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5년 설립 이후 단 한 해도 시계 제작을 멈춘 적 없는 스위스 시계 제조사 바쉐론 콘스탄틴이 지난 5월, 한국에 플래그십 매장 ‘메종 1755 서울(Maison 1755 Seoul)’을 열었다.

메종 1755 서울 전경. 사진 바쉐론 콘스탄틴
총면적 약 629㎡, 지상 6층 규모의 이 건물은 브랜드의 설립 연도, 프랑스어로 집을 뜻하는 ‘메종’, 그리고 건물이 들어선 도시 이름 ‘서울’을 조합해 이름이 지어졌다. 브랜드는 이곳을 거점 삼아 하이 워치메이킹 세계뿐 아니라 예술과 문화가 어우러지는 다채로운 경험을 고객에게 선사할 계획이다. 특히 설립 270주년을 맞는 해에 마련된 만큼, 단순한 공간 확장을 넘어 브랜드 정신과 유산을 알리는 이정표가 될 전망이다.
혁신과 전통을 버무린 집으로의 초대
오픈 기념행사에 맞춰 방한한 최고경영자(CEO) 로랑 퍼브스(Laurent Perves)는 단 하루의 짧은 일정 속에서도 본지와의 단독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2016년 바쉐론 콘스탄틴에 합류한 이후 마케팅과 커머셜 부문을 이끌며 브랜드의 위상을 한층 강화해온 인물이다. 럭셔리 산업에서 커리어를 쌓은 퍼브스는 디지털 전략과 글로벌 럭셔리 마케팅에 정통하며, 프랑스 ESSCA와 파리 도핀 대학에서 경영·마케팅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메종 1755 서울은 바쉐론 콘스탄틴이 한국 시장에 얼마나 큰 애정을 가졌는지를 보여주는 완벽한 상징”이라고 강조했다.

바쉐론 콘스탄틴의 최고경영자(CEO) 로랑 퍼브스. 사진 바쉐론 콘스탄틴
Q. 최고경영자로 취임한 후 처음 한국을 찾았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한국, 특히 서울은 내게 매우 익숙한 도시다. 2018년 피프티식스 컬렉션 출시 행사를 비롯해 지난 여름에도 매장 오픈을 앞두고 사전 점검차 방문하기도 했다. 서울은 늘 빠르게 진화하고 있어 올 때마다 새로운 영감을 얻는다. 바쉐론 콘스탄틴도 최근 몇 년간 많은 변화를 겪었고, 한국 시장에서의 성장세는 특히 인상적이다. 이번 플래그십 매장 오픈은 자연스러운 진화였다.”

1층 입구 공간. 현재 한국 작가 지니 서의 작품 'Constellation of Lights'를 설치했다. 사진 바쉐론 콘스탄틴
Q. 메종 1755 서울이 지닌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는 고객과의 관계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 이 공간은 바쉐론 콘스탄틴의 철학, 장인정신, 기술, 그리고 예술적 가치를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장소다. 제네바 매뉴팩처를 축소한 듯한 구성으로, 고객들이 제네바를 방문했을 때와 비슷한 경험을 이곳에서도 누릴 수 있게 했다.”
Q. 최근 플래그십 매장들은 각 도시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흐름이 있다.
“바쉐론 콘스탄틴은 설립자 중 한 명인 프랑소아 콘스탄틴이 그랬던 것처럼 세계 각지의 문화에서 영감을 받아왔다. 제품에도 이를 보여주는 공간에도 그 영감을 반영한다. 이번 메종 1755 서울 역시 한국과 스위스의 기술과 미학을 조화롭게 융합하는 데 집중했다. 파사드의 섬세한 건축부터 내부를 장식한 한국 작가들의 공예 작품까지, 한국의 미감을 존중하며 동시에 바쉐론 콘스탄틴의 유산을 표현하고자 했다. 특히 한국 작가들과의 협업은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이다.”

한국 공예 작가의 작품으로 꾸민 3층 라운지 공간. 사진 바쉐론 콘스탄틴
Q. 매장 이름에 ‘메종’이라는 단어를 넣은 이유는.
“이곳은 단순한 시계 판매 공간이 아니다. 고객이 편히 머물고, 식사하거나 예술을 감상할 수 있는, 말 그대로 집 같은 곳이다. ‘1755’는 브랜드의 뿌리를 나타내며, 우리는 각 도시의 특성을 반영해 매장 이름을 다르게 짓고 있다. 예컨대 두바이의 ‘스위트 1755’, 런던의 ‘클럽 1755’처럼 말이다.”

리본 커팅 행사에 참석한 다그마 슈미트 타르탈리 주한 스위스 대사, 로랑 퍼브스 CEO, 이상정 한국 지사장. 사진 바쉐론 콘스탄틴
그의 말처럼, 메종 1755 서울은 단순한 플래그십 매장을 넘어 브랜드의 철학을 다층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파사드 사이로 들어오는 자연 채광은 공간에 따뜻한 분위기를 더하며, 말테 크로스 앰블럼은 시계 다이얼에 사용하는 마케트리(쪽매맞춤) 기법 등을 통해 다양한 형태로 공간 곳곳에서 구현된다.
건물 전체가 브랜드의 세계관을 품은 만큼, 시계 컬렉션은 물론 브랜드의 장인정신과 기술력을 엿볼 수 있는 공간도 풍성하다. 현재 선보이는 제품을 전시한 쇼케이스 외에도, 270년 역사를 아우르는 디지털 아카이브 ‘크로노그램’ 코너가 눈길을 끈다. 편지·스케치·사진 등 종이로 남은 역사적 문서를 대형 스크린에서 볼 수 있는 인터랙티브 프로그램이다.

