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거다. 지난 4월 1일부터 7일까지 열린 세계 최대의 시계 박람회 ‘워치스 & 원더스 제네바 2025’가 열렸다. 이곳은 준비한 사람과 그곳을 찾은 관람객 모두를 만족시킨 축제의 장이었다. 불가리를 포함해 7개 브랜드가 새로 합류하면서, 총 60개 브랜드가 ‘시계 전쟁’에 뛰어들었다. 

 
60개 브랜드 참가, 역대 최고
주최 측에 따르면, 이번 박람회를 찾은 방문객은 매체 소속 1600명을 포함해 총 5만5000명으로, 지난해 대비 5% 증가했다. 일반인도 입장 가능한 3일 동안에는 전년 대비 21% 증가한 티켓 2만3000장이 팔렸다. 4만3000박에 달하는 제네바 지역 호텔 예약 건수만 봐도 시계 축제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수 있다. 소셜 미디어 반응도 뜨거웠다. 인플루언서, 유튜버, 참가 브랜드, 언론이 실시간으로 콘텐트를 공유한 결과, 박람회 종료 전까지 해시태그 #watchesandwonders2025의 도달 범위는 약 7억 명에 달했으며, 이는 전년 대비 17% 증가한 수치다.

 
지난해 까르띠에 회장에서 물러난 후, 워치스 & 원더스 제네바 재단의 총책임자가 된 시릴 비네론 회장은 이 박람회를 두고 “시계를 사고파는 행사를 넘어, 각 브랜드가 자신만의 세계를 표현할 수 있는 중요한 플랫폼”이라 강조했다. 과장이 아닌 것이, 일주일간 그야말로 열띤 경쟁이 펼쳐졌다. 창의성과 독창성으로 기계식 시계의 매력을 어필한 브랜드도 많았지만, 반대로 시장을 장악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며 핵심 모델을 강화한 브랜드도 적지 않았다. 2024년 스위스 시계 시장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침체 속 성장하는 한국 시계 시장
지난 1월 30일, 스위스 시계산업연맹이 발표한 2024년 연간 리포트에 따르면, 지난해는 시장별 성과와 브랜드 간 실적 격차가 크게 벌어지며 전반적으로 어려운 한 해였다.

수출 총액은 전년 대비 2.8% 감소한 260억 스위스프랑(약 43조5700억 원)으로, 3년간 이어온 성장세가 멈추고 경기 둔화의 조짐이 나타났다. 총 수출량은 9.4% 감소한 약 1530만 개다. 특히 엔트리 및 중간 가격대 제품군에서 경쟁이 치열해지며 하락세를 주도했다. 수출가 3000스위스프랑(약 502만원) 미만 시계의 매출은 15.6% 감소했다. 그 이상 가격의 시계는 1% 소폭 상승했지만, 전체 하락을 상쇄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소재별 수출에도 변화가 있었다. 스틸 시계는 9.8% 감소했지만, 귀금속 시계는 2.2% 증가했다. 다만 수량 기준으로는 5.1% 감소해, 가격 상승에 따른 착시 효과라는 분석이다.


지역별로는 미주가 5.4% 성장하며 가장 역동적인 시장으로 부상했다. 특히 미국은 5% 성장하며 4년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다. 반면 아시아는 -7.6%로 뚜렷한 침체를 보였다. 중국(-25.8%)과 홍콩(-18.7%)의 영향이 컸다. 일본은 관광객 수요에 힘입어 7.8% 성장했고, 한국은 2023년의 큰 하락 폭 덕분에 8.7% 반등했다. 유럽 시장은 전년과 큰 차이 없이 안정적인 흐름을 보였다.

 
연맹은 스위스 시계 시장의 회복이 중국의 경제 전망에 크게 좌우될 것으로 내다봤다. 큰 반등은 기대하기 어렵지만, 하락세는 다소 완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아울러 브랜드 간 격차는 계속해서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핵심 모델 강화, 사이즈 축소, 블루가 핵심
2025년 신제품들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핵심 모델의 다변화’다. 베스트셀러이자 브랜드를 대표하는 아이코닉 제품의 세력을 더욱 확장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는 2024년의 저조한 실적을 타개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도 하다. 비교적 빠르고 간편하게 신제품을 내놓을 수 있는 전략으로, 소재나 다이얼 컬러를 바꾸는 것은 물론, 사이즈의 다양화를 통해 성별의 경계도 허물고 있다. 거의 모든 브랜드가 이 트렌드에 동참해 특정 브랜드를 언급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래서 새로운 여성 주얼리 워치 ‘식스티’를 선보인 피아제의 활약이 돋보였다.

 
기술력으로 정면 대결한 브랜드들의 시계도 눈에 띄었다. 시간 정보 외 다양한 기능을 탑재한 시계를 ‘컴플리케이션’이라 하는데, 이 중 소리로 시간을 알리는 리피터(또는 차임) 워치는 극소수 브랜드만이 선보이는 하이 컴플리케이션이다. 올해 예거 르쿨트르, 쇼파드, 랑에 운트 죄네에서 독자적인 리피트 워치를 공개했으며, 바쉐론 콘스탄틴은 브랜드 설립 270주년을 맞아 리피터 기능을 포함한 41개의 기능을 담은 그랜드 컴플리케이션을 선보였다. 손목시계 역사상 가장 복잡한 시계다.

 
블루 컬러도 뚜렷한 트렌드다. 제니스는 브랜드 설립 160주년, 샤넬은 J12 출시 25주년, 위블로는 빅뱅 론칭 20주년을 기념해 케이스부터 브레이슬릿까지 블루로 물들인 시계를 공개했다. 몽블랑의 아이스드 씨, 쇼파드의 알파인 이글 모델은 빙하를 연상시키는 아이스 블루 컬러를 다이얼에 입혔다.

 
마지막으로 눈에 띈 굵직한 트렌드는 사이즈 축소다. IWC는 지름 35㎜ 인제니어를, 랑에 운트 죄네는 34㎜의 1815 모델을 공개했다. 몽블랑은 기존 41㎜인 아이스드 씨를 38㎜로 줄였고, 파텍 필립은 지난해 런칭한 큐비투스의 사이즈를 5㎜ 줄인 버전을 내놨다. 손목이 가는 사람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