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가치 있는 일 하고 싶었어요, 기회비용 따지기보다 일단 창업 나섰죠

“금융회사나 공공기관 취업을 목표로 하는 평범한 취업준비생이었어요. *ROTC로 군 복무를 마친 후 2024년 5대 금융지주회사 중 한 곳에 합격했고, 거의 동시에 *청년창업사관학교에도 선정됐죠. 합격한 금융회사는 신입 연봉이 5000만원 정도였는데, 한 번 들어가면 평생 못 벗어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창업은 지금이 아니면 못해볼 것이란 생각에 청년창업사관학교를 선택했습니다.” 대학 시절부터 총 3번의 창업을 경험한 신현우(28·1998년생) 스코플 대표는 뭐든 일단 시도해보는 ‘실행력’이 자신을 창업의 길로 이끌었다고 말합니다. 스코플은 디지털직군 특화 장애인 채용 플랫폼 ‘잡빌리티’를 운영하는 스타트업이죠.

신현우(오른쪽) 대표가 이끄는 스코플은 장애인기업종합지원센터 주관 제19회 전국장애경제인대회에서 장려상을 받았다.

신현우(오른쪽) 대표가 이끄는 스코플은 장애인기업종합지원센터 주관 제19회 전국장애경제인대회에서 장려상을 받았다.

연세대학교 미래캠퍼스에서 국제관계학과 정치외교학(신촌캠)을 복수전공하던 대학생 현우씨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치 있는 일이 뭘까’ 고민하며 끊임없이 답을 찾고 있었어요. “대학 2학년 때 현대자동차그룹이 운영하는 대학생 해외파견 봉사단체 ‘해피무브’에 참여해 베트남 껀떠에 가서 7일간 언어나 미술을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했어요. 2019~2020년엔 *CJ도너스캠프 대학생봉사단으로 봉사활동을 직접 기획해봤죠. 그때 ‘어려운 환경에 있는 사람들이나 청소년들에게 꿈을 주는 일’이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가치 있는 일을 하려면 돈이 있어야 했습니다. 대학생 신분으로 돈을 마련할 방법을 고민하던 현우씨는 아이디어만으로 돈을 벌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죠. 바로 공모전에 당선돼 정부기관이나 관련 재단 또는 기업의 지원금을 받는 거예요. 그때부터 전국 어디서든 공모전이 열리면 무조건 지원했죠.  

인천 송도 컨벤시아에서 열린 스타트업 데모데이에서 VC 등 심사역 18명 앞에서 잡빌리티 서비스를 소개했다.

인천 송도 컨벤시아에서 열린 스타트업 데모데이에서 VC 등 심사역 18명 앞에서 잡빌리티 서비스를 소개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비대면 수업이 대부분이던 대학 3~4년 시기, 현우씨는 *리빙랩 수업에서 첫 창업을 경험합니다. 자신의 주변에서 사회 문제를 발견하고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솔루션과 수익화 방법을 찾아보라는 과제가 주어졌는데요. 현우씨는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엄청난 양의 일회용 마스크들이 버려지고 있다는 점에 문제의식을 가졌죠. 그에 공감하는 친구들과 함께 ‘마스크두잇(Mask Do It)팀’(리빙랩RCC 동아리)을 꾸리고 ‘폐마스크 재활용’이라는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기 위해 공모전에 도전했습니다. 일회용 마스크 속에는 생수병 뚜껑과 같은 재질인 *PP(폴리프로필렌)라는 성분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이것을 재활용해보기로 한 건데요. 이 제안이 2020년 7월 강원혁신포럼 지역문제해결 의제에 선발되며 국민건강보험공단·대한석탄공사 등 강원도 내 3곳의 공공기관으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었어요. 

