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온 김주식 “북한엔 사람 모이는 어디나 바둑판 있다”

북한 국내 바둑대회 시상식에 참석한 조새별(앞줄 오른쪽 둘째)·리봉일(뒷줄 오른쪽 둘째)·조대원(뒷줄 왼쪽 셋째) 등 북한의 유명 기사들. [사진 한국기원]

북한 국내 바둑대회 시상식에 참석한 조새별(앞줄 오른쪽 둘째)·리봉일(뒷줄 오른쪽 둘째)·조대원(뒷줄 왼쪽 셋째) 등 북한의 유명 기사들. [사진 한국기원]

“바둑이 우리 민족 체육 아닙니까. 인기가 대단합니다.”

평창 겨울올림픽에 참석하기 위해 강원도를 찾은 한호철 조선올림픽위원회 사무국장은 북한의 바둑 동향을 이렇게 이야기했다.

7일 만난 한 사무국장은 “특히 어린아이 중에 바둑을 열심히 배우는 애들이 많다. 바둑으로 어른들이 당해낼 수 없는 어린아이들도 많다”고 말했다. 북한 선수단 관계자는 “아이들 교육과 두뇌 계발에 좋다고 해서 바둑을 가르치는 걸 권장하는 분위기다.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이 바둑을 배울 수 있는 시설이 많다”고 설명했다.

지난 2일부터 강릉선수촌에 묵고 있는 북한 선수들은 바둑 이야기를 꺼내자 반색을 하면서 “북한에서 바둑의 인기가 높다”고 전했다. 북한 피겨 페어의 김주식(26) 선수는 “내 친구 중에도 바둑을 좋아하는 애들이 여럿 있다.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에는 늘 바둑판이나 장기판이 있다. 가외 시간에 취미로 바둑을 두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원길우 북한 체육상 부상(차관)은 “나도 어릴 때 바둑을 배웠고, 지금도 바둑을 좋아한다”고 했다.

북한에선 바둑을 잘 두는 사람에 대한 존경심도 크다고 했다. 원길우 부상은 “북측에선 바둑뿐만 아니라 장기도 많이 두지만, 바둑을 잘 두는 사람의 수준을 훨씬 높게 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북한 선수단 관계자는 “바둑을 잘 두면 머리가 뛰어나고, 실생활에서도 몇 수 앞을 내다보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최은아 5단의 대국 모습을 담은 북한의 기념 우표. 최 5단은 1992년 세계여자 바둑선수권대회에 출전했다. [사진 한국기원]

최은아 5단의 대국 모습을 담은 북한의 기념 우표. 최 5단은 1992년 세계여자 바둑선수권대회에 출전했다. [사진 한국기원]

◆국가가 밀어주는 바둑=북한에서 바둑이 인기를 끄는 근간에는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다. 특히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생전에 많은 관심을 보여 단기간 급격한 발전을 이뤘다. 바둑은 원래 조선체육협회 관할이었는데, 2006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로 훈련 환경이 양호한 조선무도연맹에 편입됐다. 이후부터는 바둑을 ‘민족 체육’으로 분류, 태권도위원회에서 관장하고 있다.

북한 각지의 소년궁전·학교 등에는 바둑소조(바둑부)가 활동 중이다. 또한 재능 있는 어린이들을 일찍부터 중국에 보내 실력을 쌓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특히 특출한 인재는 ‘국가 인재’로 발탁해 중점적으로 육성한다.

북한은 컴퓨터 바둑 프로그램 개발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1990년대 초부터 김일성종합대와 김책공업종합대 등으로 구성된 대학컴퓨터연구단이 컴퓨터 바둑프로그램 개발에 매진했고, 1997년 ‘은별’을 내놓았다. 은별은 2000년대 후반까지 각종 세계컴퓨터바둑대회에서 수차례 우승했다. 컴퓨터 바둑 업계에선 ‘알파고 이전에 은별이 있었다’는 말도 나온다.

◆북한의 바둑 스타=북한에도 바둑을 전문적으로 두는 기사들이 있다. 북한 선수들은 대부분 최은아(33) 5단을 첫 손에 꼽았다. 1991년 바둑에 입문한 최은아 5단은 1년 만인 이듬해 10월 제4회 세계여자아마추어 바둑선수권대회에 출전했다. 당시 7세의 어린 나이로 8위에 입상하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북한 선수단 관계자는 “일곱 살짜리 조그만 여자아이가 야무지게 바둑을 두는 모습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며 “어린애가 어른을 이겼다고 아주 떠들썩했다. 그때부터 북측에서 바둑 붐이 본격적으로 일어난 것 같다”고 회고했다.

다른 유명 기사로는 조새별(36) 7단과 조대원(29) 7단을 꼽았다. 조새별 7단은 1998년 1회 세계여자아마바둑선수권에서 당시 아마여류 최정상이던 한국의 김세영 아마 6단을 꺾고 준우승을 차지했다. 북한이 국제무대에서 거둔 최고 성적이었다. 2004년 세계아마바둑 페어선수권에서는 리봉일과 팀을 이뤄 전승으로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북한 바둑 신동으로 유명한 조대원 7단은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기사다. 조대원 7단은 2005년 26회 세계아마바둑선수권대회에서 한국에서 프로 입단을 확정 지은 서중휘(현 프로 6단)를 꺾고 준우승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조대원 7단은 2008년 제1회 세계 마인드스포츠 게임스 개인전에서 한국의 함영우 아마 7단을 꺾고 금메달을 차지한데 이어 2013년 국제도시대항전에서 8승1패로 개인전 우승을 차지했다.

◆남북 바둑의 차이점=남한과 북한의 바둑은 기본적인 룰이 비슷하지만, 약간씩 다른 점이 있다. 가장 큰 차이는 바둑 용어다. 북한에서는 화점(花點)을 ‘별’, 고목(高目)은 ‘웃별’, 소목(小目)은 ‘아랫별’, 공배(空排)는 ‘헛자리’, 회돌이는 ‘홀치기’, 꽃놀이패는 ‘놀아리패’, 포도송이는 ‘호떡’으로 부른다. 남한의 바둑 용어에는 한자가 많은 것과 달리 북한은 순한글을 많이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대국 환경도 다르다. 최근 남한에선 사람이 직접 얼굴을 맞대고 바둑을 두는 대신 온라인으로 대국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북한에선 아직도 바둑판 앞에서 대국이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호철 조선올림픽위원회 사무국장은 “북측에도 컴퓨터 대국이 있지만, 대부분 바둑판을 놓고 둔다”며 “사람끼리 앉아서 두는 게 바둑의 제맛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북한 바둑의 발전 과정
1989년 조선바둑협회 결성
1990년 전국바둑경기대회 개최
1991년 체육기술연맹 산하 단체 등록, 
국제바둑연맹 가입
1992년 세계아마추어바둑선수권 참가
1993년 각 시도 바둑협회 설립
1994년 전국소년바둑대회 창설
1995년 완전 선수제(남한의 프로기사 제도) 실시
1997년 각종 체육대회에 바둑을 정식 종목 채택 
컴퓨터 바둑 프로그램 ‘은별’ 출시
2000년 평양바둑원 개원, 주요 도시 바둑원 설치
2003년 평양시 어린이바둑대회 개최
2006년 조선무도연맹에 편입, 민족체육으로 분류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