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만호·250만호 큰소리 대책 그만…꼼꼼하고 실현 가능한 공급계획 내놔야

들썩이는 집값, 대책은

수도권 3기 신도시인 남양주시 왕숙지구 전경. [연합뉴스]

수도권 3기 신도시인 남양주시 왕숙지구 전경. [연합뉴스]

인구 1000명당 주택 수 423.6가구, 자가 보유 비율 60.6%(2021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을 대상으로 비교하면 주택 수는 27위, 자가 비율은 33위다. OECD 회원국은 34개국이다. 한국의 이 같은 ‘만성적인’ 주택 부족 문제는 집값 상승의 근본 원인으로 꼽힌다. 최근 집값이 들썩이는 상황 역시 여러 요인이 작용한 결과지만, 그 이면에는 주택 부족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1000명당 자가 보유 61%, OECD 꼴찌서 2등
중앙SUNDAY가 학계·연구기관·산업계·전문위원을 대상으로 부동산 관련 긴급 설문조사를 한 결과도 비슷하다. 하반기 서울·수도권 집값이 상승할 것이라는 응답이 88%(30명)에 달했는데, 이들은 그 이유로 ‘주택 공급 부족’(43%·26명)을 첫손에 꼽았다. 복수 응답이 가능한 질문이었지만, 두 번째로 응답이 많았던 ‘금리 인하’(18%·11명)보다 두 배 많았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서울은 주택 수요보다 주거환경이 좋은 집이 절대적으로 부족한데 공급마저 충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이런 상황이 금리 인하 시기 등과 맞물리면서 집값이 들썩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래픽=남미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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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정부가 주택 공급에 손을 놓고 있었던 건 아니다. 집값이 급등하던 2022년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임기 내 250만 가구 공급을 추진했고, 문재인 정부는 임기 말 150만 가구를 공급하겠다며 수도권 3기 신도시를 지정했다. 숫자만 놓고 보면 ‘공급 과잉’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주택을 공급한 노태우 정부(200만 가구)와 맞먹는다. 다만 문재인·윤석열 정부의 주택 공급은 설익은 계획, 코로나19 등으로 공허한 외침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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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증권이 최근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2015~2021년까지 7년간 서울·수도권 아파트 착공은 연평균 21만5036가구였다. 그러나 2022년 13만9967가구, 2023년 10만2476가구, 지난해 15만1473가구로 눈에 띄게 줄었다. 2017년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주택은 충분하다”며 공급을 틀어막은 영향이다. 임기 말 뒤늦게 공급 확대에 나섰지만, 코로나19와 인플레이션, 고(高)환율·고금리·고유가가 덮치면서 실적이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픽=남미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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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4월까지 누적 착공 실적은 3만1126가구로, 이 추세대로라면 올해 서울·수도권 아파트 착공 물량 역시 12만 가구 정도에 그칠 전망이다. ‘믿었던’ 3기 신도시마저도 속도를 못 내고 있다. 지난해 말 현재 착공한 3기 신도시 아파트는 1만1000가구로 전체 17만4122가구의 6.3%에 그친다. 남양주 왕숙지구 A1·2블록과 B1·2블록은 내년 12월 입주가 목표였지만 2028년 3월로 1년 이상 미뤄졌다. 이경자 삼성증권 수석연구위원은 “빌라와 오피스텔이 대안이 못 되는 가운데 3기 신도시마저 공정률이 낮아 주택 공급은 2028년까지 계속 줄어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상황이 이렇자 이재명 정부도 공급 확대 방법을 찾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20일 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국정기획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이 대통령의 공약이었던 중산층·서민 대상 주택 공급 확대 공약 이행 방안을 보고했다. 구체적으로는 재개발·재건축 절차 완화와 인허가 기간을 단축하는 방안을 내놨다. 이와 함께 공공기관·기업 등이 보유한 유휴부지를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전문가는 그러나 공급 규모보다는 꼼꼼하고 실현 가능한 공급 계획을 내놔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최근 주택시장 불안과 관련해 “(수도권에서는) 구체적인 주택 공급안이 더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는 임기 말 설익은 주택 공급 대책을 쏟아내면서 혼란을 자초한 바 있다. 2020년 8·4 주택 공급 대책 때 내놓은 서울 태릉골프장 아파트 1만 가구 건설이 대표적이다.

