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피해 '탈중국' 캄보디아행 美업체…여기서도 中과 일했다

월마트 등에 조명 제품을 납품하는 미국 기업 루시디티의 라이언 버스키 대표가 출장길에 중국을 들르지 않은 건 20년 만에 처음이었다. 중국 대신 버스키 대표가 방문한 곳은 캄보디아였다. 

그런데 버스키 대표가 찾은 캄보디아 협력업체는 알고 보면 중국인 소유였다. 루시디티에 원래부터 납품하던 중국업체 라이트선이 2년 전 캄보디아에 공장을 지으면서 협력을 이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상 캄보디아가 중국의 우회 생산국이 된 셈이다. 29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루시디티의 사례를 통해 미국 기업의 '탈중국' 이면을 보도했다. 

지난해만 해도 루시디티는 라이트선의 중국 공장에서 납품을 받았다. 하지만 버스키 대표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1기 때 중국산 제품에 고관세를 부과하는 걸 보고 '탈중국'을 결심했다고 한다. 그는 지난해 말 생산량의 25%를 중국에서 캄보디아로 옮겼다. 이달 초에는 중국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2025년 4월 9일 캄보디아 프놈펜의 하이탄 HB 공장에서 청바지를 생산하는 리바이스 공장 직원들이 공장을 떠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2025년 4월 9일 캄보디아 프놈펜의 하이탄 HB 공장에서 청바지를 생산하는 리바이스 공장 직원들이 공장을 떠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WSJ는 "트럼프 2기 '관세 전쟁'에 대비해 글로벌 공급망을 재구성하려는 미 기업의 움직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례"라고 짚었다. 

버스키 대표가 캄보디아행을 결심한 이유는 '관세 폭탄'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현재 중국산 램프에는 관세 60%가 붙는다. 캄보디아산은 처음엔 49%였지만 상호관세가 유예되면서 10%로 내려간 상태이고, 미국과의 무역 협상도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 버스키 대표는 "미국 정부는 캄보디아 관세는 제한하고, 중국에 대한 관세는 더 높은 수준으로 유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2018년 7월 5일, 캄보디아에 있는 대만기업 신발 공장 컴플리트 아너 풋웨어 공장 모습. 캄보디아 직원들이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2018년 7월 5일, 캄보디아에 있는 대만기업 신발 공장 컴플리트 아너 풋웨어 공장 모습. 캄보디아 직원들이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중국도 캄보디아행 "저렴한 인건비"

사실 캄보디아로 눈을 돌린 건 버스키 대표만이 아니었다. 2020년부터 루시디티에 제품을 공급해온 중국인 쑨푸룽 라이트선 대표 역시 탈중국을 꿈꾸고 있었다. 쑨 대표는 베트남·미얀마·방글라데시·태국 등을 이전지로 알아봤지만, 캄보디아가 가장 유망하다고 봤다. 젊은 저임금 노동력이 풍부했기 때문이다. 

현재 캄보디아 공장 직원은 시간당 평균 1달러와 함께 초과근무·휴일수당을 받는다. 같은 조건이면 중국에선 시간당 3달러를 줘야 한다. 또 중국에선 50대 직원이 많았지만, 캄보디아에선 직원 평균연령이 25세다.   

쑨은 2023년 6월 공장 건설을 시작해 지난해 첫 제품을 캄보디아에서 생산했다. 현재 그가 운영하는 캄보디아 공장 근처에는 다른 공장이 10곳 있는데 전부 중국인 소유라고 한다. 

WSJ는 "중국 제조업체들은 이처럼 중국 외 지역으로 생산시설을 확장하는 '중국+1' 전략을 펼치고 있다"고 짚었다. 수십 년에 걸쳐 제조 강국 노하우를 쌓아온 중국 업체들이 공급망 생태계를 캄보디아에서 재구축하는 모습이다. 캄보디아 이전 덕에, 쑨 대표는 중국 외 국가에서 생산할 공급업체를 찾는 다른 업체들과 새 계약도 따냈다. 

캄보디아 진출 덕에 고율 관세를 피하면서 루시디티의 올해 매출은 40% 증가할 전망이다. 다만 캄보디아에선 구할 수 없는 일부 원자재는 중국산이어서 넘어야 할 산이다. 업체 입장에선 현지화율을 더 끌어올리는 수밖엔 없다.  

트럼프 행정부 "중국의 뒷문 전략 예의주시" 

이와 관련,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 제조업체가 캄보디아 등 동남아로 이전하는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일부 관계자들은 캄보디아 등을 중국산 제품이 미국 시장에 진출하는 '뒷문'으로 본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캄보디아가 유치한 외국인 직접투자액의 3분의 2가 중국에서 왔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25년 4월 18일 캄보디아 프놈펜 국제공항에서 열린 송별식에서 훈센 캄보디아 상원의장(오른쪽)과 함께 왕궁 명예 경비대를 사열하고 있다. AP통신=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25년 4월 18일 캄보디아 프놈펜 국제공항에서 열린 송별식에서 훈센 캄보디아 상원의장(오른쪽)과 함께 왕궁 명예 경비대를 사열하고 있다. AP통신=연합뉴스

이런 우려를 의식한 캄보디아는 지난 5월 미국으로의 특정 수출품에 대한 원산지 규정 및 인증 절차에 대한 규제를 강화했다. 중국산 제품이 불법 환적되고 있다는 미국 측의 우려를 불식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됐다. 쿠시 데사이 백악관 부대변인은 성명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 정책을 훼손하는 환적 등 여러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다"고 했다.  

캄보디아 세관 당국도 중국 기업들이 중국산 완제품을 캄보디아로 들여왔다가 미국 고객에게 환적하는지를 들여다보고 있다. 관세를 피하기 위한 '꼼수'를 적발하겠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중국에서 왔다고 하면 통관이 지연되는 경우도 빈번하다. 루시디티의 경우, 이달 중순 중국에서 들여온 자재 컨테이너 6개가 캄보디아 세관을 통관하는데 1주일 넘게 걸렸다고 한다. WSJ는 "캄보디아 세관에서 빠른 일 처리를 이유로 뇌물을 요구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여러 어려움이 있지만 루시디티와 라이트선 모두 캄보디아 없이는 생산이 불가능하다고 WSJ는 짚었다. 캄보디아 인구(1700만명)의 67%가 35세 미만이며, 경제 활동 참여율도 높다. 장식용 조명은 시즌마다 새 디자인이 나오고 사람 손을 거쳐 만들어져야 해 쉽게 자동화될 수 없다고 한다. WSJ는 "조명산업이 미국으로 다시 이전되는 건 불가능하다"며 "미국에선 인건비가 훨씬 많이 들고 공급망도 덜 강력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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