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탈리아 밀라노의 '오페라 메카' 라 스칼라의 포르투나토 오르톰비나(65) 극장장이 21일 한국 언론과 만났다. 부산콘서트홀 개관을 맞아 내한한 그는 오는 2027년 라 스칼라 음악감독에 부임하는 정명훈의 선임 배경을 상세히 밝혔다. 사진 베이스노트
“정명훈 감독은 150년 전 음악도 현대적으로 들리게 하는 능력이 있다. 라 스칼라가 미래에 더 열린 극장이 되기 위해 꼭 필요한 인물이다. 내가 그를 음악감독에 추천하자 밀라노 시장이나 극장 이사회가 만장일치로 동의했던 이유다.”
‘이탈리아 오페라의 메카’ 밀라노 라 스칼라가 247년 역사상 첫 아시아인 음악감독으로 정명훈(72)을 선택한 배경에 대해 포르투나토 오르톰비나(65) 극장장이 한 말이다. 그는 정명훈 지휘자가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부산콘서트홀(부산 연지동) 개관을 맞아 내한해 지난 21일 한국 언론을 만났다. 라 스칼라에서 2027년 임기를 시작하는 정명훈의 위촉 배경에 대해 극장 측이 한국에 직접 이유를 밝힌 건 이번이 처음이다. 올해 2월 부임한 오르톰비나 극장장은 베니스의 라 페니체 극장의 예술감독(2007~2017년)과 총감독(2017~2025년)을 지내며 정명훈 지휘자와 숱한 공연을 함께 한 바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는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
- 정명훈 지휘자와 개인적 인연은
“2003년 라 페니체 극장 재개관 공연차 그가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와 왔을 때 처음 만났다. 개인적으로 그의 음악을 처음 접한 건 1992년이다. 당시 학생이던 나는 관광 가이드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미국에서 온 부유한 단체 관광객의 호의에 힘입어 가장 좋은 좌석에서 라 스칼라 공연을 볼 수 있었다. 마에스트로 정이 지휘하는 쇼스타코비치의 ‘므첸스크의 레이디 맥베스’였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 올해 초 라 스칼라에 와서 음악감독을 선택할 때 오케스트라 및 합창단과 관계가 좋으면서 미래지향적인 프로그램에 가장 적합한 지휘자로 정명훈을 생각했다. 그는 라 스칼라에서 36년간 상임지휘자를 제외하고 가장 많은 횟수를 공연하기도 했다.”(※1989년부터 오페라 84회, 콘서트 141회를 했다)

20일 부산 연지동 부산시민공원 내 부산콘서트홀 개관식이 열리고 있다. 사진 부산콘서트홀
- 라 스칼라 극장의 변화와 미래에 정 감독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내 임기가 5년 뒤 끝날 때 ‘라 스칼라 안 가봤다’는 밀라노 사람이 없게 하는 게 꿈이다. 그 중심에 베르디가 있을 것이고 정명훈의 섬세함이 있다. 베르디·모차르트·푸치니 등 오페라의 중심엔 인간과 인생이 있다. 사람들이 극장에 가는 이유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다. 정명훈 지휘자와 함께 오케스트라와 성악가들이 그 이야기를 더 가깝게 들려주도록 할 것이다.”
- 정명훈에게 “이탈리아인인 나보다 베르디를 더 잘 이해한다”고 말했다는데.
“베르디는 가장 위대한 이탈리아 작곡가이고, 정명훈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베르디 지휘자 중 한명이다. 베르디가 150년 전 곡을 쓸 땐 한국의 존재를 몰랐을텐데, 세계적으로 알려져 한국에 도착해 정명훈이라는 보물을 찾게 된 것이다. 라 스칼라 음악감독은 레퍼토리에 대한 굉장한 능력이 있어야 하고 오페라뿐 아니라 교향곡도 중요한데, (정명훈은) 베르디·비제·모차르트·베토벤·차이콥스키 등 모두 해낼 수 있다.”
- 라 스칼라와 부산의 협업이 가능할까.(※정명훈은 부산콘서트홀과 2027년 개관할 부산오페라하우스의 예술감독도 맡고 있다)
“그는 부산에서 태어났고 이 도시를 성장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오는 9월에 라 스칼라 필하모닉이 이곳에서 연주하면서 부산과의 프로젝트가 연결된다. 오페라하우스 개관 공연과 라 스칼라의 연계를 논하기엔 아직 이르지만 가능성은 분명히 있다. 확실한 건 (정명훈의) 라 스칼라 시즌 시작은 ‘오텔로’(베르디)다.”

이탈리아 밀라노의 '오페라 메카' 라 스칼라의 포르투나토 오르톰비나(65) 극장장이 21일 한국 언론과 만났다. 부산콘서트홀 개관을 맞아 내한한 그는 오는 2027년 라 스칼라 음악감독에 부임하는 정명훈의 선임 배경을 상세히 밝혔다. 사진 베이스노트
라 스칼라 극장 운영은 정부지원과 티켓 수익, 후원 모금이 각각 3분의1을 차지하는 구조다. 오르톰비나 극장장은 부산 오페라하우스의 성공적 운영을 위한 조언을 청하자 “극장이 성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음악”이라면서도 “하지만 좋은 음악을 만드는 건 목표가 아니고 의무일 뿐이다. 진정한 목표는 오페라하우스를 지나가는 부산 시민들이 ‘저건 우리의 것’이라고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덧붙였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폐허가 된 밀라노에서 병원이나 학교보다 먼저 복원된 게 라 스칼라다. 밀라노의 상징과도 같기 때문이다. 심지어 극장에 안 가는 사람들도 라 스칼라가 무얼 공연하나 신문에서 찾아본다. 부산은 이런 걸 목표로 해야 한다.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이 될 거다. 어린이 합창단이 꾸려지고 엄마, 할머니가 봤을 때 흐뭇해하는 걸 상상해보라. 이건 도시를 위한 엄청난 프로젝트이고 도시 전체가 참여해야 한다.”

부산 최초의 클래식 전용홀인 부산콘서트홀이 20일 정명훈 예술감독이 이끄는 아시아필하모닉오케스트라(APO) 연주와 함께 문을 열었다. 100명의 오케스트라와 110여명의 합창단원이 베토벤 9번 교향곡 '합창'을 들려주고 있다. 사진 부산콘서트홀

20일 부산 최초의 클래식 전용홀인 부산콘서트홀 개관공연에서 정명훈 예술감독이 이끄는 아시아필하모닉오케스트라(APO)과 협연자들이 베토벤 삼중협주곡을 들려준 뒤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첼로 지안 왕, 바이올린 사야카 쇼지, 피아노 겸 지휘 정명훈. 사진 부산콘서트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