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는 왜 휠체어용 전기차 만들었나…다목적차 PV5의 실험

기아가 지난 10일부터 서울 aT센터에서 개최되는 '제20회 대한민국 보조공학기기 박람회'에서 공개한 휠체어용 차량 'PV5 웨이브'. 뉴스1

기아가 지난 10일부터 서울 aT센터에서 개최되는 '제20회 대한민국 보조공학기기 박람회'에서 공개한 휠체어용 차량 'PV5 웨이브'. 뉴스1

휠체어 이용자가 스스로 오르고 내릴 수 있고, 유아가 탑승한 디럭스 유모차도 그대로 태울 수 있는 차. 

지난 10일부터 사전예약을 시작한 기아의 목적기반 전기차(PBV) ‘PV5’의 휠체어용 라인 ‘PV5 WAV(Wheelchair Accessible Vehicle·이하 웨이브)’를 함축한 말이다. 웨이브는 PV5의 4가지 라인업 중 하나다. 나머지는 패신저(승객용), 카고(화물용), 샤시캡(냉동탑차 등 다용도) 등이다. PV5는 용도에 맞게 소비자가 트림을 선택할 수 있고, 원한다면 뒷부분 모듈을 갈아 끼워 맞춤형으로 제작할 수 있다. 19일 현재 사전예약 대수(패신저·카고 모델)는 수천 대 수준으로 알려졌다. 기아 관계자는 “정확한 숫자를 밝히기는 어렵지만, 내부 목표치에 근접했다”고 전했다.

완성차 업체가 휠체어용 차량을 직접 생산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전 세계적으로도 ‘블랙캡’이라고 불리는 영국 LEVC의 ‘TX’, 일본 토요타의 ‘재팬 택시’가 전부였다. 기아 카니발 등 대형 승합차를 전문업체를 통해 개조해 쓰고 있는 국내 소비자가 PV5 웨이브에 관심을 갖는 이유다. 

PV5 웨이브에 휠체어가 적재된 모습. 2열이 비어있어 사람이 탄채로 그대로 오를 수 있고, 3열은 접거나 다른 승객이 탈 수도 있다. 사진 기아

PV5 웨이브에 휠체어가 적재된 모습. 2열이 비어있어 사람이 탄채로 그대로 오를 수 있고, 3열은 접거나 다른 승객이 탈 수도 있다. 사진 기아

올해 4분기 국내에서 출시되는 PV5 웨이브는 발판 높이가 399mm로 내연기관차인 카니발(480mm)보다 낮아 완만한 휠체어 슬로프를 별도 개조없이 장착할 수 있다. 2열 탑승석으로 오를 수 있기에 트렁크 문을 통해 탑승하는 카니발보다 편의·안전성이 뛰어나다. 패신저·카고가 정부·지자체 보조금(미확정) 적용시 2000만원 중후반~3000만원 중후반인 점을 감안했을 때 웨이브 가격대는 3000만~4000만원 선으로 전망된다. 최소 4500만원(기본트림 3500만원 + 개조비 1000만원)이 드는 카니발 개조 차량보다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있다고 평가 받는다. 

휠체어용 차량 시장 자체는 크지 않다. 시장조사업체 디마켓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 시장은 50억 달러(약 7조원) 규모로 추산되며 2033년 80억 달러(약 11조원)로 커질 전망이다. 지난해 기준 2조2000억 달러(약 3034조원)인 글로벌 자동차 시장 규모의 0.2~0.3% 규모다.


그럼에도 기아가 실험을 단행한 이유는 무엇일까. 권용주 국민대 자동차운송디자인학과 교수는 “PV5 웨이브는 장애인뿐만 아니라 영유아를 동반한 가족 단위, 일시적으로 휠체어를 이용하게 된 교통약자, 고령자가 이용할 수 있는 다목적 차량 시장을 겨냥한 것”이라며 “현재는 너무 작은 시장이지만 PV5를 통해 신시장을 키울 수 있다고 보고 기아가 도전장을 던진 것”이라고 해석했다.

영국에서 운행되는 LEVC의 휠체어용 택시전용차 'TX'(일명 블랙캡). 사진 영국미디어플랫폼 '미디엄'

영국에서 운행되는 LEVC의 휠체어용 택시전용차 'TX'(일명 블랙캡). 사진 영국미디어플랫폼 '미디엄'

 
정부·지자체의 휠체어용 차량 도입 움직임도 주목할 만하다. 서울시는 연말부터 비장애인도 이용할 수 있는 ‘유니버설 디자인(UD) 택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등록 장애인만 이용할 수 있는 기존 장애인 택시와는 별개로 일시적 휠체어 이용자, 임산부, 유모차 동반 가족, 짐이 많은 여행객 등이 활용할 수 있다. 일본이 2017년부터 운영해 온 ‘UD택시’와 비슷한 개념이다. 기아로서는 PV5 웨이브를 공공 시장에 대량 납품할 기회가 될 수 있다.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측면도 있다. 기아는 지난달 영국 휠체어 전용 차량 리스사 ‘모타빌리티’와 유럽연합(EU) 및 영국에 PV5 웨이브 보급을 위한 협력을 체결했다. 조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복지에 관심을 더 많이 기울이는 선진국을 중심으로 휠체어용 차량 도입을 앞당기고 있어 시장이 빠르게 커질 수 있다”며 “기아로서는 교통약자 배려 등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이라는 이미지 제고 효과도 노렸을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