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 유해 발굴 경험 덕에…” 98년 만에 헤집은 1t 흙모래 속 어금니

 
“아무리 봐도 사람 치아랑 뼈 같아서 정식으로 보고했죠. 군대에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 복무했던지라 인골이란 걸 척 보고 알 수 있었습니다.”(박범희 연구원)

17일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의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1~4호분 재조사‘ 성과 발표에서 가장 눈길을 끈 건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의 작은 어금니 2개. 왕릉원의 2호분을 재조사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치아로 연구소 측은 13세에 즉위해 2년 만에 암살당한 백제 23대 삼근왕(재위 477~479년)의 것으로 추정한다.

17일 서울 중구 한국의집에서 열린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조사성과’ 언론공개회에서 출토된 유물인 귀걸이와 백제 23대왕 삼근왕의 어금니로 추정되는 치아(왼쪽)와 왕족의 귀걸이를 공개하고 있다. 국가유산청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는 23년 9월부터 1-4호분에 대한 발굴조사를 진행해 왕족의 장신구와 삼근왕의 어금니로 추정되는 치아 등을 발굴 했다고 밝혔다. 뉴스1

17일 서울 중구 한국의집에서 열린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조사성과’ 언론공개회에서 출토된 유물인 귀걸이와 백제 23대왕 삼근왕의 어금니로 추정되는 치아(왼쪽)와 왕족의 귀걸이를 공개하고 있다. 국가유산청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는 23년 9월부터 1-4호분에 대한 발굴조사를 진행해 왕족의 장신구와 삼근왕의 어금니로 추정되는 치아 등을 발굴 했다고 밝혔다. 뉴스1

어금니를 발견하는 과정은 지난했다. 애초에 무덤 네 개가 나란히 자리한 1~4호분은 일제강점기에 이미 도굴된 상태에서 일본인 가루베 지온(輕部慈恩, 1897~1970)에 의해 샅샅이 조사됐다. 때문에 2023년 1~4호분에 대한 재조사를 시작할 당시만 해도 연구소 측은 대단한 성과를 기대하지 않았다.

연구소는 올해 1~2월에 2호분 실내를 조사하면서 바닥의 흙모래를 한톨 남김 없이 수거했다. 혹시나 있을지 모를 잔존 유물과 함께 무덤 바닥 구조를 확인하려는 의도였다. 이렇게 수거된 흙모래는 5ℓ 분량의 마대자루 200개로 총 1t 규모에 달했다.  

이를 연구소에 옮긴 뒤 연구원과 아르바이트생들이 채반으로 흙을 거르는 작업에 착수했다. 일반적으로 건식으로 먼저 한 뒤 물체질(물에 담가서 채반으로 흔들어 거르기)을 하는데 구멍이 1㎜ 크기가 될 때까지 채반을 바꿔가며 총 4단계로 진행한다. 이를 통해 가장 부피가 큰 것들이 걸러지고 이후 깨알 같은 유물도 수거된다. 오동선 학예연구사는 “금귀걸이가 가장 먼저 발견됐는데, 이어 반지와 칼 고리 장식 등 귀한 금속유물과 유리구슬 1000여점이 나오는 등 기대 이상의 결과였다”고 돌아봤다. 가루베 조사 이후 98년 만의 성과다.


이밖에 관못(관에 고정시킨 못)과 나뭇조각 등 부수적인 유물을 한쪽에 따로 모아 뒀다. 이를 훑어보던 입사 5년차 박범희(31) 연구원이 새끼손톱보다 작은 갈색 형체에 주목했다.  

17일 서울 중구 한국의집에서 열린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조사성과’ 언론공개회에서 장신구와 백제 23대왕 삼근왕의 어금니로 추정되는 치아 등 1-3호분에서 출토된 유물을 공개하고 있다.  국가유산청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는 23년 9월부터 1-4호분에 대한 발굴조사를 진행해 왕족의 장신구와 삼근왕의 어금니로 추정되는 치아 등을 발굴 했다고 밝혔다. 뉴스1

17일 서울 중구 한국의집에서 열린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조사성과’ 언론공개회에서 장신구와 백제 23대왕 삼근왕의 어금니로 추정되는 치아 등 1-3호분에서 출토된 유물을 공개하고 있다. 국가유산청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는 23년 9월부터 1-4호분에 대한 발굴조사를 진행해 왕족의 장신구와 삼근왕의 어금니로 추정되는 치아 등을 발굴 했다고 밝혔다. 뉴스1

“고고학 전공이라 2015~17년 유해발굴감식단에 소속돼서 강원도 같은 6·25 전방 지역 유해 발굴을 많이 했거든요. 대부분 온전하지 않게 일부만 나오는데, 인골은 동물 뼈와 구분되는 특성이 있어요. 2호분에서 치아 2개와 자잘한 뼛조각, 3호분에서 치아 1개를 그런 식으로 골라냈습니다.”(박 연구원)

연구소는 먼저 확인한 2호분 치아를 가톨릭대 해부학교실 이우영 교수팀에 분석 의뢰했다. 이 교수를 포함해 치아, 뼈대 등 전문가 3명이 확대경을 통해 면밀히 관찰한 결과 치아는 10대 중후반 청소년의 어금니로 판명났다. 법의학자들은 치아의 교두(咬頭, 아래윗니가 서로 맞물리는, 두드러진 부분)가 닳은 정도(교모도)를 통해 연령대를 추정하는데 어금니 1개는 교모도가 거의 없었고 더 큰 어금니는 약간의 교모가 확인됐다. “20대가 되기 전, 10대 청소년기로 추정된다”(이우영 교수)는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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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측은 이날 성과 발표에서 더 확실한 결과를 위해 파괴분석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황인호 소장은 “가장 확실한 건 파괴분석, 즉 유물을 실효 샘플로 가공해서 DNA 분석을 시도한다면 성별 확인과 절대연대 측정을 해볼 수 있지만, 한다고 해서 결과치가 반드시 나오는 건 아니라서 고민스럽다”고 했다. 함께 나온 뼛조각은 DNA분석이 불가능할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다고 한다.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 직원들이 왕릉원 1~4호분 재조사를 통해 수거된 흙모래를 물체질(물에 담가서 채반으로 흔들어 유물을 가려내는 작업)하는 모습. 2호분 안에서만 1t 규모의 흙모래를 수거해 수개월 간 작업한 끝에 어금니 2개와 각종 금속유물 등을 확인했다. 사진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 직원들이 왕릉원 1~4호분 재조사를 통해 수거된 흙모래를 물체질(물에 담가서 채반으로 흔들어 유물을 가려내는 작업)하는 모습. 2호분 안에서만 1t 규모의 흙모래를 수거해 수개월 간 작업한 끝에 어금니 2개와 각종 금속유물 등을 확인했다. 사진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가 17일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1~4호분의 재조사 성과를 발표했다. 사진은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전경. 사진 국가유산청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가 17일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1~4호분의 재조사 성과를 발표했다. 사진은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전경. 사진 국가유산청

앞서 연구소는 지난 2018년 익산 쌍릉(대왕릉)에서 출토된 인골 중 정강뼈를 대상으로 가속 질량분석기(AMS, Accelerator Mass Spectrometer)를 이용해 방사성탄소연대측정을 시도한 결과, 보정연대를 서기 620~659년으로 산출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인골 주인이 7세기 초중반에 사망한 것으로 보이면서 학계에서 추정한 것처럼 쌍릉 주인이 백제 무왕(재위 600~641년)일 가능성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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