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탄핵 궁지에 몰리면 ‘북한 비핵화’ 서두를 수도

최익재의 글로벌 이슈 되짚기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곤혹을 치르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6일(현지시간) 유엔총회 일정을 마친 뒤 워싱턴DC로 돌아와 기자들 질문에 답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곤혹을 치르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6일(현지시간) 유엔총회 일정을 마친 뒤 워싱턴DC로 돌아와 기자들 질문에 답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미국 대선을 1년여 앞두고 터진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재선을 노리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위기를 맞았다. 야당인 민주당이 장악한 하원에선 지난 24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 탄핵을 위한 조사에 돌입했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7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취임 선서와 헌법 준수 의무를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26일엔 이번 스캔들을 야기한 내부 고발자의 고발장이 공개됐다. 여기엔 “복수의 당국자들로부터 미 대통령이 내년 대선 때 외국의 개입을 요청하는 데 대통령 권한을 사용했다는 정보를 확보했다”고 적혀 있다. 뉴욕타임스는 “고발자는 중앙정보국(CIA) 요원”이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공화당 측은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부적절한 발언을 하긴 했지만 탄핵할 정도는 아니라고 반박하고 있다.

워싱턴 정가에선 이번 사태가 탄핵으로 이어지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대통령 탄핵을 위해선 우선 하원에서 과반의 찬성으로 탄핵소추안이 통과돼야 한다. 이어 상원에서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하지만 상원은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다.

AP통신 등은 “현재로선 탄핵까지 가긴 어렵다”며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측과 뒷거래를 모의했다는 좀 더 구체적인 증거가 나올 경우엔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번 사태는 지난 7월 25일 트럼프와 젤렌스키의 전화 통화에서 비롯됐다. 이 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민주당 대선 주자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과 그의 아들 헌터와 관련된 비리를 조사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또 트럼프가 우크라이나를 압박하면서 군사 원조를 조건으로 내걸었다는 얘기도 있다. 우크라이나 검찰은 2016년 초 바이든의 아들이 일하는 에너지 회사를 수사 대상에 올렸는데, 이후 검찰총장이 자리에서 물러난 적이 있다.


파문이 확산되자 백악관은 젤렌스키와의 통화 내용을 공개하며 부당한 거래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 언론들은 “공개된 내용은 개략적인 것”이라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스캔들에 대해 “미국 정치사의 최대 사기다. 나라가 위태롭다”고 성토하고 나섰다. 아직까진 여유 있는 모습이다.

뉴욕타임스 등은 그 이유를 세 가지로 요약했다. 우선 트럼프 탄핵안의 상원 통과가 상당히 어렵다는 점을 들었다. 현재 상원 의석 분포는 공화당 51석, 민주당이 47석, 무소속이 2석이다. 둘째 탄핵 역풍이다. 민주당이 탄핵 이슈를 제기했다 실패할 경우 오히려 유권자들의 관심과 지지를 잃게 될 가능성이 있다. 셋째 공화당 지지층의 결집 효과다. 트럼프 대통령은 탄핵 위기를 계기로 자신의 지지자들이 똘똘 뭉칠 것을 기대하고 있다. 이에 대해 로이터통신은 “탄핵 정국이 어디로 튈지 예측하기 어렵다. 이전에 트럼프 탄핵에 주저했던 민주당 지도부가 적극 나선 만큼 다른 상황이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미국의 탄핵 정국이 북·미 비핵화 협상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궁지에 몰릴 경우 가시적 외교 성과가 절실한 상황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성과 중 하나가 ‘북한 비핵화’다. 이럴 경우 트럼프 대통령은 좀 더 전향적으로 북핵 협상을 진행시킬 것이고, 북한은 체제 안전 보장과 제재 완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트럼프의 위기를 적극 활용하려 할 것이란 분석이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 탄핵이 구체화되거나 재선에 실패할 가능성이 커질 경우 북·미 협상이 진전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북한이 트럼프보다는 차기 권력자에게 초점을 맞춘 새로운 전략을 짤 것이란 얘기다. 실제로 빌 클린턴 행정부 때인 1994년 체결된 북·미 제네바 합의는 2001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등장으로 유명무실화됐다.

최익재 기자 ijchoi@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