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주고 샀는데 내 거 아니라고? 전자책 소유권 논쟁[팩플]

예스24 캡처

예스24 캡처

 
돈 내고 산 디지털 콘텐트, 내 소유 재산일까. 아니면 헬스장 이용권처럼, 특정 기간만 쓸 수 있는 권리일까. 국내 최대 온라인 서점 예스24 해킹 사태로 디지털 콘텐트 정체성 논쟁이 다시 점화했다. 판매자가 사고든 고의든 서비스를 멈추면 일방적으로 이용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나오는데, 이에 대한 보호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무슨 일이야

지난 9일 대형 온라인 서점 예스24가 랜섬웨어 공격(컴퓨터 서버 등을 암호화한 뒤 금품을 요구하는 수법)을 받으며 전자책 이용이 제한됐다. 이용자들은 돈 주고 산 책이지만, 필요한 때 볼 수 없었다. 이용자들은 구매 이력이 전부 사라져 이미 구입한 전자책을 볼 수 없게 되는건 아닌지 불안에 떨어야 했다. 예스24는 지난 13일 백업 데이터를 발견해 오후 9시 30분 전자책 열람 서비스를 재개했다.

최악의 상황은 피했지만, 논란은 이어지고 있다. 피해 보상 문제가 남아있기 때문. 전자책 이용자 대부분은 전자책을 ‘구입했다’고 여긴다. 하지만 예스24는 대여해주는 이용권으로 간주한다. 16일 예스24는 피해 대책을 발표했지만, 전자책 소장권을 구매한 이들에 대한 구제 방안은 빠져 있다. 전자책 대여 이용자에게만 기간을 5일 연장해주는 데 그쳤다. 예스24 관계자는 "(우리는) 애초에 이용 약관에서 전자책 구매를 대여 서비스로 간주하고 있다"며 "소장권 고객 보상안은 조만간 발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게 왜 중요해

김주원 기자

김주원 기자

과거에도 유사 사례가 있었다. 지난 1월 웹툰 플랫폼 ‘피너툰’은 10년 만에 서비스 종료를 공지했다. 이후 한 달 만에 기업 청산에 돌입하며 '먹튀' 논란이 제기됐다. 이용자가 구매한 콘텐트를 환불하지 않았고, 처벌도 없었다. 법적으론 이용자들이 디지털 콘텐트를 소유한게 아니라, 일정 기간 이용 권리를 획득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디지털 콘텐트 이용이 늘어나는 만큼 앞으로도 비슷한 문제가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콘텐트진흥원이 2022년 디지털 콘텐트 관련 피해를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피해 유형 중 ‘콘텐트 제공 중단에 대한 피해’가 24.2%로 가장 많았다. 관련 규정 역시 미비하다. 콘텐트산업진흥법에 이용자 권익을 보호하라고 명시돼 있지만, 구속력 없는 권고 사항에 불과하다. 


게임의 경우엔 법 상 이용자 권리를 인정받기가 더 어렵다. 사행성 조장을 이유로 ‘소유권’ 자체를 전면 부정하기 때문이다. 게임산업진흥법 28조에 따라 게임 내 모든 권리는 개발사에 귀속된다. 계정을 상속할 수도 없다. 지난해 한 유족의 사연을 접한 게임사 스마일게이트가 고인 명의의 ‘로스트아크’ 계정을 이전해 준 사례가 있지만, 극히 예외적인 일이었다. 이철우 법무법인 문화 변호사는 “디지털 콘텐트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은 탓에 우회로만 만들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해외는?

해외에서도 비슷한 논란은 이어지고 있다. 2023년 글로벌 게임사 유비소프트가 출시 9년된 레이싱 게임 ‘더크루’ 서비스를 일방적으로 종료했다. 게임을 샀지만 더 이상 즐길 수 없게 된 사람들은 지난해 11월 유비소프트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고 재판이 진행 중이다. 글로벌 최대 게임 플랫폼 스팀은 이런 논란을 의식해 지난해 이용 약관을 변경해 논란을 낳기도 했다. 게임 판매가 소유권을 보장하는 게 아니라 라이센스(이용권)를 제공하는 개념이라고 밝히자, 이용자들 불만이 터져나온 것.

해외에선 관련 규정 마련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지난해 9월 게임·음원·전자책 등 디지털 콘텐트 플랫폼에 ‘구매’ 표기를 금지하는 법안(디지털 상품 구매법)을 제정했다. 또 유럽연합(EU)에선 2019년 디지털 콘텐트 이용자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디지털 콘텐트 지침’을 제정했다. 디지털 콘텐트 구매자 소유권을 인정하고, 권리를 최대한 보장해주는 걸 법적으로 강제하고 있다. 백지현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은 "(국내에서도) 적어도 이용자들이 어떤 계약을 맺는지 고지해주고, 디지털 콘텐트의 성격을 명확하게 규정하는 입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