먼저 공공기관 9곳과 연세대 미래캠퍼스 내부, 원주시 아파트 1곳 등에 포스터를 부착하는 등 대대적 홍보활동을 펼쳐 폐마스크 1만5000장을 확보했죠. 마스크 분리작업은 장애인 활동기관에 맡겨 장애인들의 수작업을 통해 PP 원료를 추출하고, 안경 프랜차이즈기업 다비치안경에 의뢰해 안경테를 만들었어요. 또 터치 프리키(손을 대지 않고 엘리베이터의 버튼이나 스위치 등을 누르는 위생용품)를 제작해 복지시설에 기부도 했죠. 현우씨는 이때 지원금과 제품 판매를 통해 인생 처음으로 큰돈을 버는 경험을 했다고 해요. 대학생으로 구성된 마스크두잇팀의 활약상은 이후 강원지역 신문을 비롯해 지상파 방송에도 뉴스로 다뤄지는 등 큰 화제가 됐죠. “일일이 수작업으로 마스크 분리작업을 하시던 장애인분들이 했던 이야기가 내내 마음속에 남았습니다. 일해서 버는 돈은 소액이지만 일하는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있었다며 무척 행복해하시더라고요.” 이때의 경험은 세 번째 창업인 스코플로 이어집니다.


2024 사회가치 목적지향기업 모의 창업경진대회 대상 수상으로 사회적기업 인증을 위한 후속지원도 받는다.

2024 사회가치 목적지향기업 모의 창업경진대회 대상 수상으로 사회적기업 인증을 위한 후속지원도 받는다.

당시 ROTC 복무를 병행했던 현우씨는 2021년 2월 졸업 후 53사단이 있는 부산에서 중위로 군 생활을 시작했어요. 인사과장 보직을 맡아 바쁜 와중에도 창업에 관심을 끊을 수가 없어 군대 내에서 3명을 모아 2023년 열린 제9회 육군창업경진대회에 도전했죠. 두 번째 창업 당시 팀명은 ‘도도새’, 아이템은 미세플라스틱 없는 종이식품흡수패드였어요. 100% 친환경 생분해성 물질인 셀룰로오스를 원료로 종이식품흡수패드를 개발했고, 친환경 제조공정을 통해 샘플 제작까지 성공했죠. 축산물·수산물을 담는 플라스틱 식품패드를종이패드로 대체한 도도새팀은 2023년 2월 서류심사를 거쳐 본선에 진출한 49개 팀 중 7개 팀에 선정, 최우수상을 받았어요. “인사과장 업무와 창업경진대회 준비를 병행하다 보니 스트레스가 너무 컸어요. 결국 건강 문제로 병원에 입원까지 했지만 그때로 다시 돌아가더라도 같은 선택을 했을 겁니다. 그만큼 창업과정에서 느끼는 희열이 컸죠.”

2023년 6월말 전역한 그는 동티모르로 향했습니다. 학과 교수님의 추천으로 KOICA 해외봉사단에 합류한 거죠. 8개월간 ‘농민 가치 스마트 밸류체인사업’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현지인들에게 식량을 자급하는 방법을 알려주거나 생산한 물품의 판로 개척을 돕고, 각종 인프라 설계 등을 했어요. 또 군 시절 경험을 살려 인사 업무를 맡았죠.

2021년 ROTC 임관 전 정복을 입은 신현우씨. 그는 군 복무 중에도 육군창업경진대회에 도전했다.

2021년 ROTC 임관 전 정복을 입은 신현우씨. 그는 군 복무 중에도 육군창업경진대회에 도전했다.

앞서 육군창업경진대회 최우수상 수상으로 중소벤처기업부 지원사업 ‘청년창업사관학교’ 지원 시 서류 면제의 혜택을 받은 그는 2024년 3월 19일 청년창업사관학교에 선정됐는데요. 이보다 약간 이른 2월 28일 5대 금융지주회사 중 한 곳에 합격해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됐죠. 신입사원으로는 꽤 높은 연봉의 직장에 취업하느냐, 아니면 아무것도 없이 맨땅에 헤딩하듯 또 한 번의 창업에 도전하느냐 고민이 깊었지만 결정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습니다.  

현우씨의 세 번째 창업은 청년창업사관학교와 함께 시작됐어요. 창업 아이템을 정하지는 못했지만 팀 빌딩은 이미 완료한 상태였죠. 아주대 소프트웨어학과 석사 출신인 김성현 개발자와 장애인 스포츠 활동 지원 경험이 있는 양현석 디렉터는 2023년에 참여했던 각기 다른 공모전에서 만난 사이예요. 두 사람은 이미 취업한 상태였지만 현우씨의 간곡한 설득 끝에 함께하게 됐죠.

