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일 위의 평화, 총구 넘어 관광…비무장지대에 남은 평화 그림자 회복해야" [월간중앙]

최종건 전 외교부 차관 인터뷰
 
“文 정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계승해 철도와 관광, 대화의 선로 잇길”
“비핵화 출발은 외교 셈법 전환…반미 진영 셈법 이해해야 길 보여”

최종건 전 외교부 제1차관(현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은 “남북 협력 프로젝트는 단순히 ‘민족 공동체 회복’ 차원에서 추진되면 안 된다”며 그 이유로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고 짚었다. 월간중앙과 인터뷰하는 최 전 차관. 김정훈 기자

최종건 전 외교부 제1차관(현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은 “남북 협력 프로젝트는 단순히 ‘민족 공동체 회복’ 차원에서 추진되면 안 된다”며 그 이유로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고 짚었다. 월간중앙과 인터뷰하는 최 전 차관. 김정훈 기자

남북 관계는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다. 협력할 공간이 넓음에도 북핵과 적대시 정책에 번번이 발목이 잡히는 형국이다. 여기다 2023년 김정은의 ‘적대적 두 국가론’까지 포개져 있다. 그런데도 남북의 평화적인 공존은 절실하다. 떼려야 뗄 수 없는 이웃이란 점에서 더욱 그렇다.

전문가는 실무와 이론에 모두 밝은 사람을 일컫는다. 그런 점에서 최종건(51)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권위를 확보한 전문가다. 최 교수는 미국 오하이오주립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북한대학원대학교 조교수를 역임하였으며, 2009년부터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현재는 정치외교학과 학과장을 맡고 있다. 2017년 문재인 정부 국가안보실에선 평화군비통제비서관과 평화기획비서관을 역임했고, 이후 외교부에서 제1차관을 지냈다. 실무 과정을 거친 그는 진보·보수 진영을 통틀어 대북·외교 업무를 모두 경험한 몇 안 되는 국제정치학자로 꼽힌다.

6월 4일 연세대 연희관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최 교수는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걸맞은 한국판 대북·외교 청사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북 정책은 물론, 외교 정책도 세계정세 속에서 바라봐야 길을 잃지 않는다는 그의 시선은 넓었다.

〈조선중앙통신〉의 5월 9일 보도가 눈에 띈다. 김정은과 김여정 모두 러시아대사관을 방문했음에도 김여정 소식은 누락됐다.
“나도 김정은 위원장의 러시아대사관 방문을 유의 깊게 지켜봤다. 김정은의 딸 주애와 최선희는 보도한 것으로 기억한다. 오늘날 북·러 밀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특히 유의 깊게 본 기사는 5월 말 ‘두만강역 재건축’ 보도다.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한다.” (북한은 지난 5월 28일 러시아와 국경지역에 있는 두만강역을 재건축했다.)
 


무엇을 시사하나?
“오늘날 반미 진영의 결속 형태와 방법이 담겼다. 반미 진영은 오늘날 철도를 통해 빠르게 결속하고 있다. 두만강역 재건축은 전 세계 반미 진영의 결속 압축판이다.”
 

철도가 갖는 의미가 궁금하다.
“우리는 철도를 여객의 기능으로만 생각한다. 사실상의 섬나라인 우리 입장에선 당연하다. 그러나 철도는 대륙권에서는 물류의 의미가 더 크다. 전 세계 5만2000㎞의 고속철길 중 4만8000㎞가 중국에 있다. 오늘날 북·중 교역 중 해상 비율은 20~30%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철도를 통해 이뤄진다. 이처럼 중·러 등 대륙권 국가에게 철도는 ‘국가 핵심 전략’이다. 또, 철도는 제재와도 관련이 있다.”
 

“남북을 넘는 선로의 힘…서울역에서 시베리아역까지”

제재와 어떤 관련이 있는가?
“운송수단으로서의 철도는 유엔안보리 제재를 받지 않는다. 중국과 러시아, 이란이 철도를 통해 결속에 박차를 가하는 이유다. 중국과 이란은 이미 중앙아시아 철도망을 통해 연결되어 있으며, 최근 이 철로를 통한 물류 협력이 확대되면서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 중앙아시아 국가들도 자연스럽게 연결망에 포함되고 있다.”
 