디지털 인터랙티브 아카이브 크로노그램과 시계 전시 공간. 사진 바쉐론 콘스탄틴
‘워치메이킹 바’에서는 제네바에서 파견된 워치메이커가 상주하며 시계 점검과 폴리싱 등 맞춤형 서비스를 직접 제공한다. 라운지, 전시 공간, 루프탑 등 고객의 편의를 위해 마련한 공간에서는 향후 다양한 브랜드 이벤트가 진행될 예정이다. 브랜드가 직접 감정∙점검∙수리를 거쳐 되살려낸 빈티지 타임피스를 선보이는 ‘레 컬렉셔너’ 컬렉션과 장인과의 긴밀한 협업을 통해 단 하나뿐인 시계를 제작하는 ‘캐비노티에’ 맞춤 제작 서비스를 경험할 수 있다는 점 역시 메종 1755 서울의 특별한 매력이다.

전속 워치메이커가 간단한 시계 폴리싱, 점검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워치메이킹 바. 사진 바쉐론 콘스탄틴
한국적 요소 가미한 공간
오픈을 기념해 바쉐론 콘스탄틴은 한국의 여러 작가와 협업해 브랜드 철학을 재해석한 예술 작품을 곳곳에 설치했다. 대표적으로 설치미술가 지니 서(Jinnie Seo)의 ‘Constellation of Lights’ ‘Blue Cloud’가 있다. 구리·유리 등 한국적이면서도 현대적인 소재로 만든 작품들은 ‘빛과 소통’, 그리고 ‘변화와 창의적 교류의 힘’을 주제로 한다.

한국 작가 지니 서의 작품 'Constellation of Lights'. 사진 바쉐론 콘스탄틴
국가 무형유산 제80호 자수장 김영이와 그의 제자가 손바느질로 완성한 ‘시간의 입방체 : Threads of Legacy’, 설치 미술 작가 리경이 통영 자개로 완성한 작품은 시간의 영속성과 흐름을 예술적으로 담아냈다. 이외에도 한지 공예가 오샛별, 금속 공예가 김현성, 은 공예가 고혜정, 가죽 공예가 김준수, 도예가 이종민 등 전통 소재와 기법을 사용하는 한국 대표 장인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바쉐론 콘스탄틴과 오랜 인연을 맺고 있는 작가 양태오 역시 루프탑 가든을 한국적인 감성으로 채워놨다.

김영이 자수장이 완성한 ‘시간의 입방체 : Threads of Legacy’. 사진 바쉐론 콘스탄틴
Q. 바쉐론 콘스탄틴은 설립 이후 시계 제작을 단 한 해도 멈추지 않은 브랜드로 알려져 있다. 이 긴 여정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은 무엇인가.
“우리는 브랜드의 모토, ‘가능한 한 더욱 잘하라. 그것은 언제나 가능하다’를 마음에 두고 최선을 다한다. 혁신적인 자세로 시계 제작에 임해왔기에 회중시계부터 손목시계, 여성용 시계, 그리고 기술력의 정점을 보여주는 하이 컴플리케이션과 예술성을 대변하는 메티에 다르 시계까지 다양하게 발전해왔다. 270주년을 기념해 41개의 컴플리케이션 기능을 탑재한 ‘캐비노티에 솔라리아 울트라 그랜드 컴플리케이션’도 오랜 노력의 결실이다. 혁신은 우리를 미래로 이끄는 동력이다.”

270주년을 기념해 41개 기능을 탑재한 손목시계 '캐비노티에 솔라리아 울트라 그랜드 컴플리케이션'을 선보였다. 사진 바쉐론 콘스탄틴
Q. 한국의 젊은 세대는 고급 시계에 큰 관심을 보인다. 그들과는 어떻게 소통하나.
“270년 동안 바쉐론 콘스탄틴은 늘 다양한 세대와 함께해왔다.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인 장인정신·유산·아름다움·정밀함 등은 세대를 초월해 보편적이다. 다만, 이를 전달하는 방식은 변화해왔다. 지금은 소셜미디어와 디지털 플랫폼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시간을 내 다양한 연령대의 고객들과 만났는데, 나이와 상관없이 시계에 대한 열정을 함께 나눌 수 있었다.”
Q. 한국 시장은 얼마나 중요한가.
“한국 고객들은 미적 감각이 탁월하고 문화와 예술에 깊이 있는 이해를 갖고 있다. 바쉐론 콘스탄틴이 추구하는 가치를 공감해주는 이상적인 고객들이다. 메종 1755 서울을 세계 최대 규모로 설계한 건 이러한 한국 고객에 대한 신뢰 그리고 한국 시장에 대한 우리의 의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다.”

메종 1755 서울은 서울 청담동 명품거리에 터를 잡았다. 사진 바쉐론 콘스탄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