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담양 메타세쿼이아길. 2㎞ 남짓한 평평한 길이어서 걷기에 부담이 없다. 이왕이면 무르익은 가을, 해 질 녘 나무줄기 사이로 길게 햇볕이 들어올 때 걷기를 권한다. 붉은 터널을 이룬 나무를 감상하고, 융단처럼 고운 낙엽을 지르밟으면 깊은 평온이 다가온다. [사진 장태동]](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810/12/933d70db-168e-4602-98dc-ac988aa8b1e9.jpg)
전남 담양 메타세쿼이아길. 2㎞ 남짓한 평평한 길이어서 걷기에 부담이 없다. 이왕이면 무르익은 가을, 해 질 녘 나무줄기 사이로 길게 햇볕이 들어올 때 걷기를 권한다. 붉은 터널을 이룬 나무를 감상하고, 융단처럼 고운 낙엽을 지르밟으면 깊은 평온이 다가온다. [사진 장태동]
그림자도 쉬었다 가는 곳
2㎞ 남짓한 메타세쿼이아길 끝에 서서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있었다. 청춘들의 깔깔대는 웃음소리도 그 길에서는 평온하게 들렸다. 멀리서 나란히 걸어오는 남녀는 간혹 서로 얼굴을 바라봤지만, 말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깊은 대화를 나누기라도 하는지 남녀는 천천히 걸었다. 나무 밑동을 감싼 푸른 풀이 반짝였다.
![햇볕 비낀 메타세쿼이아길. 나무 밑동 초록색 풀이 싱그럽게 반짝인다. [사진 장태동]](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810/12/74fc7e27-f743-4c1f-9a82-2726a3d00ae6.jpg)
햇볕 비낀 메타세쿼이아길. 나무 밑동 초록색 풀이 싱그럽게 반짝인다. [사진 장태동]
낮은 언덕에 있는 식영정으로 오르기 전, 떨어져 쌓인 단풍잎을 밟으며 경내를 거닐었다. 물기 마르지 않은 단풍잎을 주렁주렁 매단 나무도 간혹 보였다. 낙엽이 그 잎의 그림자 같았다.
![늦가을, 전남 담양 소쇄원에서 만난 풍경. 소쇄원 마당 계곡에 떨어진 단풍잎이 촉촉하게 젖어 더 짙은 색을 띠고 있다. [사진 장태동]](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810/12/5750eec1-5cbd-4024-9b3e-c60cd9a94b82.jpg)
늦가을, 전남 담양 소쇄원에서 만난 풍경. 소쇄원 마당 계곡에 떨어진 단풍잎이 촉촉하게 젖어 더 짙은 색을 띠고 있다. [사진 장태동]
대나무로 만든 물길도 근사하다. 떨어진 단풍잎은, 흐르는 물은 흐르게 하고 넘치는 물은 계곡으로 떨어지게 둔다. 단풍잎 지는 소쇄원은 쇠락이 아름답다는 걸 알려줬다. 대숲에서 바람소리가 났다. “소쇄, 소쇄.”
여행정보
어른 입장료 메타세쿼이아길 2000원, 소쇄원 2000원. 메타세쿼이아길이 있는 담양읍에서는 국수 거리에 가봐야 한다. 예부터 시장 구석에서 멸치국수를 말았다. 대통밥과 떡갈비도 빼놓을 수 없다. 죽림원을 추천한다. 음식 맛도 좋지만, 식당 너른 마당에 맹종죽이 작은 숲을 이루고 있다.
보리밥집에 내려앉은 가을
![송광사에서 만난 스님과 보살이 합장을 나누는 모습. [사진 진우석]](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810/12/e433e8c0-d295-4433-bb66-9c1c10d9d4d9.jpg)
송광사에서 만난 스님과 보살이 합장을 나누는 모습. [사진 진우석]
![보조국사 지눌의 부도인 감로탑은 송광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명당에 자리잡았다. [사진 진우석]](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810/12/3c63cd30-d4ac-4da2-881e-6f851df10139.jpg)
보조국사 지눌의 부도인 감로탑은 송광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명당에 자리잡았다. [사진 진우석]
송광사를 둘러봤으면 굴목이재로 향하자. 단풍 곱게 물든 옛길이 매혹적이다. 굴목이재를 넘으면 허름한 보리밥집이 보인다. 식당 앞을 서성거리는 중년의 영국인 사내와 늦은 점심을 함께했다. 막걸리를 따라주니 그가 웃는다. 미소가 낯익다. 어쩌면 우리는 전생에 선암사와 송광사에서 중노릇을 했을지 모른다. 굴목이재에서 만나 선암사가 좋다, 송광사가 좋다 티격태격했을지도 모른다.