단독·다세대 등 비아파트 공급도 확대를

그래픽=남미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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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업은 주민·지자체의 반대 목소리로 사업이 무산될 위기다. 당시 나왔던 서울 서부면허시험장·용산코레일부지 등지의 사업도 좌초됐거나 좌초 위기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부동산개발업체 대표는 “도심에서는 빈 땅이라고 해서 무조건 아파트를 지으면 주변 지역은 교통이나 상·하수도 부족 문제를 겪을 수밖에 없다”며 “이런 고민 없이 졸속으로 사업을 추진하니 주민이나 지자체의 반발이 생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본지 설문조사에서 현실적인 주택 공급 방법(복수응답)으로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41%·28명)와 ‘공공기여 등 건축 규제 완화’(18%·12명), ‘상업용지 등의 주택용지 변경’ (16%·7명)를 꼽았다. 박합수 건대 부동산대학원 겸임 교수는 “도심 주택 공급의 80%가 재개발·재건축인 만큼 사업 절차를 간소화하고 걸림돌이 되는 초과이익환수제도 폐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형일 나눔연구소 대표는 “공공기여 비율과 같은 일반 건축 규제 역시 완화해 사업의 채산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래픽=남미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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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공사비 안정화를 통해 멈춰 선 기존 사업이 제대로 진행되도록 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따르면 4월 건설공사비지수는 131.06으로 2020년(100 기준)보다 30% 이상 올랐다. 채산성이 떨어져 아파트 분양을 포기하는 사업자가 나오고, 재개발·재건축 사업장에서는 급증한 공사비 문제로 시공사와 조합이 대치를 반복하고 있다. 지난해 말 공사비 증액 문제로 갈등을 빚으며 공사가 중단된 서울 노량진6구역 재개발 사업은 서울시의 중재로 최근에야 문제를 해결했다.

정부는 지난해 말 인력 수급 방안 등을 담은 공사비 안정화 대책을 내놓은 바 있다. 다만, 세부 실행 계획은 비상계엄 사태 등의 정치적 불안이 이어지면서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다. 설상가상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부실 사태가 이어지면서 금융당국이 규제 강화 움직임을 보인다. 우병탁 신한은행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전문위원은 “PF 부실 문제가 한국 경제에 부담을 주고 있는 만큼 기준 강화 등은 필요해 보인다”며 “다만 이렇게 되면 주택 공급이 더 위축될 수 있으니 공급이 필요한 지역을 중심으로 세제 혜택 같은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고려할 만하다”고 말했다.

단독·다세대주택과 같은 비(非)아파트 공급 확대 방법도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는 “다세대·다가구주택을 중심으로 전세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사례가 이어지면서 비아파트 공급이 끊기다시피 했다”며 “주택 수요 분산을 위해 비아파트 공급 역시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한문도 명지대 대학원 실물투자분석학과 교수는 “신도시와 같은 택지개발사업에 집중된 주택 공급 방식을 직장·지역주택조합이나 원형지 개발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확대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고 말했다.

◆설문에 응해주신 분(가나다순)=고준석 교수(연세대 상남경영원) 권대중 교수(서강대) 김기원 대표(리치고) 김덕례 선임연구위원(주택산업연구원) 김용구 강사(한국공인중개사협회) 김인만 소장(부동산경제연구소) 김종율 대표(김종율아카데미) 김제경 소장(투미부동산컨설팅) 김진유 교수(경기대) 김학렬 소장(스마트튜브) 김형일 대표(나눔연구소) 박민수 대표(더스마트컴퍼니) 박원갑 전문위원(KB국민은행) 박지민 대표(월용청약연구소) 박합수 교수(건국대) 서진형 교수(광운대) 양지영 전문위원(신한투자증권) 우병탁 전문위원(신한은행) 윤수민 전문위원(NH농협은행) 윤주선 교수(홍익대) 윤지해 리서치랩장(부동산R114) 이은형 연구위원(대한건설정책연구원) 장원석 대표(엠알이지) 정민하 대표(지인플러스) 장희순 교수(강원대) 최순웅 대표(KSLD) 한문도 교수(명지대) 함영진 부동산리서치랩장(우리은행) 홍춘욱 대표(프리즘투자자문) 현대건설·삼성물산·GS건설·DL이앤씨·대우건설 각 주택사업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