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ㆍ미 훈련 축소한 미 육군, 내년 동남아서 대규모 연합훈련

미 육군과 태국 육군이 연합훈련에서 가택수색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미 육군]

미 육군과 태국 육군이 연합훈련에서 가택수색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미 육군]

 
미국 육군이 내년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대규모 연합훈련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ㆍ미 연합 군사훈련은 잇따라 종료하거나 규모를 줄이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미국이 아시아ㆍ태평양 지역에서의 전략적 초점을 한반도에서 남중국해로 옮기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관측이 나온다. 

외교안보 매체인 디플로맷은 16일 아ㆍ태 지역의 미 육군이 한국에서 중국으로 초점을 전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디플로맷은 지난달 27일(이하 현지시간) 미 알래스카주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로버트 브라운 미 태평양 육군사령관(육군 대장)이 한 발언을 근거로 제시했다. 브라운 사령관은 한국을 비롯해 하와이·알래스카·일본 등에 주둔한 8만명의 미 육군을 지휘한다.

로버트 브라운 미 태평양 육군사령관 [AP=연합]

로버트 브라운 미 태평양 육군사령관 [AP=연합]

 
디플로맷에 따르면 브라운 사령관은 세미나에서 내년 남중국해에서 사단급 규모의 연합훈련인 ‘디펜더 퍼시픽(Defender Pacificㆍ태평양의 수호자)’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디펜더 퍼시픽은 필리핀ㆍ태국ㆍ말레이시아ㆍ인도네시아ㆍ브루나이와 함께 하는 훈련이다. 이들 국가는 남중국해의 섬 영유권을 놓고 중국과 분쟁을 겪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연합훈련을 위해 미 육군은 사단본부와 여러 개의 여단을 본토에서 동남아시아로 파견할 방침이다. 대략 5000명에서 1만명의 병력이다. 이들 병력은 최대 6개월까지 동남아에서 머무를 수 있다고 브라운 사령관은 설명했다. 이는 1975년 베트남 전쟁이 끝난 뒤 동남아에서 미 지상군이 벌이는 첫 대규모 훈련이다.

미국은 이미 태국ㆍ필리핀과 각각 별도의 연합훈련을 진행했다.
브라운 사령관은 “우리는 한반도의 분쟁을 고려하지 않겠다”며 “대신 남중국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대비하겠으며, 가능하면 동중국해도 검토하겠다”고 설명했다.


 
윤석준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은 인도ㆍ태평양 전략에 따라 중국을 견제하려고 한다”며 “남중국해는 중국이 태평양에 진출하는 길목인 만큼 이곳을 틀어막으려는 게 미국의 의도”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브라운 사령관은 지난달 19일 하와이에서 열린 행사에서 “중국이 우선순위”라고도 밝혔다.

미 육군이 동남아를 새로운 대규모 훈련지로 선택한 게 한·미 연합훈련의 축소 등 주한미군의 지위 변화와 관련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현재 주한미군 2만8500명 중 대부분은 제2 보병사단이 차지한다. 브라운 사령관은 “현재 아ㆍ태 지역에서 기존 배치된 부대나 순환배치 중인 부대엔 영향이 없다. 새로운 순환배치가 추가되는 것”이라고 디펜더 퍼시픽 훈련을 설명했다.

하지만 당장의 파급 효과는 없더라도 장기적으론 주한미군의 감축이나 철수까지 염두에 둔 초기 조치일 수 있다는 관측까지 제기된다. 윤석준 위원은 “한국은 중국을 막을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이기 때문에 미국이 한국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며 “미국이 다양한 대중(對中) 전략을 짜내고 있다. 주한미군을 지상군을 줄이고 해·공군 위주로 개편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박원곤 한동대 지역학과 교수도 “한ㆍ미 연합훈련이 사실상 중단한 상태에서 미국이 관심과 자원을 한반도 이외의 지역으로 이동하고 있다”며 “앞으로 전시작전통제권이 한국으로 전환한 뒤 미국의  방위공약이 약해질 우려가 있으니 이에 대해 대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