그가 작별을 고한다. 그의 출발점이 나의 종착점이고, 나의 출발점이 그의 종착점이다. 선암사에 도착하자 어둑어둑 땅거미가 번진다. 버스정류장 가는 길, 문득 나에게 송광사로 가라 했던 사람이 떠오른다. 그는 누구였을까.
![전남 순천 송광사와 선암사를 잇는 ‘천년불심길’을 걷는다면, 굴목이재에서는 보리밥집을 들러야 한다. [사진 진우석]](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810/12/2913c71a-617e-4f0d-9200-56372a1f598c.jpg)
전남 순천 송광사와 선암사를 잇는 ‘천년불심길’을 걷는다면, 굴목이재에서는 보리밥집을 들러야 한다. [사진 진우석]
![먼 길을 걷다가 쓱쓱 비벼 먹는 보리밥은 최고의 별미다. [사진 진우석]](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810/12/95ccb80f-9294-48c5-a192-523f786b7531.jpg)
먼 길을 걷다가 쓱쓱 비벼 먹는 보리밥은 최고의 별미다. [사진 진우석]
여행정보
탑전·감로암·불일암·광원암을 한 바퀴 도는 ‘송광사 암자 산책 코스’는 약 1시간 걸린다. 송광사와 선암사를 잇는 ‘천년불심길’은 6.5㎞, 약 3시간 걸린다. 어른 입장료 송광사 3000원, 선암사 2000원. 굴목이재 아랫보리밥집, 선암사 인근 진일기사식당을 추천한다.
단풍 깔린 구도자의 길
![오대산 선재길은 잔잔한 오대천 계곡과 나란히 이어진다. 붉은 단풍 아래 사람들도 울긋불긋 물들었다. [사진 김영록]](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810/12/9e95b6c9-41fe-461d-807f-3909244e9871.jpg)
오대산 선재길은 잔잔한 오대천 계곡과 나란히 이어진다. 붉은 단풍 아래 사람들도 울긋불긋 물들었다. [사진 김영록]
산 깊고 물길 그윽한 우통수 계곡에는 절집도 둘이나 들어앉았다. 부처의 가피(加被)를 구하는 중생은 물길을 따라 부처님 앞에 엎드렸고 조카(단종)를 사지로 내몰고 왕위에 오른 세조(1417~68)도 부처의 자비를 바라며 물길을 거슬러 올랐다. 이 길이 월정사 전나무 숲부터 상원사까지 11.1㎞ 이어지는 ‘오대산 선재길’이다. 천천히 걸으면 편도 3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푹신한 흙 밟는 조붓한 오솔길이고, 물길 넘나들며 부드럽게 이어지는 계곡길이다.
![월정사 일주문을 지나면 펼쳐지는 전나무숲길. [사진 김영록]](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810/12/130be001-eab3-4548-8baf-235fe859700b.jpg)
월정사 일주문을 지나면 펼쳐지는 전나무숲길. [사진 김영록]
선재길은 오대산 계곡을 따라 흐르는 우통수 물길 오대천과 동행한다. 물길을 따라가는 길은 봄부터 겨울까지 사철 다른 얼굴로 길손을 맞는다. 이른 봄 길가의 작은 들꽃, 여름의 짙은 녹음, 차분하고 곱게 익어가는 가을 단풍, 그리고 겨울날의 하얀 눈꽃까지. 언제라도 나그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산죽 사이로 이어지는 단풍숲길. [사진 김영록]](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810/12/984b443a-b450-44e8-a86c-da5940b3f15d.jpg)
산죽 사이로 이어지는 단풍숲길. [사진 김영록]
![오대산 선재길의 종착지인 상원사. 조선 세조가 보았다는 문수보살의 화신 문수동자를 봉안하고 있는 사찰이다. [사진 김영록]](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810/12/b99063d9-fb99-4c9d-9283-719c6395b02e.jpg)
오대산 선재길의 종착지인 상원사. 조선 세조가 보았다는 문수보살의 화신 문수동자를 봉안하고 있는 사찰이다. [사진 김영록]
여행정보
오대산 선재길은 상원사까지 갔다가 월정사로 걸어 내려와도 좋고, 버스를 타도 좋다. 상원사에서 진부역까지 가는 버스가 하루 8번 다닌다. 월정사는 입장료(어른 3000원)와 주차료(2000~4000원)를 따로 내야 한다. 절 어귀에 산채 정식을 파는 식당이 여럿 있다. 맛은 어금지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