이란·러시아 철도 연결 프로젝트에서 눈에 띄는 점은 일부 구간이 ‘러시아 표준궤’로 건설 중이란 점이다.
“철도 궤가 달라도 기술적으로 극복할 수 있다. 유럽의 경우에도 표준궤와 광궤가 혼재된 구간들이 존재하지만, 환적 설비나 대차 교환, 가변 궤간 열차 등의 방식으로 궤간 차이를 극복하며 물류와 여객 운송을 이어가고 있다.”
 

군비통제비서관으로 재직하던 지난 2018년 남북공동철도 연결을 추진했다.
“당시 북한, 구체적으론 개성에 위치한 판문역을 서울역에서 출발한 기차를 타고 가본 적이 있다. 당시 정부는 남북철도 연결 추진을 진지하게 검토했는데, 그 과정에서 북한 철도만의 특징을 알게 됐다.”
 

무엇인가?
“북한 철도는 평의선(평양-신의주 225㎞)과 평부선(평양-개성 187㎞)을 중심으로 ‘Y자 형태’로 뻗어 있다. 평양 북쪽 구간은 노선 설계 속도 100㎞/h 대비 실제 평균 40~60㎞/h에 머무르고, 남쪽 구간은 전력·시설 노후로 일부 구간에서 20㎞/h 수준까지 저하되기도 한다.”
 

시설이 열악해서 그러한가?
“그렇다. 개성에서 판문역까지 내려오는 철길의 경우 몇몇 교각들은 6·25전쟁 당시 놓인 교각들이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가 남북 철도연결사업을 추진한 이유는 서울역에서 러시아 시베리아 철도망까지 연결하기 위함이다. 이는 우리 국익을 위해 꼭 필요한 프로젝트다.”
 

왜 그러한가?
“우리는 본질적으로 무역국가다. 다양한 무역 루트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반도를 관통하는 철도망이 연결되면, 대륙과 직접 연결되는 공급망을 활용할 수 있게 된다. 북측 구간은 대부분 기존 철도망을 활용하여 개보수하고, 일정 수준의 관리·운영비만 북측에 지급하면 경제적 효율성도 높다.”
 

북한을 이롭게 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우리는 자선 사업가가 아니다. 사실상의 섬나라인 한국이 대륙과 연결된다는 전제 하에 북측과 철도 사업을 논의하는 것이다. 사실 이는 대북 정책을 수립하는 데 있어 중요한 점이다.”
 

무엇인가?
“남북 협력 프로젝트는 단순히 ‘민족 공동체 회복’ 차원에서 추진되면 안 된다. 오래 지속하지 못한다. 서로가 윈-윈(win-win)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발굴해야 한다. 또, 남북문제는 5년 단임 정권이 모두 해결하기에는 시간적 제약이 크다. 10~20년 이어달리기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도 과거 정부들의 정책을 이어달리기했다.”
 

어떤 정책을 이어달리기했나?
“남북철도 연결 추진이 대표적이다. 박근혜 정부 철도 청사진을 토대로 연구·발전시킨 결과 우리는 2018년 12월 남북공동철도 연결 기공식을 성공리에 마칠 수 있었다. 이처럼 우리의 외교·대북 청사진은 신중히 기획돼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9월 19일 오전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 입장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9월 19일 오전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 입장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김정은의 세계지도는 거꾸로 놓였다”

외교·대북 청사진은 어떻게 수립해야 하는가?
“국제사회를 다각도로 이해한 이후 수립해야 한다. 앞서 언급한 카자흐스탄 등 CIS국가들과 이란·중국·러시아의 철도 연결 사업이 대표적이다. 그다음에 우리의 국익을 중심으로 가능한 선택지를 세워야 한다. 시시각각 급변하는 국제무대에 걸맞은 전략 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북한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철도가 대표적이다.”
 

어떤 뜻인가?
“문재인 정부 시절 북한 철도성의 지위는 약했다. 하지만, 러-우 전쟁, 윤석열 정부 3년을 거치며 반미 진영의 결속이 강화됐다. 자연스레 ‘철도’가 반미 진영 핵심 키워드로 떠올랐다. 그만큼 북한 철도성의 역할도 커졌다. 이제는 국가 발전의 핵심 부처가 됐다.”
 

철도상 국명호가 궁금하다.
“국명호는 엔지니어 출신으로 상(장관)까지 올라선 인물로 보인다. 인사가 중요한 정책 지표인 만큼, 국명호를 통해 김정은의 의중을 읽을 수 있다.”
 