“저희 세 사람 모두 장애인 당사자 혹은 가족이거나 관련 업무를 해본 경험이 있습니다. 제 아버지는 후천적 시각장애인이 된 후 이전에 하던 부동산 관련 일을 못 하게 됐어요. 희망퇴직 후 구청에 일자리를 구하러 갔지만 장애인 일자리는 환경 미화직이나 단순 사무직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됐죠. 아버지는 원하지 않는 일을 하다가 자괴감에 빠져 마음의 병까지 생겼고 결국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어요.”  

2024년 인천청년창업사관학교에서 매출시현 우수기업으로 선정,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표창장을 받은 스코플 신현우(왼쪽) 대표.

2024년 인천청년창업사관학교에서 매출시현 우수기업으로 선정,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표창장을 받은 스코플 신현우(왼쪽) 대표.

시각장애인 당사자이기도 한 개발자 성현씨 역시 2030세대 장애인들이 취업할 길 찾기가 너무 힘들다는 문제를 토로했죠. 직무와 무관한 장애를 가진 경우라도 기업에서는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서류전형에서조차 탈락시키는 일이 대부분이라는 거예요. 현석씨 또한 장애인 스포츠 단체에서 활동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의기투합했죠. 그렇게 장애인 취업이 왜 어려운지 파고들어 결국 창업 아이템으로 정했습니다. 회사명 ‘스코플’은 스코프(scope)와 피플(people)을 합성한 용어로 ‘망원경’으로 ‘사람’을 정확하게 매칭해주겠다는 의미를 담았죠. 스코플이 운영하는 앱 서비스 ‘잡빌리티’에선 장애인 채용 및 커리어 정보를 다루는 ‘잡티클’, 장애인 경험 커뮤니티, 인재 채용 등의 콘텐트를 다뤄요.

이 분야에도 이미 2018년에 설립된 스타트업 선두주자가 있었습니다. 현우씨는 스코플만의 세 가지 차별점으로 도전의지를 밝혔죠. “디지털 직무에 국한해서 인재를 추천한다는 점, 채용을 원하는 기업에 반드시 근로자 3인을 추천해주는 시스템, 장애인 편의시설 정보를 보기 쉬운 디지털 픽토그램으로 구현한다는 점이 잡빌리티 서비스의 차별점이자 강점입니다.”

스코플에서 운영하는 장애인 일자리 플랫폼 서비스 ‘잡빌리티’ 모바일 화면.

스코플에서 운영하는 장애인 일자리 플랫폼 서비스 ‘잡빌리티’ 모바일 화면.

8개월간 인큐베이팅을 거친 결과 2024년 12월 스코플은 중기벤처기업부로부터 우수매출 기업으로 선정돼 표창장을 받았습니다. 광고 콘텐트를 제작해 7500만원의 수익을 올렸고 1건의 특허 출원과 5건의 상표권 등록 등 성과를 이뤘죠. 특히 지금은 개발자, 앱/웹디자이너, *장애인 게임접근성 테스터 등 디지털 직군만을 대상으로 하지만 추후에는 보훈 대상, 저소득층, 그리고 일반인까지 대상을 확대해나갈 계획이에요. 2026년 해외 진출 및 대기업과의 협업도 추진 중이죠.  

청년창업사관학교 선정 당시 동시에 글로벌 콘퍼런스사업에도 선정되면서 2024년 11월 일주일간 베트남 호찌민에서 현지 장애인 복지관과 유관기관 담당자들과 만나 진출 가능성을 타진했었는데요. 6월 현재는 베트남 현지 시장조사를 통해 전문가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어요. 이를 토대로 2026년에는 *KOICA CTS(한국국제협력단 혁신적 기술 프로그램)에 도전할 계획이죠. 또한 파라다이스복지재단과 공동으로 장애인보조기구지원사업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장애인 인재풀을 보유한 스코플은 보조기구가 필요한 장애인들에게 재단의 보조기구를 마케팅 및 홍보하는 한편 취업에 필요한 의사소통 학습능력을 향상시켜 장애인 취업 연계까지 구상 중이에요.

