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대 영문과 학생들로 구성된 '고 최현진 학우 사건 공론화 TF'가 고려대 정경대학 후문에 군 간부를 규탄하는 대자보를 붙였다. 이병준 기자
"한 간부는 "결국 어디 가도 죽었을 애"라며 고인을 모욕했습니다. 군인이라고 인간의 기본적 권리와 존엄을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난해 11월 공군 서산 비행단에서 최현진 일병(23)이 입대 6개월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 최씨는 고려대 영어영문학과를 휴학하고 군에 갔다.
‘고(故) 최현진 학우 사건 공론화 TF’를 만든 최씨의 친구와 선후배들은 14일과 17일 교내에 대자보를 걸고 "고인의 죽음 뒤에는 군 간부의 협박과 폭언이 있었지만 가해자는 벌금 200만원 만을 선고받았다"고 비판했다. 대자보에는 수십 개의 학생 단체와 재학생 및 졸업생 수백 명이 동의한다는 뜻으로 이름을 올렸다.
부대 내 괴롭힘으로 극단 선택...유가족 고소
최씨는 피해 사실을 빼곡히 기록한 메모와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 학생들에 따르면 최씨는 직속 상관인 A소위로부터 ”일을 그런 식으로 하는데 무슨 휴가를 가냐“ ”고대생이 이것밖에 일을 못 하냐“는 등 질책을 계속 받아왔다고 한다.
사건을 수사한 군 당국은 최씨가 ‘부대 내 괴롭힘’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봤다. 유가족은 최씨의 친구들과 동료 병사들의 증언을 토대로 지난 2월 A소위와 B중사 등 같은 부대 간부 2명과 병사 1명을 직권남용ㆍ협박ㆍ모욕 혐의로 고소했다. 군 검찰은 이중 간부 2명을 군사법원에 넘겼다.
7월 내려진 1심 선고에서 A 소위는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았다. B중사는 무죄였다.
군 검찰과 A소위 모두 판결에 불복해 현재 항소심이 진행되고 있다. A소위는 “통상적인 업무상 지시였다”는 입장이다.
"고인 생전에 피해 사실 호소...군 간부 조치 없었다"
이어 "(최씨의 죽음 이후) 가해 상황이 명확한데도 (군 당국은) 사건의 진상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않았다. 고인의 어머니는 모두가 책임을 회피하는 상황에서 직접 증언을 구하며 아들의 피해 사실을 직접 확인해야 했다"며 "그 결과 가해자들은 여전히 같은 부대에서 근무 중이다. 고인의 어머니는 1년이 지난 오늘도 수면제 없이는 잠들지 못하고, 용기를 내 증언을 이어가던 한 병사는 정신적인 고통을 호소하며 병원에 입원했다"고 덧붙였다.
학생들은 또 "한 간부는 "결국 어디 가도 죽었을 애"라며 고인을 모욕했다. 하지만 군인이라는 신분은 인간의 기본적 권리와 존엄을 포기하는 걸 뜻하지 않는다"며 "공정한 수사를 위해 가해자와 병사들을 분리해야 한다. 또 군형법을 개정해 모호하게 정의돼 있는 '가혹 행위'의 기준을 명확히 하고 처벌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공군은 "적법한 절차와 방식에 따라 사건을 수사했다"며 "형사재판 및 징계절차가 진행 중인 사안으로 자세한 사실은 확인해줄 수 없다"고 답했다. 군 관계자에 따르면 "최 일병의 사망 이후 A소위도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고 전했다.
![[연합뉴스]](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12/22/f8f0c089-4d16-4037-8302-765ef9fa9eb1.jpg)
[연합뉴스]
최씨 가족과 친구들의 요구대로 2심에서 A소위가 더 센 처벌을 받으려면 최씨에 대한 A소위의 부대 내 괴롭힘이 다시 인정돼야 하고, 그 괴롭힘이 최씨의 죽음과 연관돼있다는 것까지 입증돼야 한다. 이들은 과거 유사 사건에서 심리 전문가의 분석 의견을 통해 괴롭힘과 극단적 선택의 연관성이 인정됐던 사례가 있다는 점을 주장하고 있다.
이병준 기자 lee.byungjun1@joongang.co.kr