김정은의 의중은 무엇인가?
“철도 사업에 속도를 낸다는 의미는 지방 경제 개발에 박차를 가한다는 뜻이다. 지방 인프라 확충을 위해선 물류가 필요하다.”
 

북한이 국명호에게 중책을 맡겼다는 것은 ‘보통(정상)국가’를 표방하기 시작한 것일까? 당이 내각에 권력을 일부 위탁하는 ‘보통국가’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조선중앙통신〉이 5월 9일 김정은의 러시아대사관 방문 당시 김여정 보도를 누락했을 수는 있으나, 여전히 최선희는 집중 조명했다. 최선희 또한 지난해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으로 올라서며 당내 실세 반열에 올랐다. 당의 지위는 굳건하다.”
 

철도를 중심으로 남북 협력을 재개할 수 있을까?
“철도를 중심으로 남북 간 접점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북한의 수용 의지가 결정적 변수이며, 최근 김정은 위원장의 대외 인식과 전략적 태도에 변화가 감지된다는 점은 우려스럽다.”
 

어떻게 변했는가?
“두만강역 재건축으로 돌아가 보자. 두만강역 재건축은 김정은이 세계지도를 거꾸로 보기 시작했음을 암시한다.”
 

거꾸로 바라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과거에는 해양(한국), 남쪽을 중심으로 세계를 봤다면, 이제는 대륙(러시아)을 중심으로 보기 시작했다. 북·러 밀착을 단순 러-우 전쟁에 따른 일시적 현상으로 보기 어려운 이유다. 러-우 전쟁 종전 이후에도 북·러 밀착은 지속될 것이다. 또, 김정은은 철길로 러시아에 무기를 보내며 철도의 위력을 체감했다.”
 

철도가 무서운 이유는 제재를 무력화시킨다는 점이다. 
“결국 그런 점에서 우리도 러시아와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크렘린궁과 연결되어 있는 러시아 직접투자기금을 통한 한·러 협력 방안은 없을까?
“차관 시절 러시아 극동개발담당 장관하고 회담할 당시, 러시아 직접투자기금에 관해 깊이 논의한 적이 있다. 당시 인상 깊었던 점은, 대화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철도’였다는 것이다. 이처럼 같은 사안(철도)도 국가마다 다르게 바라본다.”
 

특히 남북이 바라보는 ‘인권’ 문제가 대표적이다.
“그래서 ‘한 목적(one purpose) 외교’가 중요하다. 나도 북한 인권 문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남북 대화 시작 단계부터 인권 문제를 언급하면, 북한은 비핵화 협상에 임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풀 수 없게 되는 셈이다. 오늘날 트럼프도 ‘한 목적 외교’ 방식으로 이란과 핵 협상을 하지 않는가?”
 

“北인권 이전에 한반도 비핵화”

트럼프는 바이든과 달리 이란 인권 문제를 언급하지 않는다.
“트럼프의 목적은 이란이 핵을 갖는 것을 막는 거다. 지난 2015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한 목적 외교’를 통해 JCPOA(이란핵합의)를 도출해 냈다. 당시 오바마도 이란 측에 우라늄 농축 한도만 이야기했다.”
 

최근 눈에 띄는 점은 트럼프의 이란 접근법이다. IAEA가 이란 내 우라늄 농축 미신고 지역을 발표했음에도 미국은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나도 놀랐다. 지난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당시 ‘스몰딜’이라고 이야기했던 접근법에 가깝기 때문이다.”(IAEA는 지난 5월 31일 자 이란 내 바 라민, 마리반, 투르쿠자바드, 라비산시안에서 미신고 우라늄 입자가 발견됐다는 내용이 담긴 보고서를 발표했다.)
 

트럼프가 변한 것인가?
“변한 것은 아니다. 다만, 보다 뚜렷한 목표가 생긴 것이다. 이란과 대화를 유지하는 것이 단절된 것보다 낫다는 계산이다. 이란의 ‘정치적 수용성’을 고려한 것이다.”
 