베트남 호찌민에서 BSSC(호찌민 스타트업 창업 관련 기관) 임원진을 만나 베트남 장애인 일자리 플랫폼 확장 방향과 사업에 대해 논의했다.

베트남 호찌민에서 BSSC(호찌민 스타트업 창업 관련 기관) 임원진을 만나 베트남 장애인 일자리 플랫폼 확장 방향과 사업에 대해 논의했다.

“제일 보람을 느낀 순간은 잡빌리티를 통해 취업에 성공하신 분이 고맙다는 연락을 해왔을 때였어요. ‘우리 서비스가 한 사람의 인생에 도움이 됐구나’ 생각이 들었을 때 그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비전이 있다면 우리 플랫폼을 통해서 장애인들이 자립했으면 좋겠다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 저희도 질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현우씨는 창업에 관심 있는 청소년들에게 조언도 잊지 않았죠. “한때는 언론에 등장하는 창업가들을 볼 때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제가 막상 해보니 지금은 그저 도전한다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지금은 정보가 엄청 많고 접근하는 방법도 쉽지만 그만큼 선택하는 일은 어렵죠. 요즘 청년들이 이걸 선택하면 저걸 못하게 된다는 기회비용을 따지면서 결정을 잘 못 하는 경향이 있는데 일단은 해봐야 합니다. 젊으니까 해보고 안 되면 다른 방향으로 가도 되니까요.”

*ROTC: 1961년에 창설된 대한민국 국군의 학군사관(ROTC) 양성 과정. 4년제 대학교 학생 중 우수자를 선발, 2학년 겨울방학에 기초훈련부터 시작해서 3~4학년 2년간 학기 중 군사학 수학 및 동·하계 방학 중 입영훈련을 거쳐 졸업 후 장교로 임관하는 제도이다.
*CJ도너스캠프 대학생봉사단: CJ나눔재단이 운영하는 청소년 문화 창작 활동 지원 프로그램 ‘CJ도너스캠프 문화동아리’에서 창작 멘토링을 제공하며 활동 전반 운영을 맡는 각 분야 대학생멘토단을 일컫는다.
*리빙랩 수업: 연세대학교 리빙랩 연구센터가 주도하는 ‘살아있는 연구실’이라는 의미의 수업이다. 리빙랩 연구센터는 리빙랩 방식으로 사회 혁신에 성공하거나 실패한 국내외 사례들을 수집하고 체계적으로 분석해 리빙랩 성공을 위한 정치적·경제적·사회적·기술적 조건을 탐구하는 곳으로 2020년 4월 1일 연세대 미래캠퍼스 산학협력단 산하 조직으로 설립됐다.  
*청년창업사관학교: 중소벤처기업부의 창업성공패키지 사업 중 하나로, 유망 창업아이템 및 혁신기술을 보유한 우수 창업자를 발굴하여 성공적인 사업화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신청 대상은 만 39세 이하인 자로서, 창업 후 3년 이내 기업 대표자로 제한한다.  
*폴리프로필렌(PP): 환경호르몬을 배출하지 않아 플라스틱 중에서 가장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소재다. 이런 장점 때문에 음식물 포장용기부터 의료기기까지 우리 몸에 직접 닿는 제품에 많이 사용된다.  
*장애인 게임접근성 테스터: 다양한 신체적 조건을 가진 유저의 접근성 장벽을 발견하고 벽을 허물어 개발부서와 협업해 게임 접근성 향상을 도모하는 직무를 말한다. 게임회사 스마일게이트가 2022년 D&I(다양성과 포용성)실을 신설해 조직 내 D&I 가치를 증진하는 활동의 일환으로 장애인 게임 접근성 테스터를 고용한 바 있다.
*KOICA CTS: 코이카의 CTS(혁신적 기술 프로그램)는 개발도상국의 사회·경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혁신기술과 사업모델을 보유한 초기 창업팀을 발굴해 글로벌 비즈니스 역량을 강화하고 현지 사업화를 지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