정치적 수용성이란 무엇인가?
“이란은 북한처럼 독특한 체제의 국가다. 최고지도자를 필두로 한 이란혁명수비대(IRGC)와 대통령이 이끄는 내각이 각각 국가를 이끈다. 물론, 혁명수비대의 권한이 내각보다 크다. 내각은 선거를 통해 선출되기에 개혁파·강경파가 번갈아 당선된다. 반면 혁명수비대는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 이후 줄곧 강경원리주의 입장을 고수해왔다. 내각(외무부)과 협상하는 트럼프 입장에선, 혁명수비대가 수용할 수 있는 선을 고려해서 협상을 이끌어나가는 것이다.”
 

마침 이란에는 개혁파 페제시키안 대통령이 들어섰다.
“그렇다. 만약 미국이 IAEA가 발표한 미신고 네 곳에 대한 전면적인 감찰을 요구하면, 개혁파 행정부는 이란 내에서 입지를 잃게 된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미국이 북한에도 비슷한 협상 방식을 취할 수 있을까?
“물론 이란과 북한은 다르다. 이란은 현재 우라늄 농축을 60%에서 70%로 가는 과정에 있다. 반면, 북한은 이미 핵탄두를 완성했다. 미국 입장에선 북한보다 이란 문제 해결이 쉽다.”
 

최종건 전 차관은 오늘날 미국-이란 핵협상이 지난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당시 ‘스몰딜’이라고 이야기했던 접근법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이란 핵협상 이란대표단이 지난 5월 23일(현지시간) 주이탈리아 오만대사관을 떠나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최종건 전 차관은 오늘날 미국-이란 핵협상이 지난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당시 ‘스몰딜’이라고 이야기했던 접근법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이란 핵협상 이란대표단이 지난 5월 23일(현지시간) 주이탈리아 오만대사관을 떠나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이스라엘의 이란 폭격을 예측한 것으로 알고 있다.
“지난 13일 폭격은 이란·이스라엘·미국 삼각 구도를 이해하면 예측할 수 있는 일이었다. 중요한 점은 남·북·미와 이란·이스라엘·미국은 다르다는 것이다.”
 

어떻게 다른가?
“이스라엘은 이란의 굴복을 요구하나, 우리는 북한의 굴복을 요구하거나 바라지 않는다. 미국 또한 마찬가지로 북한에 굴복을 요구하지 않는다. 또, 이스라엘은 이란을 선제 타격할 수 있는 지리적·군사적 능력이 있으나, 우리는 그렇지 않다.”
 

미국-이란 핵협상으로 미리 보는 3차 북·미 정상회담

아바스 아락치 이란 외무부 장관은 최근 이란·미국 양측이 세컨더리 제재(이란과 거래하는 제3국에 대한 제재)와 프라이머리 제재(이란에 대한 직접적인 제재)를 동시에 협상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아락치 장관은 지난 5월 “이란 내 미국의 투자에 반대하지 않는다”라고 언급하며 프라이머리 제재도 논의 중이라는 뉘앙스를 남겼다.)
“미국·이란이 프라이머리 제재와 세컨더리 제재 해제를 동시에 논의 중인지 여부는 더 지켜봐야 한다. 미국이 프라이머리 제재까지 해제한다면, 이는 미국이 이란과 외교 관계를 전면 정상화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실제로 미국이 프라이머리와 세컨더리 제재를 동시에 해제한 사례가 있는가?
“파키스탄은 미국의 대북·대이란 제재 사례와 유사하다. 1998년 핵실험 이후 미국은 파키스탄에 대해 광범위한 제재를 가했지만, 9·11 테러 이후 대테러 동맹국으로서의 전략적 가치가 급부상하면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대부분의 제재를 해제했다. 당시 적용된 것은 주로 프라이머리 제재였으며, 세컨더리 제재와 유사한 외교적 압박도 일부 존재했다. 이 사례는 제재 해제가 단지 비핵화와 같은 ‘행동’만이 아니라, 정치적 결정에 따라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차관 시절 이란을 세 차례 방문했다.
“지난 2021년 한국 케미호 나포 사건을 해결하고자 방문한 게 첫 방문이었다. 당시 카운터파트가 현 외무부 장관인 아락치였다.”
 

이란혁명수비대의 선박 나포 역사상 최단기간 내에 선원들을 구출해냈다.
“국가안보실에서 북한을 상대한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
 

북한과 이란이 비슷한 점이 많다는 뜻인가?
“그렇다. 테헤란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느꼈다. 제재 대상국들이 공유하는 정서적 공통점을 알게 됐다. 일종의 ‘억울함’ 말이다. 물론, 그들이 억울해하는 지점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 북한을 상대하며 반미· 제재대상 국가의 셈법을 익힌 게 큰 도움이 됐다.”
 

산디노 인민해방전선의 역사를 지닌 니카라과가 대표적이다.
“제재를 받고 있는 국가들과 협의할 때는 ‘인권(human rights)’보다는 ‘인도주의(humanitarian issues)’라는 표현이 외교적으로 효과적이다. ‘인권’은 정치 개입의 의도가 있는 반면, ‘인도주의’는 생존권, 보건, 식량, 재난 대응 등 상대국이 필요한 분 야의 협력 의도로 보인다. 물론 제재대상 국가들 간에도 온도차는 존재한다. 북한은 ‘인도주의’라는 표현을 외부 개입의 의도가 담겨 있다고 의심하기도 한다.”
 

반미 진영의 또 다른 특징은 ‘인권’과 ‘국권’을 결부시킨다는 점이다. 2020년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라는 비상식적 행위가 대표적이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에 대해선 북한이 의사 표명을 해야 한다. 당시 정책 결정자 중 한 사람으로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는 여전히 괘씸하다. 말 그대로 ‘반문명적 행위’를 한 것이다.”
 

2019년 하노이에서 미국에 ‘국권을 침해당했다’고 믿는 김정은이 ‘인민의 권리 수호’를 위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면, 트럼프 2기에도 북·미가 대화에 나설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김정은이 그렇게 생각하더라도, 트럼프가 김정은한테 사과하는 건 있을 수 없다. 다만 ‘지난 1기에 못 했던 이야기를 진심 어리게 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를 김정은이 ‘유감’으로 인식하도록 만들면 된다. 또, 김정은이 새겨들어야 할 부분이 있다.”
 

무엇인가?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다. 국민의 지지와 이해가 담보되지 않은 대북 정책은 지속 가능성이 없다. 그런 점에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는 북한에도 큰 걸림돌이 됐다. 정치적 제스처가 필요한 이유다. 또, 북한은 우리의 9·19 군사합의 복원 노력에 적극적으로 호응해야 한다.”
 

최종건 전 외교부 제1차관(현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정훈 기자

최종건 전 외교부 제1차관(현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정훈 기자

“갈마에서 삼지연까지, 평화를 잇다”

반미 진영의 셈법을 알아야 한반도 비핵화를 이룰 수 있을 것 같다.
“동의한다. 국제 제재를 지키면서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낼 수 있는 방법은 많다. 다만, 대북 정책은 매우 정교하게 기획돼야 한다. 반미 진영의 셈법을 정확히 이해해야 하는 이유다. 독재국가 특성상 북한은 모든 보고를 김정은한테 올린다. 대북 정책은 그런 점에서 세세한 부분, 심지어 기후 변화까지 면밀히 고려해야 한다”
 

기후 변화는 왜 고려해야 하는가?
“북한은 과거 양묘장(養苗場)에 관심이 많았다. 그 이유를 물으니, ‘한국 묘목을 (북한에) 심으면 기후가 달라서 죽는다’고 하더라. 양묘장에서 북한 씨앗으로 자체 인큐베이팅하고 싶다는 거였다. 또, 우리는 현재 제주도뿐 아니라 속초에서도 방어회를 쉽게 접한다. 기후변화에 따라 수산 업계가 변하기 시작했다. 북한이 2019년 하노이에서 제재 해제를 요구한 5개 유엔 결의안에 수산 관련 제재가 담긴 이유다. 북한은 넘쳐나는 수산물을 판매하고 싶어한다.”
 

북한은 원산갈마해안지구와 금강산 연결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현실적으로 원산갈마해안지구와 금강산 관광의 활성화가 이뤄질 수 있을까?
“방법은 많다. 원산에는 비행장이 있으며, 평양에서 육로로 가는 방법도 있다. 철도상 국명호의 역할이 보다 중요해진 이유다.”
 

마지막으로 이재명 정부에 조언한다면?
“문재인 정부 평화프로세스에 함께했다는 이유만으로, 윤석열 정부에서 탄압받은 관료들이 있다. 이재명 정부가 각 부처에 있는 소위 ‘북한분야 선수’들을 잘 활용했으면 좋겠다.”
 

김태욱 월간중앙 기자 kim.taewoo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